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방고 델타, 보츠와나
여행자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있을까. 특히 여행을 시작한 지 며칠 안된 사람이라면 말이다. 새벽 5시, 해도 뜨지 않아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헤수스의 휴대폰 불빛 아래 짐을 챙겼다.
“잘 가 쥬드. 나중에 스페인에 오면 세비야에 꼭 들려”
이불 밖으로 겨우 눈, 코, 입만 꺼낸 채 소곤거리는 헤수스와 짧은 악수를 하며 묵직한 배낭을 멨다.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녀석이 한마디 거든다.
“아, 너 핸드폰 잃어버린 거. 정말 유감이야. 한국에 있는 여자 친구가 실망하지 않아야 할 텐데”
연락이 두절된 지 삼일째. 녀석은 어제저녁, 초초함에 연신 손톱을 물어뜯던 나를 본 것이 분명하다. 짧은 작별인사를 끝내고, 마중 나온 픽업차량에 올라 다시 한번 국경을 넘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국경을 넘는 버스가 없어서, 무려 10만 원을 넘게 주고 택시를 고용했다.
보츠와나 국경의 모습은 나미비아와는 또 달랐다. 인적이 드문 도로 양쪽으로 아직은 누런 초원이 펼쳐졌고, 이따금씩 창 밖으로 코끼리와 기린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언제 또 스쳐지나 갈지 모를 그 생경한 모습 때문에, 목이 뻐근할 때까지 창문 밖을 바라봐야만 했다.
오후 3시에야 도착한 보츠와나의 마운(Maun)이라는 곳은,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에 가깝고, 마을이라기보다는 판자촌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다행히도 주로 외국인을 위한 숙소만은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방을 빼고는 실내공간이 하나도 없어 야생의 느낌이 확 들었다.
숙소 바로 뒤로는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긴 오카방고 강(Okavango River) 이 흐른다. 다듬어지지 않은 통나무에 움막을 연상시키는 지붕을 얹은 숙소의 바에는 각국의 여행자들이 모여 맥주와 햄버거를 즐겼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팝송도, TV에서 중계중인 런던 올림픽도, 모든 것이 이 야생 세계에 첫걸음을 들인 손님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제법 추위가 가실만큼 따뜻한 공기가 흐른다. 그때 바 옆에서 TV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요란해지더니, 보기만 해도 수염이 따가워 보이는 외국인이 말을 걸었다.
“너 한국인이지?”
“그런데요?”
아마도 내 배낭의 국기를 보았으리라. 2012 런던올림픽이 한창이던 그때, TV에서는 Shin이라고 적힌 펜싱선수 한 명이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금메달 결정 전에서 무언가 오심이 벌어진 상황. 화면에서는 독일 선수의 최종 공격이 몇 번이나 리플레이되었고, 마지막 1초가 세 번이나 반복되는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 “오우… 노!” 라며 탄식했다. 스스로 독일인임을 밝힌 한 남자는 유감이라며 굳이 맥주 한 병을 사주기까지 했다.
"다음에는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그녀의 재능은 엄청나"
글쎄. 그 억울한 눈물을 보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다음 올림픽까지는 4년이나 남았고, 그때에도 결승전에 간다는 보장은 없으며, 무엇보다 이런 해프닝으로 기회를 날리기에는 그녀가 치른 지난 4년간의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상대적으로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는 내 현재를 즐기기로 했다.
짐을 풀고 바에 앉아 있으니 강가의 기분 좋은 바람에 이름 모를 잎사귀가 리드미컬하게 흔들렸다. 긴장이 풀리자 허기가 져 눈 깜짝할 새 거대한 햄버거 하나를 해 치운다. 적당히 시간을 보낸 뒤 바깥의 자연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는 손님 다섯 명이 가득 차기 전까지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흐르는 강에는 하마와 악어가 기웃거리고, 거리에는 코끼리와 거린 이 어슬렁거리는, 자동차로 고작 여섯 시간 떨어진 이웃나라 나미비아의 돈을 생전 처음 본다는 택시기사가 있는 마을. 마트에서는 공장에서 만든 딸기 맛 쿠키가 2,500원인데 500g짜리 티본스테이크를 3,000원이었다. 약한 불 때문에 레어라고 하기에도 너무 덜 익은 스테이크를 먹는 그날 밤, 강가에는 높고 아늑한 울음소리가 간간히 울려 퍼졌고, 온 하늘은 별들로 가득했다. 그녀와의 물리적 거리가 또렷하게 느껴지는 아득함. 그럼에도 그 아득함이 너무나 좋았다. 내 손으로 움켜쥔 기회를 마음껏 즐기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다음 날도 새벽 5시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카방고 델타를 보기 위해서긴 했지만, 끊길 듯 끊기지 않던 울음소리 덕분에 푹 자기는 힘들었다. 하마 주의라는 팻말로 보아, 그 낮은 울음소리는 하마의 것이었을까. 칼라하리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오카방고 델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삼각주이지만 결코 바다를 만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바다 쪽으로 흐르지 않고, 서쪽의 칼라하리 사막 위로 퍼졌기 때문이다. 삼각주라는 단어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나에게는 그저 고요한 강처럼 보였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보트가 움직일 채비를 한다. 나는 하나뿐인 얇은 외투를 움켜쥐며 보트에 올랐다. 같은 방에서 묶었던 미라와 베티도 함께였다. 어스름한 새벽빛을 뚫고 출발한 보트는 델타 위를 한참 동안 달렸다. 맑은 수면 위에 또 하나의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고, 강을 따라 자리 잡은 숙소와 카페, 원주민 부락 등 다양한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완전히 이곳의 자연과 어우러진 그 모습들을 지나쳐 도착한 한 원주민 마을에서 우리는 모코로(Mokoro)라고 불리는 작은 조각배로 옮겨 탔다. 무릎보다 낮은 높이에, 사람 두세 명이 앉아서 가는, 마치 고무신 같이 생긴 배였다. 오로지 나무로만 만들어져 포근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니, 곧 흑인 한 명이 배에 올라탄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찰리. 선생님의 사공입니다.”
