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풀면 11,000원 |입으로 풀면 25,000원

동굴과 터널사이 ep.05

by 살아냄

"직장인인데요.

퇴근길에 잠깐 할 수 있어서요."


다이소에 먼저 출근해 있던

서른 중반의 훤칠한 청년의 말이었다.


말도 잘 알아듣고,

대답도 빠르고,

물건도 성실하게 옮겼다.


'이 친구, 오래 다닐 것 같은데'


그건,

관둔 알바 선배의 말이 기억나서였다.


"첫날 대화하면서

분위기를 잘 보세요."

"알바를 오래 할 사람인지는

첫날에 거의 다 드러나요."


다이소 하차 알바는

세 명이 한 팀이다.

한 번에 2~300개씩 들어오는 물건을

두 시간 안에

전부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된다.


그래서

한 명은 1층에서 짐을 내려주고,

한 명은 지하 입구에서 받고,

한 명은 카트에 실어 매장으로 옮긴다.


그날은, 세 명이 할 일을

두 명이서 마무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 청년이 먼저 인사를 했다.


‘이제 한 명만 더 충원하면 되겠네.’


그런데,

성실해 보이던 그 청년은

다음 날 나오지 않았다.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바로 분노가 뒤따랐다.


10분 먼저 도착해

하차 준비를 하고 있는

나 자신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내가 바보인가?’


그때

알바 선배의 또 다른 말이 겹쳐졌다.


“천천히 하시고, 제발 무리하지 마세요.”

“4대 보험도 안 되는데,

몸 망가지면 오래 못 해요.”


이 일은

잘하는 사람이 남는 구조가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남는 구조다.


두 시간이 지나고

무거운 몸을 지하철에 실었을 때,

내가 교육했던 주말 강의가 떠올랐다.


'토요일 마케팅 강의는

시간당 25,000원을 받았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잘 때 온몸이 쑤셔

자주 잠에서 깨고 있었다.

나는 분명하게도

40대 육체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입으로 풀면 25,000원

몸으로 풀면 11,000원.'


지금 다니는 회사의 월급도

문득 계산해 봤다.

하루 8시간, 한 달 20일.

시간당 급여로 나눠보니

숫자가 또렷해졌다.


시간당

노동의 가치를 보게 되자

잉여 시간의

무게도 같이 느껴졌다.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5년 뒤를 보고

어떤 가치를 쌓아야 하는지.


예전에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퇴근 후 집에서 두 시간만이라도

집중해서 뭔가 해보는 건 어때?”


돌아보니

미래에 더 큰 결과를 낼 수 있는 일엔

정작 집중하지 않으면서,

알바는 늘 먼저 도착해

준비하고 있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30분 먼저 출근하고,

야근을 당연하게 해 왔던

회사의 모습도 겹쳐졌다.


돌이켜보면 정작

열심히 써야 할 곳엔

시간을 안 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오늘은,

몸만큼 생각이

버티지 못한 하루였다.


이전 04화알바 가는 길, 자꾸 시선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