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 공화국
배웅은 자정이 되기 조금 전, 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늦은 시간,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공항까지 차를 몰았다. 큰 결심을 하고 떠나는데 혼자 보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내가 세계일주를 가겠노라 얘기했을 때, 제일 먼저 박수를 쳐준 사람도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였다.
“안 가면 안돼?”
끝내 울음을 터트린 그녀는, 그 말을 내가 떠나던 그 날에서야 겨우 입밖에 꺼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한 뒤에도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게이트로 등을 돌릴 때에는 흐느끼던 소리가 거의 통곡으로 바뀌어 자정이 넘은 고요한 공항에 울렸다. 다시 한번 가벼운 포옹을 마친 나는 ‘다녀올게’라는 말과 함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너무 많은 생각들로 잠들 겨를도 없이 아프리카에 도착했다. 두꺼운 헤드폰을 쓴 채 머리를 흔들어대는 옆자리 흑인에게는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아프리카가 갑자기 나에게 왔다. 내가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음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 추워. 무슨 아프리카가 이래.”
생전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밟은 나의 첫 감상은 다름 아닌 그것이었다. 하늘은 이제 막 해가 넘어가는 노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케이프타운에서 유일하게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었다. 동시에 거의 유일한 유색인종인 것처럼 보였다. 바깥은 쌀쌀하다 못해 추웠고, 하얀 피부에 파란 눈동자인 사람들의 시선이 쉼 없이 내게 머물다가 떠났다.
시내에 위치한 숙소의 카운터 직원은 그 날 내가 마주친 유일한 흑인이었다. 작렬하는 사바나의 태양과 허름한 반바지에 'Drogba'라고 새겨진 저지를 입은 흑인들은 대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아, 정말이지 나는 아프리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남녀가 허물없이 뒤섞인 6인실 도미토리를 안내받는 동안에도 서로가 뱉어내는 말들은 하얗게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빈 침대에 올라서자마자 이불로 몸을 덮었지만 여전히 이가 딱딱 부딪힐 지경이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독일 친구 소피가 손수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독일에서 교사로 일한다는 그녀는 정말이지 세계 어디에나 있는, 여행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 전형적인 독일인이었다. 자연스레 함께 여행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이미 만나기로 한 일행이 있다고 말하던 참이었다.
“친구가 와? 한국에서? 부모님은 어디 계셔?”
나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러자 그녀는 한국에서는 어린 학생들끼리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 유행이냐고 다시 물었다.
“무슨 소리야. 나 서른 살이 넘었어. 너보다 나이 많을 걸?”
소피는 매우 혼란스럽고도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미안. 내가 잘 못 들었나? 30?”
가지고 있는 옷을 모두 꺼내 입고도 겨우 잠들 수 있던 그 추운 남아프리카의 첫날밤, 나는 내 여권을 몇 번이나 확인하던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머리 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다음 날이 되자 더 큰 문제가 터졌다.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어젯밤 9시, 케이프타운 시내를 가로지르는 롱스트리트(이름처럼 정말 길다.) 끝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만났어야 했다. 여기서 우리라 함은, 기준과 도영이다. 우리는 한 달 전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에서 만났다. 거기서 같은 날 케이프타운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희망봉 렌터카 여행을 위해 뭉치기로 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라는 낯선 땅에서, 그래도 말이 통하는 동행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가.
그러나 둘은 어젯밤 9시의 맥도널드에도, 오늘 아침 10시 나미비아 대사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며칠 후 방문하게 될 나미비아 비자를 신청해야 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확실했지만,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다. 와이파이를 찾아 거리를 헤매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한 도시의 아침 어디에도, 와이파이는 잡히지 않았다. 큰 호텔이나, 겨우 문을 연 카페를 들락날락할 때마다, City Guard라고 적힌 옷을 입은 사람들의 시선이 꽂힐 뿐이었다. 마침내 어느 호텔 앞에서 와이파이가 연결이 됐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개의 카톡 알람이 뒤엉켜 고요한 거리에 퍼진다. 그러자 근처의 경찰 한 명이 냅다 뛰어왔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나 보다.
“아니,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그저 와이파이를 찾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에요. 아니, 물론 내가 이방인이긴 하지만…”
스스로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엉터리 영어를 쏟아냈다. (이상한 사람- strange person과 이방인-stranger 은 정말 한 끗 차이다.) 키가 190은 될 것 같은 그는, 고개를 거의 수직으로 꺾어 나를 내려다보더니 한마디만 남긴 채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버리는 게 아니라면, 그 핸드폰은 넣어 두는 것이 좋아. 순식간에 니 눈앞에서 사라질 거라고.”
채팅창에는 예상대로 장문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홍콩에서 갈아타는 비행기가 폭풍우를 만나 하루가 지연됐다는 이야기. 원래 묶으려고 했던 숙소에 예약 변경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오늘 오전에 케이프타운에 도착하는 대로 바로 나미비아 대사관으로 가겠다는 이야기까지. 나는 메시지를 다 읽지 마자 나미비아 대사관을 향해 뛰었다.(그 경찰관이 무전기에 입을 갖다 대는 것을 본 것도 같다.) 사무실 안에는 여전히 직원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1초가 1분 같고, 1분이 1시간 같은 시간이 흐른다. 마침내 누군가 요란한 소리의 캐리어를 끌고 문을 여는 순간, 내 귀에는 ‘The Power of Love’ 가 들렸다.
