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成都)
중국 쓰촨성 북쪽, 주자이거우 국립공원에 진도 7.0 대규모 지진 발생. 한국인 여행자 수십명 모두 긴급 대피.
여행을 출발하기 꼭 한달 전에 발생한 일이다. 일찍이 청두로 가는 항공권을 샀지만, 바로 그 청도가 수도로 있는 쓰촨성에 큰 지진이 발생했단다. 그것도 여행의 핵심이자, 일정의 대부분을 차지할 주자이거우 국립공원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출발이 얼마남지 않아 발생한 사태에 처음에는 나도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모처럼 찾아온 긴 추석연휴를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삼국지의 대단히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과, 한자 독음으로 성도(成都) 라고 읽히는, 과거 유비가 세웠던 촉의 수도에서 무려 9일이라는 시간을 계획 없이 보내야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삼국지를 처음 읽은건 92년도.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였다. 당시에 tv만화로, 왠 산적 세명이 나와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맹세하는걸 보고 처음 접했는데, 이후로 지금까지 약 25년 동안, 총 다섯 종류의 삼국지 전권을 대략 10번 정도 읽었다. 대부분의 삼국지가 그런 것처럼, 나는 촉나라의 열렬한 팬이었고, 특히 제갈공명빠(?) 였다.(실제로 나는 중학교 때까지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공명을 쓰곤 했다.)
생각이 거기에 닿자, 나는 즉시 계획을 다시 세웠다. 공명이 일곱번의 북벌을 시도하면서도 끝내 넘지 못한 곳.
성도를 출발해 촉도를 지나, 그가 그토록 밟고 싶어했던 장안으로 간다!
성도를 구글지도에서 보면, 겹겹히 세워진 성곽에 둘러쌓인 도시를 상상할 수 있다. 비록 성벽은 세월에 삼켜져 사라지고, 그 자리는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가 차지했겠지만, 나는 행여라도 이 도시에서 삼국지의 어떤 흔적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지금의 청두는 완벽하게 현대화된 대도시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세련되게 꾸며진 쇼핑센터를 거닐며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기 바빴고, 간혹 보이는 외국인들은 청두의 명물인 팬더에 흠뻑 빠져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세월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물며 삼국지가 대체 언제적이던가.
수 없이 많은 왕조가 생겼다 사라진 중국의 역사에서, 삼국시대 가 차지하는 분량은 극히 미세하다. 한(漢) 나라의 종언이 시작된 황건적의 난이 벌어진 184년을 시작으로 치면, 삼국이 모두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로 통일된 280년 까지, 고작 100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 1800여년 전의 일이고, 서양에서는 고대 로마제국이 한창이던 시기였으며, 한반도는 아직 고구려, 백제, 신라로 구성된 삼국시대가 시작되기도 전 일이다. 여행자들이 머무는 호스텔을 통틀어 봐도, 이 곳이 유비가 세운 촉(蜀) 의 수도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나 하나 뿐인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갈공명과 관우 만은 죽어서 신이 되어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소설 삼국지 연의 속 공명의 발자취가 닿았던 10개의 지역에 그를 기리기 위한 사당이 지어져 있는데 이를 무후사(武侯祠) 라고 부른다.(한 평생 오직 유비에게만 헌신했던 공명의 시호 충무후忠武侯 에서 딴 이름이다)
청두에 도착한 다음날, 곧장 청두 시내에 있는 무후사를 찾았다. 다른 무후사와 달리 청두의 무후사가 특별한 것은 이곳에 소열황제 유비의 묘가(여기서 묘(廟) 는 무덤이 아니라 사당을 뜻한다) 같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매우 드물게, 군주와 신하가 함께 모셔진 사당이자, 삼국지 연의의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는 두 주인공을 모신 곳인 셈이다.
언제 지어졌는 지 모를 거대한 관문을 하나씩 지나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나치게 막연헸던 '언젠가' 가 지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소열묘(漢昭烈墓) 라고 적힌 문을 지나, 나는 비로소 유비와 마주했다. 당연하게도 그의 양옆으로는 관우와 장비가 익숙한 모습으로 자리했다. 유비 역시 연의 속의 묘사 그대로 였다. 눈이 가늘고 부처님처럼 커다란 귀와 넉넉한 턱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듯이, 우리가 읽은 삼국지 연의는 나관중이 쓴 소설이다. 연의 속 많은 장면들이(특히 촉나라의) 과장되고 포장되어 있지만, 기본 적인 사실관계는 일치한다. 이를 테면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의형제를 맹세했다는 도원결의 는 작가의 상상이지만, 실제 유비와 관우, 장비가 단순히 군주와 신하 그 이상의 끈끈한 사이였다는 것은 사실인 식이다.
바로 그 연의의 주인공이자, 삼국시대를 열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유비다. 탁군 탁현의 시골뜨기 출신으로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였던 그가, 당시의 왕조였던 한(漢) 황실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훗날 촉을 세우고 황제에 오른다.
당시의 한은, 말 그대로 세기말이었다. 황제는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황실은 십상시라고 불리는 간신배들에게 사로잡혀 온 나라가 도탄에 빠진 상황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84년, 황건적이라고 자칭하는 산적들이 난을 일으켜 닥치는 대로 약탈을 일삼으니, 이에 동탁, 원소, 조조, 유비, 손견 등 중국 각지의 영주들이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삼국지의 시작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한을 옹립하고자 했던 그들도 차츰 스스로의 욕망을 표출하기 시작하고, 각자의 나라를 세우기 시작한다. 결국 수도인 낙양의 최종 지배자가 된 조조는, 십상시가 그러했던 것처럼 황제 수호라는 명목하에 천하를 자기 손에 넣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고, 유비와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위의 조조, 오의 손권, 하북을 차지했던 원소, 그 어디와 비교해도 국력, 인재, 명성, 모든면에서 한참 뒤쳐진 촉의 유비가 주인공일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유비만이 한 황실의 뜻을 받든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하던 한나라는 결국 조조의 아들 조비에 이르러 멸망하고야 만다. 조비는 직접 마지막 한 황제를 폐위하고 위나라를 세웠고, 이에 공명을 비롯한 유비의 수하들은 촉을 세운다. 삼국지의 팬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되는 내용인데, 사실 지켜야 할 나라가 이미 망해서 없어져버린 마당에, 다른 나를 세운 것이 충(忠)에 어긋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끝까지 한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을 잊지 않고 촉의 국호를 촉한(蜀漢) 이라고 정했다. (유비가 죽은 뒤에 얻은 묘호가 바로 소열제昭烈帝 다)
나는 인적이 드문, 대나무가 무성한 돌담길을 잠시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은 나 뿐인 듯 하니, 이 정도면 성공한 덕후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문턱을 넘어 더 깊숙 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제 공명을 만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