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베국립공원(Chobe National Park), 보츠와나
제법 북쪽으로 올라왔지만, 아프리카의 추운 새벽은 여전했다. 마운을 떠나 또 다른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카사네(Kasane)로 가야 한다. 버스터미널로 가는 콜택시를 불러주던 바의 직원은 행운을 빈다는 말을 남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인사는 단순한 작별인사가 아니었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택시 때문에 새벽 6시부터 콩닥콩닥 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곧 도착한 터미널(이라기보다 넓은 공터)에는, 애매한 크기의 버스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어쨌든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이미 사람이 가득 들어찬 버스 통로를 헤집고 들어선 곳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등받이가 부러지고 없는 좌석 하나였다. 중간 지점까지 몇 시간 걸린다고 했더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행여 그마저 뺏길까 냉큼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막힌 통로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더 놀라운 광경은 그다음이었다. 이제 만원 버스가 되었나 싶었을 때, 좌우로 창문이 열리더니 온갖 짐덩이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가방이며 먹을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보자기, 어린아이까지, 아프리카 사람들은 정말이지 별걸 다 들고 탄다.
복장도 제각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적당히 세련된 회색 빛 재킷에, 무릎에 닿을 듯 말 듯한 스커트를 입은 한 여자는 단연코 눈에 띄었다. 짙지 않은 화장이었지만 흑인 특유의 뚜렷한 이목구비가 선명했고, 아주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옆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한 노파가 온몸에 이불을 휘감아 좁은 내 자리까지 침범하고 있었는데, 나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문이 있는지 없는지, 닫히지 않는 천장의 환기구는 겨울 아프리카의 찬바람을 그대로 쏟아부었고, 무방비로 노출된 나는 똥 마려운 사람처럼 몸을 폈다 움츠렸다를 계속 반복했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허리가 아파왔다. 움직일 틈도 없이 짐 구덩이에서 고정되어버린 발은 쥐가 났는지 아무 감각이 없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 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버스는 정오가 되기 전, 이름 모를 마을의 외곽에 정차했다. 구겨졌던 몸을 일으키니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허우적대다 버스 계단에서 구르다시피 내려왔다.
“여기 있으면 카사네로 가는 버스가 온다는 거지?”
“그래. 올 거야. 언젠가는”
저려오는 다리를 붙잡고 거의 기다시피 도로를 피해 구석으로 움직이는 와중에도 확인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이 정도 고생했으면 다음 버스는 편안하겠지’라는 확신이기도 했다. 혹시나 내 발음이 문제 될까 봐 카사네라고 몇 번이나 외쳤는데 버스기사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버스와 함께 사라졌다. 그래도 불안은 계속됐다. 대체 보츠와나의 버스터미널이란 곳은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인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린 곳은 마을 외곽의 한 주유소였다. 안쪽으로는 몇 개의 식당과 가게가 있고, 몇 대의 승합차와 버스가 들어와 사람들을 내리고 태웠다. 가는 버스는 있지만 언제 올진 모른다. 그렇지만 오긴 온다. 약 30분간의 탐문수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아도, 달리 방도가 없었다. 설마 하니 보츠와나 역사상 마운에서 카사네까지 버스로 이동한 사람이 내가 최초는 아니지 않을까. 새까만 얼굴에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는 흑인들뿐인 그곳에 홀로 버려진 거지꼴 동양인도 내가 최초는 아닐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거리를 기웃거리다 나와 같은 운명에 처한 네덜란드 커플을 발견했다. 몇 시부터 기다렸냐고 하니, 9시부터 기다렸단다. 세상에! 시간을 보니 이제 막 정오를 지났다. 불안한 마음에 아침부터 무작정 나왔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우리는 크고 작은 버스가 올 때마다 묻고, 따지고, 조르기를 두 시간 동안 반복했다. 운전기사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때마다 몰려오는 절망감, 그때마다 여자 친구를 품에 안고 쓰다듬는 바트. 연인의 모습은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
'카사네! 카사네?'라는 말에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는 버스가 왔을 때, 우리는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셋이 하이파이브를 쳤다. 나는 빨리 스프링 침대에 몸을 뉘이고 싶어 졌다.
“너 숙소는 있어?”
내가 고개를 젓자, 바트의 여자 친구가 운전기사에게 뭐라고 설명을 하더니 다시 와서 눈을 찡긋한다.
“우리 내릴 때 같이 내리자. 우리가 예약한 캠프 앞에 세워줄 거야. 네 시간 정도 걸린데”
아아. 순간 내 눈에 그녀가 천사로 보였다. 고맙다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갈라지고 떨린다. 그러나 운이 좋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그날은 쉽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분명히 버스에 타있던 사람들이 다 내렸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엄청난 사람들이 다시 버스로 몰려들었다. 어느 틈엔가 나는 분명히 2인 석이 분명한 의자에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두 아프리카 여성과 함께 앉아있었다.
