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by 은수

막 가계약금을 받은 다음날이었던 것 같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갈 채비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사모님, 오늘 집 보러 갈게요! 오늘 손님이 두 팀이나 오셨어요.”

“어쩌죠? 어제 집 팔렸어요. 계약금도 받았네요.”

“아, 그랬구나. 알겠어요.”


집을 팔려고 내놓은 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간간이 보러 왔지만 매매는 성사되지 않았고 주말에도 보러 온다는 사람 하나 없더니 어제 집이 갑자기 나갔다. 계약금까지 받은 다음날, 하루에 두 팀이 온다는 말에 좀 얼떨떨했지만 어쩌다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계약하면서 값도 깎아줬던 터라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산 가격보다 오른 값에 파는 거니까 욕심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불길한 예감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팔자마자 두 팀이 더 보러 온다고 그러네.”

“됐어, 이미 팔았는데.”

“그렇지? 그런데 갑자기 값이 오르면 어떡하지? 이제 우린 무주택자가 된 건데.

“어떡하긴? 이미 판 집인데 잊어야지. 어차피 너 빨리 팔고 싶어서 안달이었잖아. 우리가 샀을 때보다 올랐으니 그 정도면 잘 팔았어. 그 오래된 아파트가 갑자기 급등할 일도 별로 없어 보이고.”


그 오래된 아파트 옆에 있던 혐오시설이 이전한다는 뉴스가 바로 전날 나왔던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니, 이전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다. 우리 아파트 옆에는 냄새가 심한 혐오시설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10여 년간 민원을 제기했지만 좀처럼 해법을 못 찾다가 몇 달 전, 관련 부처에서 이전을 최종 결정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관심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나 보다.


뉴스에서 시장님이 공식적으로 발표하자마자 우리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고 집값이 급등했다. 그간은 근처에 양질의 일자리가 있고 학군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혐오시설 때문에 기피하던 아파트라서 상대적으로 매매가도 매우 저렴했다. 쌌던 만큼 순식간에 큰 폭으로 집값이 올랐다.



그날부터 전화기에 불이 났다. 이 부동산, 저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집을 빨리 팔고 싶어서 여기저기 많이 내놨던 만큼 전화도 많이 왔다. 나중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가 빗발칠수록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은 생각에 잠이 안 왔다. 집이 팔린 걸 자축하며 이제 이사 갈 수 있게 됐다고 한껏 들떠 있었는데 잠깐 사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땅 밑으로 꺼지는 기분이 됐다. 남편한테는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부터 글쓰기 수업이 있어서 나섰다.


이른 아침이라 주차장은 고요했다. 발밑에 지진이 난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머리가 흔들렸다. 집 한 채 팔고 떼돈 벌기를 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 돈 없다고 당장 굶어 죽을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선 ‘하루만 기다렸으면’ 대체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나를 끊임없이 계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1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일, 살 수 있는 물건 따위를 떠올리다 점점 단위가 커지고 목록이 늘어나고, 결정적으로 그 돈이면 신도시에 집을 살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무의식 중에 거의 신음 소리가 새 나왔다. 내가 이렇게 돈독이 오른 사람이었던가.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욕망이 시계태엽 풀리듯 줄줄이 풀려나온 걸까.


매수자가 통상적인 금액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계약금을 입금할 때 이미 이런 일을 예감했는지 모른다. 너무 큰 액수가 입금된 통장을 보고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올라왔지만 설마 또 같은 실수를 하진 않았을 거라고 애써 부정했다. 부동산 거래 경험이 없던 오래전, 1년 이상 안 팔리던 집이 어느 날 팔렸는데 홀가분한 기분을 즐길 새도 없이 그 동네에 사는 지인을 통해 집값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개발 소식이나 부동산 시장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인생 경험도 적었던 시절이니 그럴 수 있었다.

이번에는 치밀하게 준비했다. 10여 년간 살았던 동네니 단지별 아파트 정보에도 훤했고 개발 소식도 누구보다 빠르게 찾아봤다. 다가올 호재와 주택 수요와 공급 상황도 계속 살펴보면서 이사 타이밍으로 적합한 시점이라 여기고 집을 내놨던 것이다.


‘아, 그런데 결과는 똑같네. 난 왜 이 모양일까?’

한숨을 쉬며 핸들을 꺾는 순간 갑자기 ‘쿵’ 하는 묵직한 울림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잠깐 멍하니 있었다.


“아이고, 조심 좀 하시지! 옆에 차 박았어요!”


자동차 창문 너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만치 서 있던 아주머니가 이쪽으로 걸어오며 내게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내렸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옆에 정차된 차를 박았다. 내 차 옆문은 찌그러져 있었고 상대편 차의 범퍼는 약간 파여 있었다. 운전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정차된 차를 박을 만큼 초보는 아니었다.


반년도 안 된 새 차 문짝이 형편없이 주저앉은 걸 보고 있자니 사막 한가운데 나와 납작해진 차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초보냐고 물으며 참견하는 아주머니 말에 대꾸할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저 이사를 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리고 싶었던 건데 집을 팔고 사는 과정이 왜 이렇게 숨차고 힘든 걸까. 손해 본 집값 때문에 내 인생이 당장 끝난 것도 아닌데 왜 답안을 몽땅 밀려 쓴 수험생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흔들리고 있는 걸까.




그 순간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하나 김연수 같은 작가들도 집을 사고 파는지 궁금해졌다. 싸게 팔아 속상하고, 비싸게 사서 분하기도 한지,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까지 마음을 졸이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별로 고결하지 못한 일개 속인의 애환인지, 우리를 잠 못 들게 할 정도로 가슴 벅차고 설렌 문장을 쓰는 작가들 또한 때때로 이런 혼란을 경험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 브런치 북은 그 답을 찾고 싶어서 시작한 원고인지 모르겠다. 주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매매든 전세든 일생에서 한두 번은 반드시 거래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전 재산이 걸린 거래인데 그다지 자주 하는 일도 아니라서 한 두 건의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흔하다. 문제는 그 사소한 판단 착오 때문에 인생 축이 마구 흔들리는 결과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 흔들리는 축 안에서 다들 어떻게 그 진동을 견디는지, 뭘 붙잡고 버티는지 알고 싶어졌다. 집은 주거 공간일 뿐 재화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집이야말로 막강한 재테크 수단이라고 하는 사람도, 아니면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초연할 것 같은 예술인도, 각자 자기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이 파장을 넘기고 삶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고 있을까. 다른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를 향한 질문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꿈꾸던 순간부터 이 원고를 쓰기까지 지나온 과정을 정리하다 보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이 뭔지 정의 내릴 수 있을 거다.


일그러진 차 앞에서 찡그린 채 서 있던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가고 싶었던 곳은 거실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내 컴퓨터 앞이었다. 아무래도 써 내려가지 않고서는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수많은 질문에 답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재빨리 와준 고마운 보험회사 직원이 새 차인데 어떡하냐고 걱정해주며 차를 견인해갔다. 멀어지는 차를 보며 생각했다. 뭐가 되든 당장 쓰기 시작하자. 멀쩡히 서 있는 차를 혼자 박을 만큼 내가 뭘 향해 넋을 놓고 있는 건지, 뭘 두고 애를 태우는 건지, 평범한 사람들에게 왜 이사가 쉽지 않은 건지, 쓰다 보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하나의 퍼즐이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