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그 명성은 우주에 드리웠다

제갈량 무덤, 면현

by JUDE

공명의 무덤에 대한 정보는 삼국지 <제갈량전> 에 나오는 그의 유언에 관한 기록에서 엿볼 수 있다.

"제갈량은 죽을 때 자신을 한중의 정군산 아래에 장사 지내게 했다. 또 분묘로 삼은 총은 관을 넣을 정도의 크기로만 하되, 평상복을 입히고 일채의 부장품을 넣지 못하게 했다"


정군산은 지금의 섬서성 면현(勉縣) 이라는 마을에 있는 산이다. 한중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으로, 나는 우선 한중에서 면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손님 너댓명을 태운 버스는(버스라기 보다는 봉고차)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30분 정도를 달렸는데, 예상대로 면현은 변두리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농업으로 생계를 잇고, 차와 사람이 드물어 그나마 몇 안 되는 가구들은 한 데 모여 집촌을 이룬 그런 곳 말이다.



면현에는 도착했으나 문제는 제갈량의 묘를 어떻게 찾아가느냐 였다. 여전히 한자 까막눈이었던 나는 이번에도 주어, 동사를 제외한, 목적어만 외치며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물었다.


"쭈거량 묘!"


다른건 몰라도 "쭈거량" 을 모르는 중국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예상대로 그는 3번 버스를 가리키며 타라고 손짓했고, 버스기사에게 한 번 더 확인 해주기까지 했다.


면현에 위치한 제갈량 테마파크, 제갈고진(诸葛古镇)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바로 제갈고진(诸葛古镇) 이다. 지은지 1~2년 밖에 안됐을 것 같은 깔끔한 벽돌 입구와, 거대한 문패, 넓직한 주차장에 잘 정돈되어 기념품가게와 식당이 즐비한 거리까지, 완벽하게 상업화 된 일종의 제갈량 테마파크 같아 보였다.


산 아래 고즈넉한 사당과 작은 봉분 하나를 상상했던 나는(그의 유언대로라면), 지나치게 상업화를 이룬 제갈고진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런 시골마을에까지 그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무언가가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물론 입장료가 없다는 것에는 더 크게 안도했다.

다른건 몰라도 붉은 얼굴의 관우만은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공원 안은 삼국지를 상징하는 다양한 조각과 동상들로 가득했고, 온갖 먹거리와 풍물로 소란스러웠다. 입구를 지나 처음 만나는 광장에는 제갈량이 지휘하던 마차가 사람들을 맞이 하고, 그 뒤로 삼국시대를 주름잡았던 인물들의 가면으로 그려진 벽화가 멋드러지게 그려져 있어 흥미를 끌었다.


서성 위에서 바라본 제갈고진의 모습


제갈량이 승상이 된 이후 머물렀던 저택과 융중패방, 그의 진가를 드러낸 적벽대전과 팔괘광장 등, 주로 연의에서 제갈량의 능력을 과장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다양한 소재들이 재현되어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후문에 재현된 서성(西城)이었다.


1차 북벌에 실패하고 위에 쫓기던 제갈량이 단 한 명의 군사도 없이 홀로 성루에 올라 거문고를 연주하자, 행여 복병이 있을까 두려워한 사마의가 그대로 후퇴했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었다. 물론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허구지만, 어쩐지 반가운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무후사(武侯祠)


제갈량이 발명했다고 전해지는 목우류마와 연노 등, 삼국시대의 몇 가지 유물로 꾸며진 작은 박물관에서는 중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무후사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무후사는 총 10개로, 이번 여행으로 청두, 오장원, 면현, 그리고 다음 행선지인 검각까지 총 네 군데를 방문한 셈이다.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순식간에 두어 시간을 보내고 다리가 아파올 때 쯤이었다. 도대체 그래서 제갈량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가. 공원 내부의 모든 푯말은 한글로도 써져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무덤이야기는 없었다. 보이는 것은 무후사(武侯祠) 뿐.



무후사는 단순히 위패를 모신, 전국에 10개 있는 사원 중 하나일 뿐 무덤이 있는 무후묘(勉縣墓) 와는 다르다. 굳이 이 시골구석까지 찾아 온 이유는 오로지 그의 무덤에 향 하나를 피우기 위함인데, 무후사라고 쓰여진 매표소 앞에서 몇 번이나 쭈거량묘 라고 물어보아도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턱대고 들어가보기에는 입장료가 만만치 않아(그래서 더 헷갈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한참 만에야 무덤은 여기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제갈고진을 떠났다.


