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야 맞는 매너

by 일본기업영업맨

사토가 연락드렸던 건입니다만.


사토상이 과장님이든, 부장님이든 고객에게는 낮춰서 말하는 압존법. 일본의 비즈니스 매너의 기본적인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군대에서조차 폐지되었다고 할 정도로, 위계를 강압하는 문화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철저히 압존법이 남아있다.


한국인으로서 압존법은 영 힘든 매너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사람이든, 우리 과장님이든 고객에게는 사토, 다나카, 스즈키 등 그냥 이름만으로만 말하는 게 어색하다. 오히려 이게 예의에 어긋난 것 같기도 하고.


처음 고객사에 인사하러 갔던 날, 선배 직원이 더 선배인 직원과 과장님을 그냥 이름으로만 소개했다. 일본에서 압존법이 매너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써본 적은 없었는데, 과장님이 다나카상도 아닌 그냥 다나카가 돼버리는 게 새삼 놀라웠다.


고객사에 메일을 보내며 ㅇㅇ회의에는 폐사弊社에서 무라카미가 참여한다고 했다. 무라카미상은 40대가 훌쩍 넘은 걸로 보이는 머리가 하얗게 샌 직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메일 CC에 들어있는 무라카미상에게 실례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무라카미상'이라고 말하는 순간, 고객사에게 실례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회의에 참여해서 얘기하다보면 습관적으로 '무라카미상'이라고 얘기하게 된다. 말로 하는 것이다보니 어느 정도 허용은 된다. '무라카미상, 아, 무라카미가' 하면서 정정한 적도 있다. 아무도 지적하지도 신경쓰지도 않았지만, 외국인이다보니 더더욱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다.

눈이 쌓인 날 외근에 다녀오며

고객사에서 다녀오는 길, 선배 직원에게 압존법 문화가 한국이랑 달라서 어렵다고 했다. 그냥 이름만 말하는 게 예의없어 보이는 거 같아서 아직은 적응이 안된다고 했다. 의외로 선배 직원도 처음엔 적응이 안됐다고 했다. 습관적으로 '~상'을 붙이게 된다며. '에에, 그렇구나' 라며 조금은 안심했다.


이런 압존법은 사실 갑을의 문제가 아니다. 거래처인 회사라면 우리가 고객이라도 상대 회사에는 압존법을 쓴다. 그래서 고객사도 우리에게 귀사(貴社/御社)라고 말하며 본인들을 낮추며 대화한다. 쇼와(昭和, 1926~1989년의 일본 연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회사에 입사해서, 명함 주고받는 매너연수도 받았었다. 철저히 매뉴얼(?)대로의 명함 교환은 아니지만, 진짜 고객과 명함을 주고 받을 때 다들 꼭 '명함 잘 받았습니다(頂戴致しました)'라고 하더이다. 어린이가 어른의 행동을 보고 배우듯, 눈치를 살피며 고객들의 행동을 보고 배우며 조금씩 비즈니스 매너 실전을 익혀갔다.


외국의 회사에 다닌다는 건 언어만 해결되면 되는 게 아니다. 그 나라의 비즈니즈 매너를 알아야 하고, 그 나라 직장인으로서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메일에 문자를 입력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넘어, 일을 하는 법, 일본인답게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본도 모든 회사가 다 같은 건 아니지만, 압존법 같은 건 대부분의 회사에서 적용되는 매너다. 길고 복잡한 경어를 쓰는 것도 웬만하면 비슷하다(간혹 아닌 일본인들도 있지만). 외국인이다보니 반항도 못하고(?) 모두가 당연하듯 하는 매너를 열심히 익힌다. 이런 것만 안 해도 메일이 조금은 더 짧아질 텐데, 회의가 조금 더 짧아질 텐데 하는 것들을 답답해하며, 일본 회사와 사회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위의 이름은 전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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