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Jesus
케이프타운에 온 지 사흘째다. 기준과 도영이 3주간의 아프리카 트럭투어를 위해 아침에 먼저 떠났다. 이미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지만 헤어짐은 아쉬웠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너무나 멀고 너무나 막막한 땅이니까. 헤어지기 전날 함께 테이블 마운틴에 올랐다.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던 어느 바위에 셋의 이름을 함께 새기고는, 저녁에는 수많은 술병을 비워냈다. 사흘 만에도 이렇게 정이 깊어질 수 있구나 싶던 그 밤을 지내고 나 역시 버스에 올랐다.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Windhoek)로 가는 버스였다.
버스는 해가 완전히 진 후에 국경에 도착했는데, 사람들과 짐을 남아공 국경에 내려주고 버스가 사라지자 갑자기 불안해졌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중에 여행자처럼 보이는 사람은 한 손에 꼽힐 정도뿐이다. 출입국 관리소에서는 모니터를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 엑스레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방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총을 든 경찰들이 버스를 뒤지는 동안 나는, 도로 위를 걸어서 왔다 갔다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엔 처음이야?”
“응. 그리고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것도 처음이지.”
“그래? 어디서 왔는데?”
“한국”
그때가 우리가 처음 대화를 나눈 시간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다. 스페인에서 왔다는 그는 적어도 일주일은 면도를 안 한 듯한 모습이었는데, 이름이 지저스라고 했다. 내가 갸웃거리자 그가 여권을 내밀었다.
“지저스? 이름이 지저스야? 저 위에 있는 그분?”
나보다 한 살이 많은 그의 여권에는 정확하게 Jesus라고 쓰여있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녀석은 웃으며 헤수스라고 말했다. 스페인어로 발음하면 헤수스라며.
그렇게 버스 옆자리라는 인연으로 우리는 동행이 되었다. 헤수스는 그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간 꼼꼼하고 깐깐한 게 아니었다. 가령 스무 시간을 달린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택시를 잡을 때, 헤수스는 40 나미비안 달러(약 3천 원)를 부르는 택시기사를 모조리 손짓으로 보내버렸다.
"말도 안 돼. 너무 비싸. 20 달러면 충분하다고"
몇 대의 택시가 지나고, 30달러를 부르는 기사가 나타나자 이번에는 미터기가 없다는 이유로 보내버렸다. 어차피 고정 가격인데 미터기가 무슨 상관인가. 헤수스는 저런 택시는 자기 차로 영업을 하는 불법 택시기 때문에, 다른 택시에게 피해를 준다고 했다. 나는 ‘20시간짜리 장거리 버스에서 내린 동양인이, 아프리카 택시의 생존권을 보장해줘야 된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고 싶은 복잡한 심정은 묻어두고 잠자코 있기로 했다.
마침내 30달러에 미터기가 있는 택시를 붙잡았다. 아침 식사 준비가 한창인 숙소에 도착했을 때 그는, 제공되는 음식들이 무료인지, 재료가 뭔지 묻는가 하면, 야외 테이블을 청소하고 있는 직원의 이름을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 돈을 쓰는 일에 있어서는 신중했다. 우리는 사막으로 가는 비싼 투어비를 지불하는 대신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고, 그 날 오후에만 총 세 군데의 렌터카 사무실을 방문했다. 결국 선택받은 차는 폭스바겐 폴로였고, 수동이었다.(오토매틱은 10달러가 더 비쌌다.)
녀석은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아프리칸 웨이라는 말을 자주 섰는데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봐봐. 쥬드. 이게 바로 아프리칸이야. 이게 바로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사람들이 물건을 길거리에서 직접 사고팔고 있어.”
실제로 그랬다. 고작 국경 하나 넘었을 뿐인데, 빈트후크는 수도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케이프타운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에는 죄다 좌판이 벌어져 있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사람, 젖먹이에게 젖을 물린 사람, 아예 꼬마들끼리만 나와서 장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나다니는 행인 수만큼이나 많은 좌판이 벌어진 그 거리에서는 무엇이든 살 수 있었다. 식용품이나 일용품 같은 작은 것들부터, 핸드폰, 면도기, 심지어 삼성 TV까지 죄다 거리에서 사고 판다.
반면에 멀쩡하게 지어져 있는 거대한 쇼핑몰은 휑했다.
“나는 이런 곳에서 물건을 사느니, 그냥 숙소에서 사 먹는 게 낫겠어.”
저녁거리를 사러 들린 대형 슈퍼마켓에서 헤수스는 결국 그렇게 말했다.(물론 아프리칸 웨이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리에서 파는 식품을 사기엔 용도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온 그 날 저녁 나는 비장의 무기 3분 카레를 꺼냈다.
“세상에. 한국은 대체음식에 뭘 넣는 거야. 고작 3분 데운 인스턴트가 이렇게 맛있다니. 갑자기 스페인의 주방장들이 불쌍해지는 군.”