이는 무덤을 뜻하는 묘(墓)와 사당을 뜻하는 묘(廟) 의 발음이 같은 데서 온 오해였다.(둘다 쭈거량묘 라고 발음된다.) 결국 나는(뜻하지 않게) 2016년에 새로 지어진 삼국지 민속촌을 관람한 셈이 됐고, 다시 택시를 타고 20분을 가서야 정군산 산기슭에 지어진, 진짜 무후묘에 도착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폐차 해야할 것 같은 택시는, 돌아갈 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할 지를 걱정해야할 것 같은 곳에 나를 내려주고는 엄청난 매연과 함께 사라졌지만, 입구 옆에 거대하게 솟아있는 석상을 본 순간 제대로 찾아왔음을 확신했다.



내부는 그야말로 무덤 외에는 아무런 건물도 조형물도 없는 듯 푸른 숲길과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만큼 짙은 푸른빛이었고, 마찬가지로 녹색 이끼가 잔뜩 피어난 연못을 지나치니 마침내 무덤으로 가는 오래된 문이 하나 나타났다.


읽을 수 있는 것은 숫자 밖에 없는 글자가 새겨진 두 개의 비석을 앞에 두고, 미리 설치해 둔 앱을 열고 한 획, 한 획 그림을 그리듯 그린 결과, 거기에는 한승상제갈충무후의묘, 한제갈무후의묘 라고 각각 쓰여 있었다. 왼쪽은 명나라 만력제, 오른쪽은 청나라 건륭제 때 세워졌다. 무후(勉縣) 는 제갈량이 죽은 뒤 붙여진 시호인데, 주로 충(忠)을 붙여 충무후(忠勉縣) 라고 쓰곤 한다. 사실 촉을 향한 그의 충성을 생각하면, 충을 10개 붙여도 모자라다.


제갈량의 무덤


그런 영웅의 무덤치고는, 조촐하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작고 단순했다. 마닐라에 있는, 이름 모를 중국인들이 세운 집단 공동묘지에 있는 흔한 묘지보다도 부장이 없었다. 다만 무덤 위로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그늘을 드리우며 비바람을 막는 듯 했다. 모든 것이 그의 유언대로였으나, 무덤 하단의 대리석에 새겨진 벽화만큼은 눈 여겨 볼만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도원결의, 여포와 싸우는 의형제, 삼고초려, 적벽대전을 앞두고 오나라를 설득하는 공명


천천히,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하나하나 벽화를 훑어보고 있는 도중에 또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번에 네 번째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었다. 비도, 글자도 읽을 줄 모르면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국의 청년도.

따지고 보면 왜 하필 공명의 무덤이었을까. 초한지를 읽고한신이나 장량, 소하의 무덤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중국의 위대한 황제로는 한고조 유방이 있으며,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은악인에 가까웠으나 그 엽기적인 행각으로 인해 절로 뒤가 궁금해지는 인물이다. 삼국시대만 해도 유비와조조가 있으며, 업적으로만 보면 동탁, 여포 같은 자들도일찍이 나라를 세우고 자신의 입지를 다진 인물들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직접 나라를 세웠던 동탁, 조조, 여포는모두 자신을 믿어준 군주를 배신하고 힘으로 권좌를 차지했다. 부모로부터 나라를 물려 받았던 한나라 헌제, 촉의 유선, 오의 손호는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조상이 남겨준나라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천수를 누렸다. 그런 시대에 오직 제갈량만이 자신이 손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을마다하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바보로 살다가 간 셈이다.



비가 거세지기 전에, 무덤을 돌아 나오자마자 보이는 사당에 작은 향을 피웠다. 이미 타고 있는 연기로 보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누가 오긴 오는 모양이다. 사당의 문패에는 제갈량을 칭하는 온갖 미사여구들이 적혀있었는데 명수우주(名垂宇宙)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그의 병사 후 촉도 머지 않아 멸망하게 되지만, 그의 노력과 이상은 2천 년을 흘러 낯선 청년의 마음 속에도 남았으니, 말 그대로 그 명성이 우주에 드리웠다.



외의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정군산이 촉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하면 아쉽다. 황충이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의 목을 베고 위의 군량고를 불태워, 결국 조조로 하여금 한중을 포기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떠돌이 유비가 아닌 촉의 유비가 조조를 상대로 벌인 첫 전투이자 첫 승리를 거둔 곳인 셈이다. 어쩌면 공명도 그 시절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강시영화에 나오는 도사같이 생긴 제갈량의 좌상도, 여기 저기 칠이 벗겨진 벽화와 녹색 이끼가 빼곡히 들어앉은 기와를 얹은 작은 건물들도 다른 무후사와 대동소이했다. 거센 파도도 지나고 나면 고요한 법이다. 그의 무덤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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