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문관(剑门关), 광위안(廣元)
제갈량은 나에게 일종의 이상적인 인간 이었다.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실천하고, 그 올바른 신념과 태도를 평생에 걸쳐 지켰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행동하지 않았고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 모든 노력의 끝에도 그는, 얻은 것 하나 없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비가 흩뿌리던 그의 무덤가에는 겨우 한 손에 꼽을 사람 몇 명과 향 몇개 뿐이었지만, 그의 삶은 결고 비참하지 않았다.
그의 삶과 죽음을 보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모든 것의 끝, 멸망에 관한 것 뿐이다. 쉬지 않고 비가 내리던 밤을 보낸 다음 날, 나는 정군산 아래를 떠나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광위안(廣元)에 도착했다. 삼국지를 크게 삼부작으로 나눈다면, 1부는 유비의 촉 입성, 2부는 공명의 북벌, 마지막 3부는 촉의 멸망과 삼국시대의 종말 이라 할 수 있고, 3부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강유(姜維) 다.
제갈량 사후의 촉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당장 그가 죽은 뒤 병권을 쥘 사람부터가 문제였다. 제일 먼저 양의가 욕심을 드러냈다. 제갈량으로 부터 군의 안전한 퇴각을 부탁받은 양의는, 총 퇴각 이후에 이를 엄청난 공인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며 제갈량의 권력을 스스로 취하려 했다. 1차 북벌에 실패하고 스스로 벼슬을 낮추었던 제갈량과는 선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한편 명실공히 촉의 에이스였던 위연은, 제갈량이 총퇴각을 자신이 아닌 양의에게 맡겼다는 사실에 격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란을 일으킨다. 다행이 마대가 그의 목을 베면서 반란은 진압되지만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던 양의는 결국 면직되어 일반 백성으로 강등되었고, 얼마지나지 않아 자결에 이른다. 제갈량이 죽자마자 권력서열 1,2위가 스스로 자멸한 것이다.
촉의 불행은 여기서 끊나지 않는다. 246년, 대장군 장완이 갑작스레 병사한다. 제갈량 사후 10년 동안,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로잡고 나라 안팍으로 촉을 안정시키며 강유로 하여금 위의 침략을 막게 했던 인재였다. 253년에는 더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위나라에서 거짓으로 항복한 곽순이라는 자가, 정월 초하루 대연회장에서 비위(장완의 뒤를 이어 대장군에 올랐다)를 찔러 죽인 것이다.
곽순은 이 사건 이전에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았던 무명의 장수였고, 비위는 장완과 더불어 제갈량 사후의 촉을 지탱하던 양 기둥이었다. 역대급으로 무능한 황제였던 유비의 아들 유선을 수도에 두고도 공명이 북벌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곁에 장완과 비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촉의 마지막 기둥인 비위의 어이없는 죽음은 명망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유비로 부터 제갈량이 그러했듯, 이제 제갈량의 유지와 촉의 명망이 오로지 강유의 두 어깨 위에 달려있는 형국이었다. 강유는 249년을 시작으로 꾸준히 북벌에 나섰으나 번번히 등애(鄧艾)와 종회(鐘會)에 막히고 만다. 258년, 그의 마지막이자 일곱번째 기산행(그 스승에 그 제자) 에서는 강유는 등애의 군대를 크게 물리쳤으나, 촉의 환관 황호의 꼬임에 넘어간 황제 유선이 뜬금없이 회군 명령을 내려 어이없는 퇴각에 이른다. 한 마디로 촉은 "이게 나라냐" 할 정도로 안밖으로 썩어가고 있었고, 흩뿌리는 안개비에도 나라의 기둥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이같은 요행(?)이 두 번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263년, 위는 종회를 총사령군으로 삼아 대군을 이끌고 처음으로 촉 정벌에 나선다. 그리고 강유가 지키고 있던 이곳, 검문관(剑门关) 에 이른다.
광위안에서 차로 한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검문관은, 대검산(大劍山)과 소검산(小劍山) 사이의 좁은 협곡의 틈에 세워진 관문으로, 제갈량이 유비의 입촉을 돕기 위해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시선을 사로잡은 산 꼭대기는 흐릿하게 안개로 가려져 있었는데, 나는 그 풍경을 음미하며 잠시 촉이 멸망하는 순간을 되새겼다.
종회와 등애는 이 곳에서 한달을 넘게 강유의 수비를 돌파하려고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그를 회유하기 위한 편지도 적어 보냈으나 강유는 결코 응답하지 않았다. 이 천혜의 요새를 힘으로 뚫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생각에 이른 등애는 검문관을 크게 둘러 산을 넘어 면죽관과 부성을 공격하고, 이후 촉도를 따라 성도로 진격해 촉을 멸망시킨다.
