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의 스미마셍すみません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안하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만, 스미마셍이라고 한다고 해서 꼭 사과를 하는 건 아니다. 일본인들이 워낙 스미마셍을 많이 쓰다보니 뭐가 그리 미안할까 싶지만, 여러 경우에 쓸 수 있는, 아주 범용성이 높은 표현이다.
전철에서 내릴 때 앞사람이 막고 있어도 스미마셍,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싶을 때도 스미마셍. 이럴 땐 영어의 익스큐즈 미Excuse me와 비슷하다. 회식에 갔는데 누가 수저를 놔주거나 물을 따라줘도 스미마셍. 이럴 땐 일을 시켜서 미안하다기보단 고맙다는 의미다. 그래서 '스미마셍'과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는 셋트로 올 때도 많다. '아, 스미마셍,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좀 더 심오하게 들어가보면 내가 중간층에서 엘레베이터에 탈 때도 스미마셍, 화장실 칸에 나오거나 들어갈 때도 스미마셍, 정수기에서 물을 다 받고 내 뒤에 기다리던 사람에게 스미마셍 등. 미안하지도 고맙지도 않는 상황에서도 스미마셍을 남발하게 된다.
내가 해석하는 스미마셍은 확실히 미안하거나 익스큐즈미를 말해야 하는 상황, 고마운 상황을 제외하고는 '타인의 행동 혹은 범위에 내가 들어가게 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려 던지는 말이다. 처음에는 일본인들은 예의가 발라서 상대에게 민폐를 끼쳤을까봐 인사를 자주 하는 건가 싶었다. 친구는 일본은 클럽도 정중해서 다들 스미마셍을 외치고 다니더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밖을 다니다보면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사람들은 잘 없고, '저기요', '잠시만요'라고 주장의 성격이 강한 말들만 한다. 무뚝뚝한 사람도 많아 무언가 있어도 '아이고'로 끝나고, 화도 많아서 조금만 피해를 입는 것 같으면 서로에게 '아이씨'라고 눈쌀도 쉽게 찌푸린다(물론 일본인들도 이런 사람 많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일본의 스미마셍은 참 신사적이고 매너가 좋다.
그러나 스미마셍은 타인과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는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점심시간이면 회사 화장실 세면대에서 다들 양치를 하고 있다. 문을 열자마자 세면대가 있어 들어갈 때 양치하는 사람이 있으면 스미마셍, 한창 이닦고 있는 사람보다 먼저 세면대를 쓸 때도 스미마셍, 다 쓰고 나갈 때도 내가 먼저 닦았다고 스미마셍. 화장실과 세면대를 너도나도 쓰는 느낌보단, 개인과 개인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선에서 질서있게 공유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미마셍이 쌓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침투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게 된다. 항상 타인과 한발짝 떨어진 상태에서 소통하는 사회. 케미가 좋다고 하는 것 같은 케미컬(chemical)한 교류보단 상자의 구슬들처럼 물리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넘어, 일본 사회에서의 스미마셍은 나를 움츠러들게끔도 한다. 사소한 행동을 할 때마저 남에게 '스미마셍'을 해야 하는데, 이게 습관이 되다보면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물론 일본에서 떳떳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주눅이 든 채 사는 건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조차 스미마셍을 하지 않고 행동하면 이기적이거나 비상식적으로 되는 분위기에서 '스미마셍 센서'를 끈 채 지내기가 어렵다.
누군가에 말을 걸 때도 'ㅇㅇ상, 스미마셍, 지금 시간 되나요?'라고 물어보는데, 이는 지금 당신의 시간을 방해했다, 내가 필요해서 당신의 시간을 쓰고 있으니 양해를 구한다는 의미가 있다. 'ㅇㅇ상, 지금 시간 되나요?'라고만 해도 되긴 하지만, 스미마셍이라는 쿠션어를 넣는 것이 일본의 미덕인 셈이다. 우리 과장님은 '고멘ごめん(미안)'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의 행동으로 상대방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게 생각하는 문화다보니 누굴 불러야 하는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사용할 때도, 내 갈 길을 갈 때도 '스미마셍'으로 변명하고 방어하며 지내야 한다. 일본에서 지내며 스미마셍을 말하지 않는 날이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렇게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의미의 인삿말을 하고 사는 나라가 있을까. 미국의 매너라든지 한국의 예절과는 다른, 일본의 스미마셍 문화. 한번씩 한국에 가면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마음은 더 편하다. 한국에선 내가 먼저 세면대를 쓸 수도 있는 거고, 내가 타는 층에서 엘레베이터를 타는 것뿐이고, 누가 나를 위한 행동을 해주면 '고맙다'라고만 말하면 된다. 한국을 곧잘 혐오사회라고 하지만, 서로의 행동에 대한 관용은 일본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