말끝마다 sir를 붙이는 말투가 신경 쓰여 얼굴을 보니 아직 소년 티를 채 벗지 못했다. 소년은 모코로의 반대편 끝에 올라타 균형을 잡기 시작하더니 긴 장대를 이용해서 배를 몰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용히, 물살 가르는 소리도 없이 나아간 배가 수풀 사이를 이리저리 헤맨다. 마치 아주 오래전 태초의 지구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시릴 정도로 새벽의 차가운 바람도 잊고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며, 오카방고의 속살을 바라보는 그 감흥이란.
나는 모코로가 이 소년들의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생태계를 보호하면서 이 원시 지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이만한 수단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요란한 보트 소리로 야행성인 하마를 깨워서 좋을 일이 없다. 덕분에 코끼리나 악어 같은 야생동물들의 관심 밖에서 천천히 그들을 관찰할 수 있는 셈이다.
정오가 되자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육지를 올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에서 엄마와 함께 온 베티는 잠비아에서부터 차를 빌려 보츠와나로 내려왔다고 했다. 얼떨결에 자동차 세를 내지 않고 국경을 넘어, 온갖 고생 끝에 여기까지 온 그녀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같은 방에서 묶은 미라는 네덜란드의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방학 때마다 다른 나라로 여행한다고 했다. 역시 유럽인 다웠다.
“그런데 쥬드, 너는 회사를 왜 그만둔 거야? 오로지 여행 때문에?”
나는 본격적으로 내 짧은 모험담과 앞으로의 원대한 계획을 얘기할 생각이었기에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베티는 이미 3개월이나 여행 중이지만, 회사를 그만 둘 필요가 없었다. 교사라는 직업은 여행을 하기에 무척 적합하다.
단지 세계일주가 하고 싶어서라고 말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개연성이 부족한 소설이 되어버린다. 세계여행이 하고 싶은 것과 회사를 그만두는 것 사이에는 큰 연관관계가 없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 회사를 그만둘 이유는 여행 외에도 많았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의 현실은 나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회사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하필 지금, 회사를 그만뒀을까. 한참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느끼며 적당한 단어를 찾다가 문득 어제 tv에서 본 펜싱선수가 생각났다.
"기회비용"
"무슨 비용?"
나는 길어질 문장을 다듬게 위해 다시 머릿속으로 아는 영어단어들을 굴려댔다. 이럴 때 핸드폰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음… 일단 한국에서는 일을 시작하면 길게 여행할 기회가 오지 않아. 몇 달은 고사하고 일주일도 힘들지.”
베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아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일에 대한 높은 열정(?)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더 큰 이유는 유럽인의 일주일과 한국인의 일주일은 그 가치가 달라. 예를 들면, 내가 에펠탑을 몇 번이나 보고 죽을 수 있을까? 아마도 한 번? 많아야 두세 번? 그 마저도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지. 예컨대 내가 미라 너처럼 암스테르담에서 살고 있다면 주말마다 기차표 한 장으로 에펠탑을 볼 수 있는 거잖아. 내가 원하는 만큼, 언제든지."
그랬다. 내가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어느 도시에서 태어났다면, 회사 때문에, 그녀와의 다툼 때문에, 늦은 새벽까지 술잔에 빠져 있을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든 기차표 한 장이면, 따사로운 햇살과 은근한 바닷바람이 부는 지중해의 어느 도시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오렌지빛 바다와 마주칠 때면, 이내 전화기를 꺼내 속삭이겠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하고.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내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묻어났고, 입술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마치 직장을 그만둔 한국인 대표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일만 하는 것 같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주어지는 짧은 시간과 비용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너무 한정적이야. 저 창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못 볼 수도 있는 풍경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나는 내 인생이 그대로 흘러가는 게 슬펐어. 그래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결국 회사를 그만둬야만 했어.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그 정도 비용을 치르지 않고서는 이렇게 세상을 둘러볼 기회를 가질 수가 없어."
그래. 결국 나는 무척 큰 비용을 지불해가며 기회를 만들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금메달을 놓치고 펑펑 울던 그 펜싱선수 같은 결말을 맺진 않을 것이다.
"와우. 그런 거창한 이야기를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너는 무척 용감하구나."
"고마워. 내 여자 친구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어"
"너는 충분히 용감해 쥬드. 여자 친구를 남겨두고 왔잖아"
베티의 말에 모두가 웃으면서 자칫 심각해질 뻔했던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들판에서는 한 무리의 누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근처에는 바짝 긴장한 표정의 얼룩말의 모습도 보였고, 사방은 온통 코끼리 똥 천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지만 행여나 그 완벽한 풍경을 깨트릴까 봐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쉿. 다들 조용히 하고 이쪽으로 와.”
갑자기 가이드가 낮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모두를 불렀고. 우리는 덤불 너머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의 숨소리가 들릴만한 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지불한 비용에 걸맞은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