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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Oct 17. 2021

지금 막 서점에 발을 들인 사람처럼


마침내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포르투갈.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이 2019년 10월이니, 만 2년 만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21세기가 된 이후로 이렇게 오래 비행기를 타지 않은 건 군생활 때뿐이다. 그래선지 일주일 치의 짐을 싸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발걸음이 낯설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사는데도 그 많던 공항버스는 모두 폐쇄되었고, 오래 걸리는 공항철도를 타야 했다. 퇴근시간과 겹쳐 지옥 같은 김포 구간을 지나고 나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린다. 아무도 없는 객차의 중간문 너머로 저 앞까지 텅텅 빈 열차가 이리 구부러지고, 저리 구부러지는 모습이 낯설다. 내가 제대로 탄 게 맞나 싶어 몇 번이나 지도를 켜고 아무도 없는 열차 내부를 두리번거린다. 종착역인 인천공항 2 터미널에 내린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5명. 그마저도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은 나뿐이다.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는 일이 이렇게 특별한 일이 되었구나 싶어 괜스레 심장이 뛴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해버렸나 싶을 때의 아득함, 그리고 그 고립감이 주는 묘한 안도감. 분명 언젠가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나는 리스본의 레르 데가바르(Livraria Ler Devagar) 서점 2층에 앉아 잠시 그 기억을 더듬었다. 벌써 10년이 다되어 가는 일이지만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나는 케이프타운에서 빈트후크로 가는 버스 안이었다. 갑자기 어느 외딴곳에 버스가 멈추더니 전부 내리란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 내리고 나니 버스가 말도 없이 시동을 걸고 가버리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나는 버스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누군가 내 등을 툭툭 두들기며 얘기했다.


"나중에,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나미비아의 국경이었다. 나무로 대충 지은 군대 막사 같은 건물이 출국 검문소였고, 약 100미터 정도 되는 무국경 지대를 걸으면 다시 나미비아의 입국 검문소가 나왔다. 나는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에게 내가 방금 걸어서 국경을 넘은 거냐고 물었다. 남자가 그렇다고 짧게 대답하자 내 목은 기린처럼 어지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기가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반대로 돌리면 머리 위로 나미비아의 국기가 크게 보였다. 나는 고개가 아플 정도로 번갈아가며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면세점 같은 건 없고 거리엔 보부상들이 초콜릿이나 비스킷 같은 간식이나 알 수 없는 기념품을 팔고 있었는데, N$라고 적힌 낯선 지폐를 들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목이 아픈걸 느꼈을 때야 실감이 났던 거 같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음을. 인생의 어느 지점에 그곳에 닿으면 그곳이 내가 오래전부터 닿고 싶은 지점이었음을 알게 되는 때가 있는데, 내겐 난생처음으로 걸어서 국경을 넘는 그 순간이 그랬다. 따지고 보면 그게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니겠는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다른 세계를 두리번거리고,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식전에 비뉴 베르데를 마시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동화되는. 지금 막 서점에 발을 들인 사람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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