나는 그 두 여성 사이에 완벽하게 끼인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체구가 작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올 때와 반대로 이번에는 상체를 움직일 수가 없다. 그렇게 또 두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고개를 돌리자 창 밖으로는 여전히 기린이 동네 개처럼 어슬렁거렸다. 어깨부터 팔이 저려오고 목이 뻣뻣해 왔다. 버스가 흔들릴 때면, 두 여자의 가슴인지 뱃살인지가 내 팔과 옆구리를 찰싹찰싹 때렸다. 눈이 마주치면 유난히 환한 이를 드러내며 웃는 앞 좌석 꼬마 아이를 보고도 나는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저 코끼리가 달려와 버스를 뒤집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네 시간 뒤, 나는 더베 사파리 로지라고 적힌 간판 앞에 섰다.
텐트를 들고 여행하던 바트 커플이 굿럭을 외치며 먼저 캠핑 사이트로 사라졌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문제가 터졌다. 체크인을 하려니 방이 없다. 여기는 오로지 캠핑을 위한 곳이고, 방은 가족을 위한 패밀리 룸뿐이란다. 대여 가능한 텐트도 없고, 방에서 자자니 하룻밤에 80달러다. 무려 일주일 치 숙박비다. 사방은 온통 숲이었고, 어딘가에 있을 마을로 가려면 비싼 택시를 타야 했다. 몸이 하염없이 무너졌다. 이미 해가 지고 있는데 또 어디를 가야 한단 말인가.
죽을 각오로 노숙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요란한 트럭 소리가 났다. 곧 덩치 좋은 남자 한 명이 쿵쿵 거리며 카운터로 다가왔다. 아카시아 트래블이라고 적힌 그 트럭은 여행자들을 모아 아프리카를 종단하는 투어 회사의 차량이었다.(아쉽게도 영과 기준이 탄 트럭과는 다른 회사다.) 순간 리셉션 직원과 나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나는 트럭에서 내린 남자가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펜을 내려놓자마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초면에 매우 미안한데, 혹시 남는 텐트 하나 빌릴 수 없을까?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어”
“뭐? 안돼. 내 트럭의 텐트는 오로지 아카시아 트래블러들을 위한 거야.”
예상대로 거절의 응답이 돌아왔지만, 내 눈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결의로 가득 차있었다.
“나도 알아. 그런데, 상황이 그렇잖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데 네가 딱 들어왔다고. 너 말고는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사람이 없어. 부탁이야”
이렇게 뻔뻔할 수가! 말을 내뱉고 나 스스로도 놀랬다.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던 그가, 리셉션 직원까지 한 수 거들자 고민 끝에 말했다.(직원은 해가 져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가리켰다.)
“좋아. 그런데 내가 돈을 받을 수는 없어. 텐트는 공짜야. 이건 회사의 소유물이고, 내가 돈을 받은 걸 알면 잘릴지도 몰라. 그러니 절대 다른 사람들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 안 돼. 알겠어?”
아아, 해냈다. 나는 대답도 않고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나섰다. 그는 자기 트럭 옆에 붙은 풀숲에 손수 텐트를 쳐 주고는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며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그 뒤에다 데고 땡큐를 열 번은 외쳤을 것이다. 아무 대책 없어 보이던 헤수스가 어째서 항상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나의 뻔뻔함을 기념하기 위해 캠핑장의 레스토랑에서 가장 비싼 스테이크를 시켰다. 만원 정도였는데, 아프리카에서 내가 먹은 식사 중에 가장 비싼 식사였다.
마침내 지친 몸을 뉘이고 나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정말이지 아프리카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그런데도 상황은 어떻게든 흘러간다. 마치 계획된 것처럼. 실없는 웃음이 잦아들자, 이 황당한 이론을 그녀에게 들려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제 고집대로 살던 내가 남에게 저런 뻔뻔한 말을 했다는 사실을 무척 재밌어할 것이 틀림없다.
다음날 새벽, 나는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하는 사파리 투어에 참가했다. 어제의 노고 때문인지, 졸린 고개를 들지 못하고 1분에 한 번씩 지프 벽에 처박아 댔다. 기린, 코끼리 따위에 사람들이 와아하고 탄성을 지를 때면 저런 건 길거리에 개처럼 널렸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뼈 밖에 남지 않은 버펄로의 사체가 유일하게 내 시선을 끌었다.
"운이 좋군요. 이 정도면 아직 신선한 버펄로 시체예요"
뭐가 운이 좋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신선한 시체를 봐서? 그렇지 않으면 머리와 몸통 다리로 분리되어 나뒹구는 게 내가 아니라서? 겨우 제정신이 든 것은 지프가 다시 숙소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나는 분주하게 떠날 채비를 하는 아카시아 트래블러들 사이에서 텐트를 접다 문득 이 생명의 은인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해진 나는 곧장 그에게로 달려가 이름을 물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포춘. 내 이름은 포춘(행운)이야.”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