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호주는 내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던 곳이다. 나의 첫 여권, 첫 출국, 첫 비행기, 첫 입국 도장까지 무려 4관왕을 달성한 나라다. 뭐든지 거대한 그 나라에서 1년을 보내면서, 세상은 넓으니 최대한 많이 누벼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후로 20여 년이 지나고 마침내 여행 지도에 50번째 나라가 채워졌을 때, 나는 다시 한번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드넓은 호주에서도 가장 넓은 주, 가뜩이나 소외된 호주 대륙에서도 무관심 영역으로 취급되는 서호주의 퍼스로 가는 비행기였다.
"날씨 좋다"라는 말이 너무나 복합적이고 복잡한 개념이 된 한국에서, 호주를 다녀온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호주 날씨라는 말은 대명사로 사전에 등록되어야 한다. 최고기온 30도, 최저기온 15도, 강수확률은 0%, 구름은 몽글몽글, 시야는 선명하며 먼지라는 말은 이 나라에서 쓸 일이 없다. 이 얼마나 심플한 삶인가.
나는 작고 경제적인 프리우스 한 대를 빌려, 서호주가 홍보하는 모든 곳을 부지런히 누볐다. 백사장의 모래처럼 별이 쏟아지는 피나클 사막, 다른 행성에서 옮겨온 듯한 핑크빛 호수, 4억 년 된 절벽과 협곡이 펼쳐진 칼 바리 국립공원까지, 호주 관광청의 홍보 사진에 담긴 휴양객의 편안하고 자신만만한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그 모든 것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로트네스트 아일랜드였다. 몇 걸음만 들어가면 펼쳐지는 산호초와 그 아래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해저협곡이 펼쳐진다. 육지에서는 그냥 시원하게 한번 쓰다듬고 벌금을 낼까 고민하게 만드는 쿼카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여기저기에서 유혹 중이다.
6일째 되던 날 저녁, 살짝 쌀쌀해진 날씨를 탓하며 그 틈에 뜨끈한 라멘 한 그릇을 먹고 호텔로 들어갔다. 여행 마지막 날인 내일은 로트네스트 아일랜드를 한 번 더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번엔 페리와 함께, 좀 더 편하게 섬 안을 둘어보기 위해 위해 전기바이크까지 예매해 두었다. 아침에 리셉션에 맡겨둘 짐을 적당히 싸두고, 편안한 저녁을 즐기기 위해 얼음이 필요해진 나는 방을 나서 공용공간으로 향했다. 바닥의 부드러운 카펫 때문인지, 쌀쌀했던 저녁 날씨 때문인지 꽤 몸이 무거웠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느릿느릿 한 발걸음이 내 방을 지나쳐 복도 끝 코너에 걸린 그림 액자 앞까지 가서야 멈췄다.
액자는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장소도 없고, 작가의 이름도 없는 액자 속 사진은 어느 바다 풍경이었다. 호주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파란 하늘 아래, 협곡처럼 들어선 기암괴석 사이로 파도가 밀려오고, 부서진 파도가 협곡을 비집고 빠져나오면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거품이 된 파도를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빨려 들어가는 듯 사진을 뚫어보다 구글 렌즈를 켰다. Injidup Natural spa. 어떻게 읽는지 예상도 안 되는 그 이름을 구글맵에서 찾아보니 차로 3시간 반 거리다. 귀국 비행기는 내일 밤을 넘어가는 자정이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리우스는 이미 반납했기 때문에 차를 다시 빌려야 한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자 몸은 따라 움직였다. 제일 먼저 렌터카를 찾았다. 당장 내일 아침이라 남아있는 차가 거의 없고, 비쌌지만 상관없었다. 일사천리로 검색해서 제일 먼저 나온 차를 선택했고, 예약확인 메일을 받고서는 이번엔 페리회사에 메일을 보냈다.
