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무후사
문턱을 하나 넘자 곧 바로 무후사가 나타났다. 유비의 사당이 먼저 보이는 이유가 황제를 먼저 알현하라는 뜻이라는데, 후세 사람들이 그가 얼마나 충성스러운 신하였는가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제갈량이다. 앞서 나관중의 연의는 주로 촉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촉의 주인은 유비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술되는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제갈량이 있다. 발 뻗을 땅 하나 없이 떠돌이 생활 중이던 유비에게, 그는 파촉이라는 목적지를 제시하며 삼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니, 이를 천하삼분의 계 라고 부른다.
따로 조명이 없는 어두운 사당 안에, 홀로 빛나는 황금 옷을 입은 공명이 보였다. 역시 연의 속 묘사 그대로, 특유의 모자와 백우선을 든 모습이었다. 나관중은 그 시대에는 몹시 드물게, 등장인물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설가였다. 관우의 붉은 얼굴과 수염, 장비의 산적같은 얼굴, 유비의 긴 귀, 공명의 백우선.
이는 현대에 수없이 넘쳐나는 모든 삼국지 2차 창작물에서 그대로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조운은, 조조의 100만 대군 속에서 유비의 아들을 들쳐업고 구출한 장면 하나로, 날렵하고 잘생긴 꽃미남 무장으로 등장하는데, 그런 점에서 사당 왼쪽에 있던 조운의 석상은 약간 충격적이었다.
한쪽은 문신, 한쪽은 무신으로 나눠진 복도를 따라 늘어선 촉의 개국공신들을 감상하며 걷다보니, 이내 글씨가 빼곡하게 새겨진 커다란 석판과 마주쳤다. 위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북벌을 시작하면서, 제갈량이 임금에게 올렸던 글, 바로 출사표(出師表)다.
사실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를 촉에 입성시켜 발디딜 땅을 마련해 줌으로써, 이미 그 역할을 충분히 완수했다. 그러나 유비의 입장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비록 무일푼으로 시작해 사천 땅을 차지하였으나, 그는 여전히 황실의 후예였고, 한 황실은 조조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었다. 힘의 차이가 극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천을 얻은 유비가 제일 먼저 결심한 일은 조조와의 결전이었고, 그 결심이 향한 곳이 적벽이었다. 오(吳) 와 동맹을 맺고 함께 싸운 적벽대전에서의 완벽한 승리로, 형주(荊州, 후베이성) 를 손에 넣은 촉은, 그제서야 하나의 국가로서 우뚝서게 된다.(조조는 이를 두고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 이라고 말했다.)
유비가 죽은 후에도 그 뜻을 이어받기로 결심한 공명의 출사표는, 촉의 건국이념 그 자체였고, 자신을 믿어주었던 왕에 대한 충심이자 공명이 이루고자 하는 단 하나의 숙제였다. 나는 비가 흩뿌리는 마당에 앉아 미리 저장해 온 번역을 읽어내려갔다.
선제께서는 창업의 뜻을 반도 이루시기 전에 붕어하시고,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거기다가 우리 익주는 싸움으로 피폐해있으니 이는 실로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가 걸린 위급한 때라 할 수 있을 겁입니다. 그러하되 폐하를 곁에서 모시는 신하는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된 무사는 밖에서 스스로의 몸을 잊음은, 모두가 선제의 남다른 지우를 추모하여 폐하께 이를 보답하려 함인 줄 압니다.
(중략)
이제 다행히 남방은 이미 평정되었고, 싸움에 쓸 무기며 인마도 넉넉합니다. 마땅히 3군을 격려하고 이끌어 북으로 중원을 정벌해야 합니다. ... 이는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폐하께 충성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신에게 역적을 치고 나라를 되살리는 일을 맡겨주시옵소서. ... 그리고 신이 만약 제대로 그 일을 해내지 못하면 그 죄를 다스리시고 선제의 영전에 알리옵소서. ... 신은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 먼길을 떠나거니와, 떠남에 즈음하여 표문을 올리려 하니 눈물이 솟아 더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만히 글을 읽기만 하는데도 10분이 넘게 걸릴 정도로 장문이었다. 예로 부터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라고 하더니, 마지막 문장인 "눈물이 솟아 더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에 다다러서는 코 끝이 찡해졌다.
6번이나 북벌을 감행하면서도 끝내 실패한 그를 두고 후세의 평가가 갈리기도 하지만, 이 표문을 받은 당사자는 누구라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출사표는 구구절절 국가와 자신을 믿어준 유비에 대한 사랑과 충성, 헌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요즘 같이 사랑이나 신뢰 같은 복잡한 감정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군주와 신하라는 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명쾌하지만 제갈량의 마음은 그토록 애절했다.
무후사를 벗어나자 삼국지 무대를 배경으로 꾸민 진리 거리가 펼쳐졌다. 빼곡하게 들어선 상점가들은 저마다 삼국 영웅들을 기념하는 물건들을 팔았고, 해가 지자 거리는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찼다.
나는 복잡하고 소란스런 그 거리를 걸으면서도 공명의 생애에 대해 생각했다. 유비가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을 때, 제갈량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유비의 아들 유선은, 그 능력이 유비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훗날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요새" 라고 평가받는 검문관을 세웠을 때, 마음만 먹었다면 사천 땅에서 평화롭게 나라를 다스리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촉의 상황으로 보아 촉의 많은 무장들 역시 그것을 바랐을 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나아가기로 했고, 나아가야만 했다. 출사표에는 그 수많은 고뇌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어쩌면 결코 그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이 영웅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의 첫번째 공통점일지도 모른다. 이제 청두를 떠나, 그 긴 여정을 따라가 볼 것이다. 그에 앞서, 다녀올 곳이 한 군데 있다. 바로 유비가 사천 정벌의 시작을 알린 가맹관(葭萌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