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무심코 들여다본다. 몇 개월 치의 게시글을 손가락 몇 번 휘적이면 단숨에 볼 수 있다. 주로 카페(가끔 음식점) 사진 위주로 올리는 계정으로 요식업계 종사자의 포트폴리오라도 되는 듯한 사진들이 가득하다. 혼자 간 곳은 그날 혼자 뭐했는지를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와 같이 간 곳은 누구와 함께 했는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여름에 올린 사진에는 무더위를 피해 마신 아이스 커피가 있고, 친구랑 들렀던 커피 맛집 사진에는 하루종일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그날 세 잔 째의 커피가 있다. 땀을 뻘뻘 흘렸지만 수국처럼 은은한 여운이 있는 가마쿠라의 사진도 있고, 이런 데도 친구 덕분에 다 갔구나 싶은 이자카야의 사진도 있다. 이제는 연락도 잘 안 하는 사람이랑 간 식당도 있고, 좋아라했던 이케부쿠로의 카페도 있다.
유독 그날의 기억이 강렬한 게시물도 있다. 다이칸야마의 블루보틀에서 찍은 사진이다.
석사 2학년 가을, 논문 제출이 한달반쯤 남은 시점이었다. 노트북도 논문도 방에 두고, 책과 지갑만 에코백에 챙겨 농땡이 피우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마음 먹은 날이었다. 11월 중순이었지만 낮 기온이 24도 가량까지 올라 꽤 더웠다. 큰 맘 먹고 외출한 곳은 다이칸야마. 한적하면서 걷기 좋은 동네이기도 했고, 왠지 다이칸야마에 너무 가고 싶었던 날이라 다이칸야마로 갔다. 카페는 블루보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온 탓에 디카페인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몇 번 자리를 고민한 후 창가자리를 골라 앉았다. 커피를 받아와서 일본에서 귀한(?) 한국 책을 펼쳐들었다. 책은 김정운 교수의 <일본열광>. 그가 도쿄에서 지내며 보고 느낀 것들을 문화평론가의 시선으로 일본을 해석하는 내용이다. 아아, 맞아, 아아,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모처럼 책에만 집중하는 독서를 했다.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드니 어느새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찾아 헤맬 정도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이미 자리를 선점한 자의 여유를 부리다 나보다 일찍 왔으면서 영 일어날 기미가 없는 앞자리 남자보다 먼저 일어났다. 블루보틀을 나와서는 당연하다는듯이 츠타야 T-SITE로 향했다. 예전에는 레코드 코너에 헤드폰이 있어 새로운 노래를 알아가는 낭만과 재미가 있었는데, 음반 코너가 대폭 줄어들어있다. 그래도 구석구석 열심히 돌아다니며 책을 뒤적거려 본다. 일본어가 좀 늘어서 서점에서 서서 읽어보는 것도 자연스럽게 된다. 비즈니스 코너에서 눈에 띄는 건 엔비디아에 관한 책. 위아래로 적힌 일본어 책을 열심히 읽다 이내 지쳐 덮어두고 이동한다. 소설책 코너는 책도 작고 표지는 요란스럽고 비즈니스 책보다 더 일본어가 어려워 금방 포기했다. 한강 작가의 소설책 번역본을 보고 신기해할 뿐이었다. 티사이트에 생긴 패밀리마트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사먹는다. 같은 패밀리마트 편의점이라도 이곳에서는 조금 기분을 낼 수 있다. 다이칸야마역은 도큐 도요코선으로, 이케부쿠로에서 도쿄 메트로 후쿠토신선을 타면 자동환승으로 갈 수 있지만 요금은 더 비싸진다. 교통비를 아끼려 돌아갈 때는 후쿠토신선이 있는 시부야역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궁금한 가게들과 누가 살까 하는 맨션들을 지나쳐 시부야로 들어선다. 빌딩 숲의 그림자, 많은 사람들, 공사중이라 정신없는 임시통로에 정신이 팔려, 정말 거짓말처럼 시부야 이후의 기억은 사라졌다.
논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때였고 교통비 몇 백원도 걷는 거리를 늘려 아꼈던 때였는데, 봄 같던 11월의 일탈이 아주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다른 게시물도 어느 하나 우울함이 남아있는 사진이 없다. 아, 이곳도 좋았는데, 하는 사진들만 있다. 그 시기 우울했던 것들, 고민스러웠던 것들은 기억나지만,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충실했던 시간들이 피드에 쌓여있었다. 저번 글에 썼듯이 대학원생 땐 참 가난한 시간들을 보냈지만, 돈을 아껴 한번씩 다녀온 카페들이 쌓이니, 좋은 공간과 시간을 탐닉했던 날들이 영광스럽게 남아있다. 소박한 취미생활이 쌓여 괴롭고 심심했던 시간들을 지워낼 수 있으니, 더 좋은 곳에 질리도록 다니는 사람 못지 않게 부자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