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에게 묻는 걸까

by 살랑하늘

나는 자주 나에게 묻는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불을 끄기 전이나 지하철에서 내릴 역을 기다릴 때처럼 마음이 잠시 느슨해지는 순간에. 오늘은 어땠는지,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잘 지내고 있느냐는 질문을, 가장 먼저 나에게 던진다.


이상하게도 그 질문에는 늘 명확한 대답이 따라오지 않는다. 괜찮다고 말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그렇다고 힘들다고 말하기에는 설명할 말이 부족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질문은 공중에 잠시 떠 있다가, 애매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럼에도 나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나에게 묻는다.




예전에는 답을 찾기 위해 질문한다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지치는지, 왜 늘 확신이 없는지, 무엇을 잘못 살고 있는 건지. 질문은 문제였고, 답은 해결책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종종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답을 찾지 못하면, 나는 더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답을 원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질문은 해결을 위한 도구라기보다, 나를 붙잡기 위한 방식에 가까웠다. 질문을 던지는 동안만큼은, 나는 나에게서 완전히 멀어지지 않았다.


살다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자신을 놓친다. 해야 할 일에 밀려, 기대에 맞추느라, 괜찮은 척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은 늘 한 발짝 늦게 따라온다. 몸은 잘 움직이는데,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런 날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잘 버티는 사람, 무난한 사람, 문제없는 사람. 그렇게 이름 붙여진 나만 남고, 정작 나 자신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럴 때 질문은 나를 다시 불러오는 역할을 했다. 지금 괜찮은지 묻는 짧은 문장은, 멀리 가버린 나를 잠시 멈춰 세웠다.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기준으로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잘했는지 못했는지가 아니라, 버거웠는지, 숨은 쉬고 있었는지를 묻게 된다.




질문에는 답이 없을 때도 많다. 아니, 대부분 그렇다. 괜찮은지 묻고 나서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답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답 없는 상태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걸, 나는 점점 배워가고 있다.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을 통해 나를 늦춘다. 모두가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라고 재촉할 때,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나에게 묻는다. 정말 괜찮은 선택인지, 이 방향이 나를 너무 소모시키지는 않는지. 질문은 나에게 속도를 늦출 권리를 준다. 당장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된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나를 너무 쉽게 넘겨왔는지도 모른다. 조금 힘들어도 괜찮다며,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며, 나보다 상황을 먼저 이해하려 했다. 질문 없이 살아갈 때의 나는 늘 단단해 보였지만, 속은 자주 갈라지고 있었다. 질문은 그 틈을 알아차리게 했다.


나에게 묻는다는 것은, 나를 믿는다는 뜻과도 닮아 있다.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고. 지금은 답하지 못해도, 이 질문을 품고 살아갈 수는 있을 거라고.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작은 신호 같다. 나는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이 매거진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멋진 답을 적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질문들이 나를 이 자리까지 데려왔기 때문이다.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준 것이 바로 이 질문들이었다.


앞으로 나올 질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질문에는 아직도 답이 없고, 어떤 질문은 평생 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질문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꼭 불행은 아니라는 것을. 질문 덕분에 나는 계속 나를 확인하고, 나에게 다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이 질문은 해결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잃지 않게 해달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이 질문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