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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를 보지 않습니다

by 은수

그러니까 이 글은 드라마 리뷰는 아니다. 난 <부부의 세계> 첫회만 보고 더 이상 보지 않았고, 가끔 기사의 헤드라인이나 누군가의 노기 등등한 드라마 리뷰를 보고 그 뒤에 전개된 내용을 짐작만 했다. 극중 상간녀로 나오는 여다경이 지선우(김희애)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걸 우연히 보고 안 보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불륜을 다룬 드라마에 대한 피로감이나 여자랑 여자가 머리채 잡고 싸우는 내용에 신물이 난 탓만은 아니다. 영국판 부부의 세계인 '닥터 포스터'의 줄거리를 통해, 인생의 많은 변곡점을 함께 지나온 부부가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바로 잡는 게 어렵다는 내용도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줄거리를 미리 읽으며 부부간 갈등이란 '장화'가 정작 당사자보다 아이를 저벅저벅 밟고 다치게 할 수 있다는 내용도 비중 있게 다뤄질 거라고 추측했다. 흔한 불륜 드라마는 아닐 거라고 기대는 했다.



그럼에도 드라마 시청이 내키지 않았던 건 한때 우리 집에 오셨던 도우미 아주머니 생각이 나서였다. 아이들에게 아직은 손이 많이 가던 시절, 직장일과 살림을 병행하기가 버거웠다. 멀리 사는 양가 부모님이 도와줄 수도 없었고 얼굴 보기 힘든 남편에게 뭔가를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극심한 과로 끝에 전정기관 이상으로 입원한 후에야 지금 상황을 극복하려면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렇게 아주머니와 시작된 인연은 5년이나 지속되었다. 사실 아주머니가 오시기 전에 일 잘한다고 소개받은 다른 몇몇 분에게 거절을 당했다. 정기적이긴 하지만 내 경제 사정상 자주 오시라고 하기는 어려웠는데 베테랑인 분들은, 매일은 아니더라도 최소 주 몇 회 이상이란 조건을 내거셨다. 의기소침해 있던 내가 주뼛거리며 이런 조건으로도 일하실 수 있냐고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손이 정말 빠르셔서 반나절만에 집이 반질반질해지는 건 물론 간단한 반찬 한두 가지는 뚝딱 만드셨다. 소파에 늘 빨래가 쌓여 있어 앉을 수가 없었는데 아주머니가 왔다 가신 날은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싶을 만큼 쾌적했다.


어쩌다 갑작스러운 시부모님의 방문으로 쩔쩔 매고 있을 때는 시간이 조금 초과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부엌살림을 다 정리해 주고 가셨다. 이렇게 해놓으면 그래도 흉 안 잡힌다면서.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시면 세탁기 위에 걸린 양파 그물망에서 떨어진 흙까지 지적하시는 분이니 1년에 몇 번 안 오신다 해도, 오신다고 하는 순간 머리가 무거워졌다. 아주머니한테 언젠가 그런 어려움을 토로했던 걸 기억하시고 시부모님이 방문한다고 하니 나보다 더 신경 써서 정리해 주셨다.


사진출처: JTBC

고마운 아주머니에게 남편의 불륜 이야기를 들은 게 언제쯤이던가. 잠깐 쉬며 같이 롤케이크를 잘라먹을 때였던가. 남편은 어린아이 둘을 키우느라 정신없던 아주머니를 두고, 아이 있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다고 했다. 아주머니와 진짜 피붙이는 버리고 평생을 '다른 여자와 그 여자의 아이'를 키웠다고. 아이 둘을 데리고 남편에게 이유도 없이 버림받았을 때 아주머니는 서른 중반이었다. 그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단다.


남편은 늙어 병으로 죽었고 보험금이 나왔다. 꽤 큰 액수였다. 그 돈으로 반지하 방에서 벗어나 빌라 전세를 얻으니 집에 해가 들어 살 것 같다고 하셨다.


"다행이네요. 그 정도 돈이면 전세 얻고도 제법 남으셨겠어요?"

"아니, 전세 얻고 끝이야. 반은 그 여자 줬거든."

"누구요? 그 바람 핀 여자요?"

"어."

"아니, 왜요? 줬던 걸 뺏어도 시원찮을 판에!"

"그 여자도 살아야지 어째. 애도 있는데. 듣자 하니 딱히 모은 돈도 없던데 보험금이라도 안 나오면 당장 어쩌겠어. 방 한 칸이라도 얻어야지."


롤케이크를 다 먹은 아주머니는 과거 따위는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사람처럼 옷에 묻은 가루를 털어내고 다시 부엌으로 일하러 들어가셨다.




가끔 세상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재벌가 사모님이 남편과 자식들에 의해 지하실에 감금되고 학대당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루에 먹을 거라곤 작은 고구마 두 개가 다였다고 한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잔혹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영화보다 더 터무니없이 선량한 사람들도 현실에 있다. 아주머니를 통해 상간녀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갖자거나 바람핀 남편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건 아니다. 위선적인 것만큼이나 때론 위악적인 이야기도 불편하다는 거다.


극중 김희애는 그래도 경제적인 능력이라도 있지, 재산도, 전문지식이나 기술도 없는 아주머니가 예닐곱 살 연년생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올 때 대체 어떤 심정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 못 먹고 못 입는 아이들 뒤로 남편 덕에 최소한 의식주 걱정 없이 크고 있을 상간녀의 아이가 어른거릴 때마다 얼마나 깊은 분노와 좌절을 느꼈을까. 그 세월을 다 견디고 '그래도 그 여자도 살아야지'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드라마는 아주머니가 궁상맞다고 표현하며 돌아본 세월과는 퍽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얼마 전 극중 김희애의 집에 나온 장식장이 본인이 고른 장식장과 같다며, 자신의 고급스런 안목을 자랑하는 한 카페의 글을 보니 버림받은 사람들의 처절한 삶에 대중 드라마는 역시나 관심이 없다는 걸 실감한다.

그 버림받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게 넉넉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에도. 그리고 과장되게 꾸민 위악보다는 어리석어 보일 만큼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온기를 지필 수 있다는 인간적인 진실에도.


상업적인 드라마가 삶의 진실을 진중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불평할 생각은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그저 안 보는 걸로 혼자 반감을 드러내는 것뿐.


갑자기 이사를 하면서 아주머니와 헤어져야 했다. 마지막 날, 아주머니와 나는 서로 딴청만 부리며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얼굴을 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우린 그저 돈으로 엮인 관계는 아니었다. 결혼한 이후에 늘 돌봄노동을 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던 내가 아주머니의 손길 속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분의 돌봄과 가사노동의 가치에 비하면 내가 드린 보수는 턱없이 적을 뿐이다. 벚꽃 만발한 봄에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목이 메어 인사도 잘 못하고 헤어진 다음에야 문자로 서로 인사를 나눴다.


벌써 오래전 이야기다. 드라마 이야기를 하려다가 아주머니에 대한 그리움만 가득 남긴 채 글을 끝맺는다. 봄이 끝나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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