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불안한 나를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상황이 흔들려도 마음이 먼저 반응했고,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일에도 오래 붙잡혀 있었다. 그래서 자주 스스로를 다그쳤다. 이 정도로 흔들리면 안 된다고, 좀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괜찮은 척을 더 잘해야 하고, 덜 예민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주변을 보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빠르게 회복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 비해 나는 너무 많은 걸 느끼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을 줄이려고 했다. 덜 느끼고, 덜 반응하고, 가능하면 무덤덤해지려고 했다. 그래야 덜 흔들리고 덜 지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잘 되지 않았다. 억지로 감정을 줄이려 할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수록 안쪽에서는 더 많은 생각이 쌓였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약한 걸까.
아니면 그냥, 조금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일 뿐일까.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늘 많은 것을 느끼며 살아왔다. 사람의 말투 하나에도 마음이 움직였고, 작은 변화에도 쉽게 눈치챘다. 그 덕분에 상처도 자주 받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놓치지 않고 살아왔다.
나는 둔한 사람이 아니라,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민하다는 말이 늘 부정적인 의미로 들렸기 때문이다. 쉽게 상처받는 사람, 피곤한 사람, 다루기 어려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 성질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사라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원래 조금 더 섬세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바꿔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해해야 할 성질에 가까웠다.
생각해 보면 그 예민함 덕분에 나는 많은 순간을 지나올 수 있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을 그냥 넘기지 않았고,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았다. 불안 역시 그 예민함에서 시작된 감정이었다. 작은 변화에도 먼저 반응하고, 가능성을 미리 떠올리고, 위험을 예감하려는 마음. 그게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고, 때로는 나를 지키는 역할도 했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더 쉽게 지치고, 더 오래 고민하고, 더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이 모든 걸 약함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래야 설명이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약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예민한 채로도 여기까지 온 사람이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약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를 줄이고 숨겨야 했지만, 예민하다고 받아들이면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불안을 자주 느낀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남들이 쉽게 넘기는 지점에서 멈춰 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이렇게 생각해 본다. 나는 원래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많이 느끼는 대신, 많이 알아차리는 사람. 그게 지금의 나에 더 가까운 표현이다.
그래서 요즘은 불안한 나를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이 감정이 올라올 때 나를 탓하기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예민하게 느끼고 있는지 조용히 들여다본다. 그렇게 바라보면 불안은 단순한 약함이 아니라 하나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신호.
나는 여전히 완벽하게 단단하지 않다. 여전히 쉽게 흔들리고, 여전히 많은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을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예민한 채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게 나를 더 힘들게 하는 날도 있겠지만, 그 덕분에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말해보려고 한다.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조금 더 섬세하게 살아온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