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신을 믿지 않는 남자

소서스블레이, 나미비아

by JUDE


소서스블레이(Sossusvlei). 나미비아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황야 한가운데 자리 잡은 붉은 사막을 일컫는 이름이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발음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막 한가운데서 전화가 가능한 시대에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었다. 왠지 아프리카 고대 주술의 힘이 깃들어 있을 것만 같은 그곳에, 하얗게 칠해진 금속 괴물을 타고 도착해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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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스와콥문드를 빠져나가자마자 시작되었다. 돌과 흙이 뒤섞여 자연 그대로 굳어진 도로(라고 짐작이 되는) 위로, 스프링 벅스(남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사슴과의 동물) 들이 뛰어다녔다. 차가 달리면 멈춰 서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차가 멈추면 뺑소니를 친다.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나는 동안, 계기판은 한 번도 40km를 넘지 못했다. 핸들은 사정없이 흔들려서 쥐고 있는 양손에 온 힘을 집중해야 했고, 그 진동은 고스란히 허리의 통증으로 전해졌다.


다시 두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는 이제 오늘 안에 소서스블레이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지를 걱정해야 했다. 황무지의 노을은 유난히 선명했다.


심하게 요동치는 차를 잠시 세웠다. 멀미가 날 것 같은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는 동안, 아프리카의 거대한 태양이 진다. 아직 해가 모습을 감추지 않았는데, 동시에 뒤쪽으로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달이 뜨고 있었다.


"저게 태양인가?"

"아니 그건 달이야 쥬드."


사실 어떤 것이 태양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배가 고팠다. 설마 네 시간 전에 지나친 스와콥문드 외곽의 그 쇼핑몰이 마지막 문명지 일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네 시간을 운전하는 동안 마주친 차는 단 세대였다.(물론 반대편 차선이었다.) 배낭을 뒤지자 물 한 통과 마른 빵 몇 조각이 나왔다. 배는 고프지만 먹고 싶지는 않았다. 목을 더 마르게 할 뿐이다.


시야를 돌리자 멀리서 한 무리의 얼룩말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태양빛이 사그라들자 녀석들의 눈은 별처럼 반짝였고, 그 곁을 거대한 타조들이 뛰어다녔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내가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어. 우린 대체 어느 혹성에 불시착한 거야. 우린 분명히 폴로에 타고 있지 않았어?"


네 시간 동안 지나다니는 차가 세대뿐인 길 위에는, 고요한 황야와 네 발 짐승, 두 개의 태양,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딱딱한 빵 조각을 씹고 있는 두 인간뿐이었다. 그때 녀석이 마치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잘 익은 토마토와 치즈를 건넸다.


"걱정 말라고 쥬드. 우리가 할 일은 어디선가 사자가 튀어나오기 전에 가던 길이나 가는 거지."


소스서 블레이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세상은 온통 어둠 속이었고, 그나마 몇 개 있는 건물들이 모조리 문을 닫은 그 시간, 불빛이라고는 폴로가 내쏘는 헤드라이트뿐이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어느 거대한 나무 아래 차를 대고 카 시트를 뒤로 젖혔다. 물론 쉽게 잠이 들지는 않았다. 너무 고요해서, 서로의 심장소리가 들릴 듯했다.


"혹시 니 노트북에 영화 같은 거 있어?"

"있지. 하나 골라봐."


나는 노트북을 열어 녀석에게 건네었는데, 하필 녀석이 고른 영화는 존 카펜더 감독의 '더 씽'(남극탐사대원들이 빙하 속에 잠들어 있던 외계 생명체에게 살해당하는 공포영화)이었다.


"완벽하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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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입구는 새벽 다섯 시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차들이 줄을 섰다. 이제 막 일어난 관리인들이 차벽을 치우는 것이 보였다.


"아직 지구네"

"그래. 비록 하늘은 닫혔지만 말이지"


헤수스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흐린 구름이 잔뜩이다. 그제야 지난밤이 유난히 어두웠던 이유를 깨달았다. 이래서야 사막의 모래 언덕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물 건너갔다.


소서림, 소서스블레이(Sesriem, Sossusvlei)라고 써진 공원 입구를 통과하니, 그제야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가 나왔다. 17시간 만이다. 그러나 채 삼십 분을 못가 '4X4 차량만 진입할 것’이라고 적힌 간판 앞에서 멈춰 서야만 했다.


“오늘은 사람이 적네. 다 찰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사막 안을 돌아다니는 지프 기사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지프에는 당연히 한 명도 없었다.


“얼마지?”

“10달러”


말이 끝나자마자 ‘노 웨이’ 라며 고개를 돌린 헤수스가 성큼성큼 모래사막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 녀석이 왜 저러나 싶었다. 그런데 모래가 발등을 덮는 길 끝의 코너까지 걸어간 녀석은, 뒤를 돌아보더니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쥬드! 뭐 해. 얼른 출발하자고!"


진심이야? 진심이냐고. 모세는 홍해를 갈랐는데 모래사막을 갈라놓기라도 할 거냐고. 물론 이번에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진심이야? 5킬로나 되는 사막을 걷자고? 물도 없이? 돌아오는 것도 생각해야지!"


나는 온 진심을 담아 얘기했는데 녀석은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했다.


"걱정 마. 히치하이킹하면 돼"


히치하이킹이라니. 사막 한가운데서 히치하이킹이라니. 정신이 나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그것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걷기 시작한 지 20분쯤 됐을까? 굉음을 내며 지프차 한대가 곁을 지나쳤다. 먼저 출발한 여행객들을 데리러 간다던 드라이버는, 기꺼이 우리를 첫 번째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다.


