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모순이 많은 나라다. 이 모순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이 다양한 모순들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조금씩 글로 소개하겠다.
이번 글에서 말하고 싶은 모순은 '오모테나시(일본의 환대 문화)'와 '가게의 룰'의 공존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오모테나시는 일본의 료칸을 상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낮은 자세로 손님을 극진히 모시는 일본의 서비스. 일본에 여행 온 사람들이라면 나도 저절로 공손해지는 일본의 오모테나시를 경험해봤을 것이다.
그 반면에 일본의 가게들은 손님이 눈치를 봐야하는 경우가 많다. 이자카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식당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와서 '마실 건 뭘로 하시겠어요?'라고 물어본다. 음식이 비싼 집에서도 '그냥 물로 할게요'라는 말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자카야에서는 주문하지도 않은 오토오시(お通し, 기본 안주)가 나와 자릿세 가격을 받는다. 자릿세, 테이블차지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인 나로서는 음식도 팔아주고 술도 팔아주는데 가게를 이용하는 돈도 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예전에 살던 동네의 어느 피자집에 회식으로 갔을 때다. 저녁에 회사에서 간단한 워크샵이 있고 뒷풀이로 회식을 가게 됐는데, 워크샵에서 받았던 음료를 손에 들고 그 상태로 가게에 갔다. 아무 생각 없이 테이블 위에 페트병을 올려두고 음료수는 따로 시킨 상태로 오늘 처음 만난 직원들이랑 어색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에 겨우 끼어들고 있던 때, 사장 정도로 보이는 직원이 와서 페트병을 치워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가게에선 이런 거 꺼내두면 안된다고. 생수를 기본으로 주는 매장도 아니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팔아주고 있는데, 이 음료수 하나로 한소리 들을 일인가 싶었다. '아, 하이(네)'라고 대답하고, 의자로 옮겨놨다. 내가 다른 쪽으로 자리를 바꾼 후, 페트병이 놓여있던 자리는 아무도 없어서 치워졌다. 그러나 사장은 페트병을 챙겨주는 것도 없이 덩그러니 의자에 둔 채 모르는 체를 했다.
고베에 있는 카페에 갔을 때다. 아랫층엔 갤러리가 있고, 그 위로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는 곳. 감각적인 공간이고 자리가 없어서 돌아나온 적도 한 번 있었기 때문에 친구까지 데리고 다시 방문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결론, 불쾌한 감정만 남았다.
갤러리부터 보고 갔더니 카페 웨이팅이 있어서 웨이팅을 걸어두고 다시 갤러리로 내려갔다. 두 번째 보는 거라 흥미도 떨어졌고 몇 바퀴를 돌아도 차례가 안 와서 카페로 이어지는 계단 앞쪽(보다 조금 더 앞쪽) 구석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랬더니 직원이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갤러리를 둘러보면서 기다리란다. 이미 다 봤다고 했더니 그래도 보라고 해서 결국 다시 갤러리 구경하다 겨우 차례가 와서 카페로 올라갔다. 드디어 앉아서 커피를 다 마시겠구나 들떴고, 친구가 깜짝 선물도 줘서 텐션이 많이 올라간 상태였다.
커피랑 같이 주문한 디저트가 나왔다. 감각적인 공간에 비해 생각보다 이쁜 사진을 건지기가 어려웠다. 일어서서 이쪽 각도로 찍어볼까, 하고 일어서서 폰을 드는 순간, 직원이 달려와서는 사진은 본인 앞쪽에서만 찍으라는 거였다. 일어서서 찍는 게 그렇게 진상이었을까 싶었다. 테이블에서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었고, 뒤쪽 테이블에 내 엉덩이가 닿이는 것도 아니었다. 벌써 두 번 제지를 당한 상태라 기분이 안 좋았는데, 물을 두 잔 부탁했더니 한 잔만 나오는 것이다. 무언의 압박이었을까 싶었다. 결국 '예쁜 카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스타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
나는 라멘 가게에 자주 가지 않는다. 라멘 가게는 좁고 현금(과 교통카드)만 되는 곳이 많고 빨리 먹고 나가야 하는 압박이 있기 때문이다. 라멘 자체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는 생각한다. 일본에는 지로계 라멘이 있다. 기름기가 많고 마늘, 고기, 숙주 등을 가득 올려먹는 라멘으로 마니아 층이 꽤 있다. 한 번 회사 동기가 같이 가자고 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동기가 배탈 나니까 안 먹는 게 좋다고 해서 결국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다. 지로계 라멘은 맛의 특징도 있지만, 독특한 주문 시스템과 암묵적인 룰로 유명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주문이 들어가고 면이 삶아지는 때에 맞춰서 '콜'이라고 하는 타이밍에 토핑을 추가해야 한다. 초심자면 이 타이밍을 몰라 버벅거려 혼나기도 한다. 그리고 딴짓 없이 식사에만 집중한 뒤 신속하게 나가야 한다. 남겨도 안된다. 이런 하드한 가게가 맛과 양으로 늘상 인기이긴 하지만, 지로계의 불랑햔 분위기가 일본에서도 비판 받아 요즘에는 상냥한 지로계 라멘집이 생겨나고 있다고도 한다.
한국에도 물론 욕쟁이할머니국밥 같은 데가 있다. 통영에는 쌍욕라떼를 파는 데가 있다. 알고도 욕을 먹으러 가서 욕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공간이 아닌 곳에서 일본처럼 눈치를 봐야 한다면 한국에서는 장사가 과연 잘 될까? 한국이라면 국밥집이 일본의 라멘집과 비슷할 것이다. 빨리 나오고 든든하고 회전율이 좋고 혼자서도 가고 상대적으로 남성들에게 더 인기인 점 등을 봐서 말이다. 그런데 국밥집에 갔더니 순대만 할 건지 내장을 섞을 건지 빨리 얘기 못해서 혼나고, 스마트폰 보면서 먹는다고 혼난다면? 그리고 가령 김밥천국 같은 데에 갔더니 김밥 한 줄 시키면 남는 거 없으니 김치 리필은 안되고 빨리 먹고 나가라고 듣는다면? 한국식으로 바꿔보려고 과장한 점도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이 가게의 룰이 그렇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오뎅 국물' 논란이 있었다. JTBC <사건반장>에서 소개됐던 '호떡 두 개 사고 오뎅 국물 마시려다가 혼난' 사연이다. 사장님 입장은 오뎅 국물은 오뎅을 사먹은 사람만 마실 수 있다는 것. 사장이 야박하다는 의견도, 재료비가 드는 거니 공짜는 아니지라는 의견도 있다. 어디까지가 손님으로서 누릴 수 있는 부분인지, 대접 받을 수 있는 부분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일본이 그 폭이 더 작다는 실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