그것이 그날 내가 처음으로 헤수스의 웃는 얼굴을 본 순간이었다. 대신 신은 나의 웃는 얼굴을 앗아갔다. 아침이 되자 핸드폰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제야 기억을 되감아 봐도, 대체 언제부터 없어진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통신이 안 되는 핸드폰은 전혀 쓸모가 없으니, 아무렇게나 침대 어딘가에 두었던 것 같다. 아니, 그것도 확실하진 않다. 나는 겨우 어제 빈트후크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렌터카를 알아본 뒤 지금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유감을 표하는 헤수스의 눈은 ‘이봐,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잖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달래며 하얀 폴로에 올라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가 막힌 솜씨였다.
도시를 벗어난 나미비아는 푸른 숲과 바다 대신 시야를 가득 메운 누런 모레와 황무지가 펼쳐졌다. 아프리카 서쪽의 대서양과 대륙을 가로지르는, 길이 1600km 의 나미브 사막(Namib Desert)이 그 원인이다. 나름대로 인상적인 장면이었지만, 우울한 기분 때문인지 나는 별 대화 없이 스와콥문드(Swakopmund)에 도착했다. 숙소를 찾는 동안 이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에서 샌드 보딩 투어라고 적힌 간판을 50번은 지나쳤는데, 기어코 헤수스가 한 마디 했다.
“나는 이래서 유럽인들이 싫어.”
사막의 모래언덕은 자연의 산물인데 왜 여기서 유럽인들이 돈을 받고 있냐는 거다. 뭐든지 가만 내버려 둘 줄을 모른다는 유럽인들이 운영하는 수많은 샌드 보딩 투어 회사들은, 서로 담합이라도 했는지 모두 같은 가격인 350 나미비안 달러를 불렀다. 일단은 숙소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니 나도 한발 물러서기로 했고, 그렇게 시내를 세 바퀴는 돌았다.
“안돼. 말도 안 되는 가격이야”
녀석이 그렇게 말하며 삐걱거리는 게스트하우스 문을 빠져나올 때마다 내 눈은 '방 있음. 130 나미비아 달러'라는 글자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나 내가 ‘고작 13유로야. 13!’라고 불평하기 전에 녀석의 아프리카 정신(?)이 기어코 목표물을 찾아냈다.
“쥬드! 여기야 여기. 하룻밤에 고작 30달러라고”
나미비아 유스호스텔이라고 거창하게 적힌 외부의 간판과 달리, 내부는 아주 크고 아주 휑했다. 우리는 2층 침대가 무려 12개나 놓여 있는 운동장 같은 방으로 안내받았는데, 침대의 싸구려 스프링과 나사는 제대로 조여지지 않아 심하게 삐걱거렸고, 테이프로 붙여놓은 깨진 유리창과, 장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내부가 자연스레 유치장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봐봐. 이게 바로 아프리칸 웨이지. 아프리칸들이 130달러나 주고 그런데서 잠을 자는 멍청한 짓을 하겠냐고”
글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대신 녀석이 기분 좋아진 틈을 타 샌드 보딩 투어를 제안했고, 제대로 먹혔다. 역시 여행에서는 놀고먹는 게 최고의 미덕 아니겠는가. 비록 안젤리나 졸리가 출산을 위해 별장을 지어 일광욕을 즐겼다는 해변은, (헤수스에게 얘기했더니 녀석은 그게 누구냐는 표정이었다.) 흐린 날씨와 강한 바람에 온통 흙탕물로 변해 있었지만, 적어도 하나는 건졌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다음날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 뭐래는 거야. 이 지자스가!”
나는 또 말을 삼켰다. 아침에 헤수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픽업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홀로 준비를 끝내고 바깥으로 나오니 뜬금없이 조깅을 하고 있는 녀석과 마주쳤다.
“이봐. 쥬드. 나는 도저히 못하겠어. 나는 내가 유럽인들에게 둘러싸여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보딩을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어. 이미 가게에다가 말은 해뒀으니까 혼자 즐기고 오라고.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녀석은 다시 속도를 내며 사라져 버렸고, 결국 나는 홀로 투어차량에 던져졌다. 약 스무 명 정도 되는 참가자들은 헤수스의 예상대로 전부 유럽인들이었다. 복잡한 생각이 밀려들어올 때쯤, 간단한 설명이 끝났고 사람들은 저마다 보드를 하나씩 짊어지고 모래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래 언덕 꼭대기까지는 겨우 500m 정도. 그런데도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발등을 덮은 사막의 모래는 한걸음을 올라가면 꼭 그만큼 미끄러졌다. 뒤에서 그 행렬을 보고 있으니 끊임없이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 같다.
설탕가루보다도 부드러운 사막의 모래에서 경험하는 보딩은 정말이지 색다른 재미였지만, 그 보다 더 황홀한 건 언덕에서 바라보는 나미브 사막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모래의 굴곡이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계속해서 펼쳐진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서는 눈도 뜰 수없을 만큼 강한 태양빛이 내리쬐던 그 풍경을 보고 있으니, 땅이 일렁이며 움직이는 것만 같다. 수십 번 모래를 뒤집어쓰고, 마지막으로 나무판자 하나만 붙들고 시속 77km 의 속도로 언덕을 내려오는 것으로 나는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렸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헤수스는 그늘에서 막 벗어난 벤치에 비스듬히 누워,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신이라기보다는 괴짜에 가깝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오전 내내 시내를 돌아다니며 많은 생각을 했다는 그의 표정은 한층 평화로워 보인다. 아니 어쩌면 신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