나는 꽤 여러권의 삼국지를 읽었지만 그때마다 촉이 멸망하는 이 장면을 이르면, 분노 이전에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종회와 강유는 사마의와 제갈량에 버금가는 라이벌인 셈인데, 그 싸움의 결말이 허무하게도 몰래 산을 넘는 것이라니. 대체 관문을 어떻게 지었길래 그렇게 허무하게 적을 아군의 심장부로 들였을까. 제갈량이 그토록 칭찬했던 강유의 능력이라는 것이, 사실은 보잘것 없었던 것이 아닐까. 만약 이 부분이 나관중의 창작이라면, 정말 역사상 최악의 엔딩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부풀대로 부풀어버린 이야기들을 도저히 수습할 수 없을때 작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그런 것들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정사에 가깝다. 그리고 강유가 무능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등애를 가리켜 등산왕 이라고 부르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그 주차장 하늘 위로 보이는 산 꼭대기를 바라보며,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을 했다. 나무도 자라지 않아 절벽에 가까운 저 정상을 걸어서 오르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모해보였다. 현대의 중국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지, 국립공원 안은 입장하자 마자 정상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운행중이었다. 바야흐로, 등산왕이라고 불리는 등애의 업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케이블 카는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올 정도로 가빠른 절벽을 따라 한참을 올랐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일대는 거대한 자연 장벽이 반원형으로 넓게 둘러쳐져 있어, 정말이지 그 가운데 어딘가에 있을 관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촉나라 땅에 발을 들일 수 없는 모양새였다. 연의에서는 장비가 마초와 결투를 벌여 그를 물리친 뒤, 당시 이곳에서 건설중이던 검문관을 보고나서 제갈량의 안목에 혀를 내두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연 제갈량은 틀림없는 천재다.
정상에 있는 소문의 투명한 유리바닥은, 이미 긁힐대로 긁혀 아무것도 비춰보이지 않았지만, 거기서 보이는 전경만은 놀라웠다. 바람은 세차게 불어 누군가의 모자를 날려버렸는데, 그대로 선맥을 넘어 평평하게 이어진 수도 성도까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등애는 산 깊숙히 주둔하고 있던 촉군 몰래, 이 절벽 어딘가를 기어올라 장벽을 넘었다. 지도에 따르면, 검문관을 통하지 않고 성도로 가기 위해서는 방금 전 케이블 카로 오른 이 절벽을 오른 뒤 아래로 강이 흐르는 협곡까지 행군한 다음에, 그 협곡 위로 다리를 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절벽을 기어 내려가 강을 건넌 뒤 다시 건너편 절벽을 기어 올라야만 가능했다.
그리고 이 불가능한 일을 등애는 해냈다. 그는 도저히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에 길을 만들고, 산에는 굴을 뚫고, 계곡으로 가로막힌 곳에는 다리는 놓았다. 겨우 오른 협곡에서 다시 내려가는 길조차 찾지 못 할때면, 양털 포대로 몸을 감싸 그대로 굴러서 강가에 이르렀다.
연의에 묘사된 장면을 되새기며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대조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거짓말 같았다. 세상에 절벽 아래를 이불로 몸을 감싸서 굴러 내려간다는게 말이나 될법한 소린가. 위나라 병사들은 무슨 이단 헌트(미션임파서블의 주인공) 같은 사람들만 모였을 리도 없고 말이다.
살면서 몇 가지 믿기지 않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지만, 그 날도 그 중의 하나였다. 다시 중턱까지 내려오는 케이블카를 탄 나는, 절벽에 개미처럼 다닥다닥 붙어 머리에는 철모를 쓰고 길게 늘어진 쇠줄 하나에 의지해 위태롭게 절벽을 오르는 무리를 발견했다.
이것은 역사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실화다. 사람들은 계단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하고, 그저 수백년 간 방문객에 의해 군데군데 살짝 문드러진 바위틈에 발가락을 꽂아넣고, 한 손으로 힘껏 쇠줄을 잡아당기며 그 절벽을 기어 올랐다. 때때로 계단(?) 하나의 높이가 너무 높아 한번에 오르지 못할 때면 네 발로 기어서 클라이밍을 했다.
위험천만한 그 여정을 끝내는 데에 두 시간 가량이 걸렸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너무 힘을 줬는지 발가락과 손가락에 통증이 느껴졌고, 두 시간동안 거의 펴지 못한 허리가 뻗뻗하게 저려왔다. 양쪽이 모두 산이고 오르기는 하늘과 같은 검문관이지만, 그 협곡 뒤로는 고속도로 마냥 수도 성도까지 이어진다. 강유는 검각의 이 험한 산세를 방패삼아 겨우 3만의 군사로 10만이 훌쩍 넘는 위나라 대군을 상대로 몇 달을 버텼다.