"친애하는 로트네스트 익스프레스 담당자께"로 시작하는 인사말을 쓰고, 항공편 정보가 바뀌어 부득이하게 내일 배를 탈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았다. 반신반의하면서 보낸 메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결제 취소를 해주겠다는 메일을 받았다. 긴장이 풀렸는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꽤 부지런을 떨었다. 자정즈음에 비행기를 타야 하니 모든 것이 차질이 없어야 한다. 모든 짐을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문을 닫고 나니 복잡하던 머리가 편안해졌고, 먼지하나 없는 평원을 따라 차를 몰았다. 달리는 내내 호주의 가장 큰 볼거리는 딴 게 아니라 하늘이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의 어떤 아름다움을 가져와도 이 나라의 하늘 아래에서는 빛을 잃는다. 서로 손을 붙잡고 천천히 걷는 80 노부부도, 이제 막 교복을 입은 주근깨투성이 소년도 남은 평생 동안 이 아름다움을 대가 없이 누린다. 한국처럼 확률에 기댈 필요도 없고 4계절이 있다곤 하나 크게 변하지도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세 시간 반을 꼬박 달렸다.(중간에 레드 로스터에 들리긴 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언덕 위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흙길 위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세찬 바람이 불었다. 멋모르고 버텨보려던 나를 비틀거리게 만들 만큼 강한 바람이었다. 지독한 호주 파리가 한 마리도 없다. 나는 행복한 얼굴 한가득 바람을 맞으며 언덕 아래 보이는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부서진 파도가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해안에 도착해 보니 멀리 파도가 부서지는 곳까지는 대략 30미터 거리다. 모래와 암석으로 이루어진 길을 가운데에 두고, 5살짜리가 쌓아 올린 레고 블록 같은 투박하고 거친 암벽이 좌우에 솟아올랐다. 사진 속의 그 거품 속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암벽을 타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야 한다. 나는 슬리퍼 바닥을 단단히 붙드는 투박하고 거친 바윗길을 따라 한 걸음씩 고도를 높였다. 수천 년간 파도와 바람이 깎아낸 바위 표면은 날 카오루면서도 견고했고, 틈새마다 고인 바닷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살짝 숨이 가빠질 때쯤, 마침내 탁 트인 시야가 확보되는 바위 언덕의 끝자락에 올라섰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인도양 파도가 둔탁한 바위 성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더니, 순식간에 순백색의 거대한 폭포가 되어 안쪽으로 쏟아져 내린다. 순식간에 인공풀장이 되어버린 바위성 안쪽에 모여든 사람들은 맥주 속 효모처럼 머리만 내놓은 체 소리를 질러댄다. 짙푸른 바다색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발아래는 오직 집어삼킬 듯 끓어오르는 우윳빛 포말로 가득 차오른다.
급하게 휴대폰을 바위틈 사이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거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 안에서 직접 느끼는 에너지는 더 폭발적이다. 거대한 샴페인 병을 방금 막 딴 것처럼, 하얀 거품들이 바위 사이를 빈틈없이 메우며 소용돌이친다. 거칠게 부서지던 파도가 바위성 안으로 잦아들며 만들어내는 그 부드럽고도 역동적인 거품의 층은 차가운 대리석 위에 깔린 보드라운 솜이불 같기도 했다. 빰까지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과 규칙적으로 바위를 때리는 웅장한 북소리, 공기 중에 느껴지는 짭조름하고 시원한 미스트가 온몸의 감각을 일깨운다. 내가 받은 그 어떤 마사지보다 시원하고, 쾌적하며, 동시에 아늑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일광욕 의자와 짜지 않은 맥주 한 캔이다.
다시 퍼스로 돌아오는 길에 버셀턴(Busselton)이라는 작은 마을을 들렀다. Shelter Brewing co는 바다가 보이는 잔디밭에 자리 잡은 거대한 맥주 양조장 겸 식당이었다. 나는 뻥 뚫린 일층 테라스의 의자에 느긋이 기대앉아 환히 웃거나, 산들바람 부는 해변가를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호주 관광청의 표지모델이 짖는 그 웃음이다. 관광안내 책자에서 보여주는 표정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이렇게 일치하는 나라는 호주뿐이다. 마치 영원한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 같다.
나는 귀국 하루 전날 무리해서 일정을 바꾼 스스로를 마음껏 칭찬했고, 본격적인 어둠이 오기 전 마지막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던 태양은 그 사실을 아는 듯했다. 아아. 호주는 진정 행복의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