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7개월의 세계일주
지금 생각해도 특이한 것이, 사직을 알리러 가는 내 손에는 이미 케이프타운행 항공권이 들려있었다. 출발까지 두 달이나 남은. 팀장님은 처음엔 믿지 않았고, 사실임을 알고 난 후에는 차일피일 대화를 미루셨다. 마지못해 도장을 찍으시던 날도 표정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퇴사의 마지막 관문인 임원 면담은 의외로 싱거웠다.
그렇게 5분 만에 끝났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다. 세계일주는 오랜 꿈이다. 애초에 나란 인간은 '입사 후 10년 뒤의 미래를 그려보라'는 자소서 질문에 '명예롭게 퇴직하고 세계일주를 떠나겠습니다'라고 썼던 놈이다. 그러니 정해진 미래였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10년이 4년으로 앞당겨졌을 뿐. 4년을 회사에 다니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곳을 다니던 그날 내내 12년째 줄곳 내 방 벽을 장식하고 있는 세계지도를 떠올렸다.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앞으로 얼마라 더 많은 세월 동안 저 지도를 바라만봐야 했을까.
주변에선 회사를 관두고 고작 여행을 가냐며 떠들어댔다. 그것도 무려 7개월씩이나.
"미쳤냐? 7개월? 회사 그만두고 7개월? 너 그러다가 인생 진짜 훅 간다"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체제에서 벗어나는 기간도 기간이지만, 대체로 학생이 아니고 직장인이라는 점을 더 문제삼았다.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졌던 어느 기업의 4년 차 연구원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만나오던 연인도 있었다. 무모해 보였겠지만, 1년에 걸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당시의 나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속품이었다. 몰아치는 대로 움직이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었다고 할까? 어쩌면 미래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뭔가 확신이 필요한 순간 우연히 들린 서점에서 '세계일주 바이블'이라는 책을 펼쳐보게 되었고, 그 순간 나와 여자친구의 미래가 결정되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라. 그 말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신입사원 교육 중에 한 임원이 했던 말이다. 어쩌다가 7개월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처음에는 1년이었으나 여자친구의 주름진 이마 앞에서 조금씩 숫자가 줄어들었다. 사실 내 미래를 위해 멋진 일이 될 거라며 기꺼이 다녀오라고 말해주는 것이 어딘가.
내 선택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서두에도 말했듯이 사람들은 내 결정에 대해 엄청나게 떠들어댔다. 무려 7개월의 공백으로 인해 내 인생이 끝날 것처럼. 그리고 7개월 후 그것은 거의 현실이 되었다. 여행이 끝난 뒤의 삶은 가혹했고, 새로운 것을 얻기는커녕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 것 모조리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쯤 떠나 봐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점에서 삶과 닮아있다. 비틀거리고 때로는 좌절하더라도 어떻게든 목적지를 향해 살아내는 점이 특히 그렇다. 이 글은 바로 그런 이야기다. 어느 날 궤도에서 벗어난 30대 남자가 어떻게든 목적지를 향해 한발한발 나아가는 이야기다. 이 궁색한 여행기를 통해 왜 인생이 여행에 비유되는지, 당신이 당신의 인생 어느 곳에서 미소 짓고 울음을 삼키며 여행하고 있는지 깨닫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