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 때문에 리스본행 비행기에 오른 것인지, 포르투갈에 가기 때문에 영화를 보게 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를 할 때 이 영화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거다. 영화는 고전문헌학 교사라는 직업만큼 재미없는 삶을 살던 주인공이 우연히 다리에서 자살하려는 여자를 구하면서 시작한다. 여자는 벗어놓은 코트도 다리 위에 내버려 둔 채 홀연히 사라지고, 그 코트 안에 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을 발견한 주인공이 대신 열차에 오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미드나잇 인 파리나 로마 위드 러브처럼 그 도시의 삶을 고스란히 비추는 영화는 전혀 아니지만, 영화가 끝날 때 느껴지는 설렘과 일탈의 기쁨이 대단한 영화였다.
그런데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다시 한번 영화를 볼 때는 좀 다른 생각을 했다. 많은 영화가 우연을 가장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경험을 선사하지만, 이 영화의 첫 장면은 과장된 판타지가 아닐까 하고. 눈앞에서 자살하려는 여자를 극적으로 구한다는 우연이 발생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 영화가 지금의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장면은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을 발견하고 우발적으로 열차에 오른다는 점이다.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코로나 시대. 모든 종류의 이동은 한층 더 까다롭고 귀찮아졌다. 특히 해외로 가는 열차나 비행기라면(주인공은 스위스의 교사였고, 자살소동이 벌어진 곳은 스위스 베른이다.) 백신 2차 접종을 증명하는 서류는 물론, 72시간 전에 유전자 검사 결과 음성이라는 의사 소견서를 소지해야만 열차에 탑승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누군가 내 앞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우연히 티켓을 사서 곧바로 열차에 오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비행기에 오르긴 했지만 문득 무서워졌다. 이대로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는다면? 위의 예를 보듯이 코로나는 우연이란 것이 발생할 여지를 없애버렸고, 당장 이 영화의 장르는 sf로 바뀌어야 할 판이다. 자살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기차를 탈 수는 없다.(애초에 침대칸이 있는 유럽의 야간열차는 현재 운영하지도 않는다.) 모든 일을 계획해야만 할 수 있다면 그건 꽤 고단하고 슬픈 일이다.
나는 운명이라는 말 보다 기회라는 말을 좋아한다. 운명이 꼭 거머쥐어야만 하는, 차근차근 계획되어 벌어지는 것이라면 기회는 좀 다르다. "우연히 기회가 있어서"라는 흔한 말처럼, 기회라는 건 우연히 발생하기 마련이다. 꼭 요란하고 계획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과거 어느 서점에서 세계일주 바이블이라는 책을 보고 그다음 해에 세계일주 떠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인생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삶에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부여하는 경험은 그렇게 소리 없이 우연히 일어난다. 어쩌면 내 인생의 감독은 내가 아니라 우연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주연 연기자일 뿐.
그래서 나는 이대로 우연이라는 것이 사라진 세계가 될까 두렵다. 리스본에서 누군가 "리스본은 어쩐 일이세요?" 하고 물어주길 바란다. 그러면 태연하게 우연히라고 대답하리라. 그것이 코로나 시대에 어울리는 저항정신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