“형!”
훤칠한 체구의 기준이가 먼저 크게 외쳤고, 우리는 마치 오래전 헤어진 가족처럼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틀간 마음 졸였던 둘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고, 듣다 못한 대사관 직원이 책상을 두드렸다.
“그래서 나미비아 갈 거예요? 말 거예요?”
“가요. 가야죠!”
그렇게 비자를 신청하고, 예상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렌터카 사무실에 들려 차 키를 건네받고 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근데 너네 참 대단하다. 특이하기도 하고. 그 어린 나이에 커플여행을 하필 아프리카로 오다니”
“에이, 형이 더 대단하죠. 회사를 관두고 세계일주라니요”
“저는 오빠가 여자 친구분을 두고 왔다는 게 더 대단한데요?”
여행을 떠나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기본적으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91년 생이건 81년 생이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호기심이다. 바로 저 창 밖에 있는 무언가를 직접 보고 싶다는 그 근원적인 욕구. 10명 중에 9명이 다녀온 유럽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갈증 말이다. 그 호기심의 대상이 희망봉으로 가는 로드 트립이라니. 나는 이때부터 아프리카라는 곳이 어쩌면 계획이 의미가 없는, 예측이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차가 도심을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캠스베이(Camp’s Bay)에 닿았다. 일자로 쭉 뻗은 해안과 마주 보는 드높은 산, 그 아래에 일렬로 주차되어 있는 차들은 온통 햇빛을 잔뜩 뿜어냈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뜨거운 태양이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바다와 하늘, 지상, 어디를 봐도 눈부신 풍경들뿐이었고, 정말이지 내가 아는 아프리카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여행이 본 궤도에 올랐음을 실감했다. 내가 진짜 떠나왔구나 하고 말이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 풍경을 따라 채프먼스 드라이브(Chapman’s peak drive)로 접어들었다. 이번에는 구름이라기보다는 물감으로 그려진 듯한 흰색 띠를 품은, 전형적인 남반구의 하늘과 바다가 펼쳐졌다. 명색이 드라이브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차는 한 참 동안이나 없었다. 바람이라도 불지 않았다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아프리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차가 다시 언덕을 내려가던 찰나, 수십 마리의 원숭이 때가 길을 가로막았다. 하늘을 반쯤 가린 거대한 나무와 지상 사이를, 수십 마리의 원숭이들이 뛰어다닌다. 놀라는 우리가 재미있는지, 개중에 몇 놈은 차 위로 올라와 방방 뛰기도 했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면서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상상 이상의 장면과 마주치면 그렇게 된다.
가령, 무심코 걸터앉은 어느 국립공원 산책로에서, 사람 머리보다도 큰 타조 알을 발견하게 된다면 말이다. 우리는 또 한참 호들갑을 떨었다. 가까이 가서 손을 댈지 말지를 고민하던 그때, 멀리서 그 소리에 반응한 어미 타조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몸을 움직일 생각조차 못했다. 키는 2미터가 넘을 듯했고, 눈매는 매섭다. TV에서 볼 때는 얇기만 하던 두 다리는, 굵고 튼튼했다. 걷어차이기라도 한다면 도저히 무사할 것 같지 않았다. 눈치만 보던 우리는 슬그머니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치다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형. 우리 방금 죽을 뻔한 거 맞죠?”
“그런 거 같아”
“근데 왜 자꾸 웃음이 나죠?”
모든 상황이 만화 같다. 폭풍우를 뚫고 도착했더니 눈부신 바다가 펼쳐지고, 숲이 우거진 도로에서는 갑자기 원숭이 떼가 길을 가로막더니, 공원 산책로에는 뜬금없이 타조 알이 나타났다.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네”
그 말이 그제야 튀어나왔다.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다. 이런 경험을 다른 어디에서 할 수 있을까. 그 기이한 산책로의 끝에서 우리는 마침내 희망봉과 마주쳤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이자 아프리카의 끝. 수 세기 전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이곳을 처음 발견하고 폭풍의 곶(Cape of Storm)이라는, 게임 제목 같은 이름을 붙였다.
절벽 위에서 대서양과 인도양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파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은 여기를 통해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고, 이는 곧 새로운 희망이었다. 이것이 케이프 오브 호프(Cape ofHope)라는 이름의 유래다. 우리는 이곳을 아프리카의 시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어쨌거나 아프리카의 시작이었고, 거대한 여정의 첫걸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절벽의 끄트머리를 향했다. 절대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는 듯했다. 동시에 마침내 이 먼 곳까지 왔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아득함, 그리고 그 고립감이 주는 묘한 안도감. 그러자 나도 모르게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하길 진짜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