이쯤 되니 나는 녀석의 모든 행동이 제법 치밀하게 준비된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분은 항상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다지 않은가. 헤수스는 드라이버에게 공원 내 야생동물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 사막에서 어떻게 먹이를 구하고 살아가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 모습이 마치 자기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지프는 데드 블레이(Deadblei)라는 표지판 앞에서 멈췄다. 5분 정도 걸으니 발등을 덮던 모래 대신 딱딱하게 등껍질을 드러낸 분지에 도착했다. 사방은 붉은빛을 띤 모래언덕으로 둘러 쌓였는데, 그곳 만은 바닥에 모래 한 줌 없이 그저 딱딱했다. 땅속 깊이 뿌리 박힌 채 죽은 나무들은 묘한 세기말 분위기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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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감탄사를 내뱉어야 할지도 모른 채 넋을 잃고 그 공간을 맴돌았다. 아주 오래전 물이 고여 있다가, 물의 흐름이 바뀌고 사막화되면서 결국 딱딱한 바닥을 드러냈단다. 머리 속으로 '여기는 지구야'라고 되뇌어도, 발을 내딛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아니, 함부로 발을 디뎠다간 사방의 모래가 덮쳐와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딱딱한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것이 데드 블레이라고 이름 붙은 진짜 이유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우리 둘 뿐인 그 공간에서, 나는 하마터면 우리가 알던 세상은 끝난 거냐고 물을 뻔했다. 한참 뒤에야 단체 여행객 한 무리가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 순간 내 귀에 또렷한 한국말이 들렸다. 이번에도 귓가에 Power of Love가 울려 퍼진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영아! 기준아!”

“형!!! 우와 아아아 아!!”


케이프타운에서 헤어졌던 영과 기준이었다. 우리는 또 한 번 얼싸안고 춤을 췄다. 영문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리포터가 되어 온통 사진을 찍어댔다.


“오빠 안 추웠어요? 우리 진짜 어제 텐트에서 자는데 얼어 죽는 줄 알았어요. 근데 빈트후크에는 옷 살 데도 없고, 아 진짜 너무 추워서 죽을 뻔했어요”


아마도 트럭투어는 전 일정이 텐트 야영인 모양이다.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 뒤늦게 헤수스를 쳐다보니 녀석이 윙크를 하며 웃는다. 뭐야 그 웃음은. 너는 알고 있었어? 그런 거야? 여기 있는 모두는 너의 방주에 올라탄, 선택받은 사람들이었던 거야?


그러는 동안, 헤수스는 한 무리의 스페인 여행객과 만났다. 그들은 나가는 길까지 동행하자며 기꺼이 지프차의 구석자리를 내어줬고, 우리는 그렇게 소서스블레이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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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넓은 호수 뒤로 끝도 없이 뻗은 모래언덕의 능선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떼 같다. 간밤의 피로 탓인지 헤수스도 나도 섣불리 그 대열에 끼지 못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날린 고운 모래가 물가에 흩뿌려지는 모습만으로 충분하기도 했다.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웠던 나는, 아름다운 소서스 블레이와 헤수스의 옆얼굴을 자꾸만 번갈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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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돈 한 푼 안 들이고 거대한 사막을 모두 돌아 나오는 길, 우리는 그 유명한 모래언덕 듄45(소서스블레이 공원 내의 모래언덕에는 저마다 숫자가 붙어있다.) 앞에서 멈췄다. 나는 금방 올라갔다오겠노라며 전속력을 향해 언덕으로 내달렸지만, 겨우 몇 미터를 가지 못하고 발이 미끄러졌다. 간밤의 피로로 지친 탓인지 발버둥을 쳐도 발목까지 모래에 잠긴 발은 너무나 더뎠고, 몇 번 허우적거리자 자연스레 지상으로 끌려 내려왔다.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그 붉은 언덕은, 그야말로 외계의 것이라야 더 어울릴 것 같은 그런 모습이다.


“아쉽지 않겠어?”


터벅터벅 내려오는 나를 보고 헤수스가 물었다.


“괜찮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나는 선택받았고, 녀석은 케이프타운에서부터 나를 지켜보며 이 모든 것을 준비했다. 계획은 훌륭하게 실행되어 빵 두 조각과 토마토, 치즈 하나로 그 먼 길을 달려 영과 기준을 다시 만났다. 히치하이킹(?)으로 사막 안을 돌아다니다, 하필 스페인 사람을 만나 다시 사막을 빠져나왔다. 장담하는데, 소서스블레이 국립공원을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한 사람은 우리 둘 뿐일 것이다. 헤수스는 그 스페인 여행자들에게서 지도를 하나 얻었는데, 지도 위에는 다시 빈트후크로 가는, 비교적 상태가 좋은 도로가 빛나는 형광 펜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까 그 드라이버가 말해줬는데, 바람 때문에 여기 모습이 매일매일 조금씩 바뀐데. 아마 다음에 오면 또 다른 모습일 거야”


그래도 붉은 사막은 영원하겠지. 또 다른 모습으로.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느껴지는 그 묘한 울림도.


돌아오는 길, 빈트후크가 얼마 남지 않은 길 위에서 우리는 한 남자를 태웠다. 히치하이킹을 하기에는 너무 외딴 길이었는데, 농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를 어느 민가 앞에 내려주었는데, 공사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철판으로 덧댄 대문이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열리면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의 팔에는 온통 새까만, 그러나 눈만은 그 어떤 것 보다 빛나는 아이가 안겨 있었고, 둘은 가볍게 포옹을 하더니 이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것이 단순히 우연이었을까? 그저 저 남자가 운이 좋은 것일까? 어쩌면 처음부터 헤수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믿음이 생겨나는 과정을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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