한편 등애가 이끈 소수의 군대는 그 과정에서 큰 병력손실이 있었으나 기어코 산을 넘어 면죽관(綿竹)으로 향한다. 면죽관을 수비하던 촉의 마막은 만신창이로 나타난 그를 보자마자 항복해버렸고, 곧 이어 도착한 부성도 별다른 전투없이 손쉽게 얻어낸다.
마침내 수도인 성도에 이르자 황제 유선은 너무나 쉽게 항복해 버리고(대장군이 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적의 총사령관과 싸우고 있는 와중에), 그렇게 촉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한 마디로 당시의 촉은 강유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조무래기에 불과했고, 그 와중에 오로지 제갈첨(제갈량의 아들) 부자만이 등애군에 맞서 싸우다 나란히 전사했으니, 굳이 등애가 아니었더라도 멸망할 운명이었음은 분명해보인다.
멀리 숲 길을 돌아 마침내 검문관에 닿으니, 당시 유선의 항복 소식을 듣고 분노하며 칼을 바닥에 집어던졌다는 강유의 동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비가 찾기 전까지 제갈량이 무명이었듯이, 제갈량이 찾기 전까지 그 역시 그랬다. 그는 최고의 스승을 둔 행운아였지만, 동시에 최악의 황제를 섬긴 신하기도 했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듯한 병사의 모습에서 그 한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곧 이어 멀리 검문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곁에는 촉에 처음 입성하던 당시의 유비와 제갈량의 모습을 재현한 동상이 보인다. 위나라 군대의 방향에서 검문관으로 오는 길는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 있으며 내내 산길이 이어지는 반면, 검문관을 통과해 촉으로 가는 길은 평평한 길에 시멘트로 블럭까지 놓여져 산책로와 같은 모습이었다. 2천년 전의 모습은 실제로 어땠을지는 알 수 없지만, 검문관 좌우로 우뚝 솟은 절벽을 보건데 "한 사람이 관을 지켜도 만 명이 관문을 열지 못하네." 라는 이백(당 나라 시인)의 시는 결코 과장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사방은 온통 나무로 울창했고, 좌우 양쪽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거대한 절벽이 버티고 섰다. 나아길 길은 오로지 전방의 관문 뿐이었으나, 가파르기 그지없어 총이 아니고서는 관문 위의 적을 공격할 방법 조차 없다. 목숨을 걸고 절벽을 오르기에 앞서 등애와 조회는 이곳에서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애초에 익주는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척박한 땅이다.
한편 촉이 멸망한 이후 위나라에서는, 사마의의 둘째 아들인 사마소가 반란을 일으켜 조씨일가를 숙청하고 세로운 나라 진(晋)을 세워 스스로 왕이 된다. 촉 정벌의 총 사령관이었던 종회는 유선의 항복을 받아낸 등애에게 연공서열에서 밀려나 버렸고, 강유는 그런 종회의 객장이 된 상황. 그러나 3부의 주인공 답게 강유는 끝까지 촉한의 부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잘되면 천하(天下)를 얻을 것이오, 못 돼도 서촉(西蜀)으로 물러나 지킨다면 유비(劉備)처럼 될 것이외다"
강유는 애매한 입장이 되어버린 종회를 지지하며 독립을 부추긴다. 그는 제일 먼저 종회의 라이벌이었던 등애를 모반죄로 모함하여 실각시킨 다음, 남아있는 옛 촉의 관리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사마소에 반기를 든다. 그리고 사마소의 군대와 끝까지 싸우다 죽음을 맞았다.
이 모든 일이 그가 항복한 바로 다음 해에 벌어졌음을 감안한다면, 강유는 종회에게 항복할 당시에 이미 머리속에 이런 계략을 꾸미고 있었을 것이다. 정작 황제였던 유선은 유주 안락현에서 안락공(安樂公)에 봉해져서, 말 그대로 안락하게 천수를 누리다 죽었으니 씁씁할 따름이다.
조운이 유선을 구하지 않았다면,
제갈량이 유비의 이릉대전을 끝까지 막았다면,
곽순이 비의가 아니라 유선을 찔렀다면,
제갈량이 가정에 마속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촉의 역사는 그야말로 온통 안타까움과 허망함으로 가득 채워져있다. 나는 죽어서도 한(漢)의 신하이기만을 바랐던 강유의 사당을 마지막으로 검문관을 빠져나왔다. 여행은 끝났고, 이제는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 안타까운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자, 문득 싯다르타가 깨달음에 이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를 집으로 데려다 다오. 이제 나는 달리 갈 곳이 없다. 우리들의 생(生)이란 것은 허망한 것이다. 나는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다. 이제 나는 영원한 것을 찾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는다. 비단 촉의 운명 뿐만 아니라, 생이란 원래 그렇게 허망한 것이다. 그러나 유비를 시작으로 제갈량과 강유까지, 그들의 충(忠)과 의(義)는 영원히 남았다. 그것이 우리가 이 찰나의 삶 와중에 삼국지를 사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