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방식의 혁신을 이끌어낸 도요타가 있는 나라지만, 일본은 여전히 (한국인 기준)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그래도 곳곳에서 효율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관공서 업무에서 온라인으로 되는 것들이 늘어났다. 이제서야 싶지만 '마이넘버카드'라는 일본 주민등록증 같은 걸 발급 받으면 스마트폰에 갖다대서 NFC 기능으로 본인인증도 할 수 있다. 다만 마이넘버카드를 쓰기 위한 비밀번호(영문+숫자)를 설정해야 하는데 기술 문맹인 사람들이 관공서에서 어려움을 겪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가게에선 각종 페이가 도입되면서 현금 없이 결제가 가능하다. 애플페이는 사실 한국보다 이르게 도입됐다. 다만 한국은 현금이 불편한 것도 있지만 탈세 의혹 등의 이유로 현금 거래를 꺼려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본은 그저 '실물 현금을 없애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돈을 가득 충전해서 쓰는 페이페이나 IC카드(교통카드)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에서의 불편한 느림, 비효율 등등은 어느 정도 적응(이라고 말하고 머리로만의 이해라고 한다)했는데, 왜 이 혁신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게 있다. 바로 택배 시스템이다. 한국이야 문앞에 뭐든 두고 가도 문제가 없고, 로켓배송, 새벽배송 등 빠른 배송도 앞다투어 하는 나라니 택배 이용자가 불편함을 겪을 일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내가 택배를 못받아서 재배송을 의뢰해야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재배송이 참으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가령 마시던 생수가 다 떨어져서 아마존(일본에서 쿠팡 같은 존재다)에서 주문을 한다. 이틀 후면 도착한다고 해서 지금 딱 2~3일치 남아있으니 딱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이틀 후,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부재표(不在票, 혹은 부재연락표不在票連絡票)’가 우편함에 들어있다. 배송시간은 오전 11시 쯤. 귀찮게 다시 재배송을 신청해야 한다. 부재표에 송장정보를 QR코드로 붙여주면 편하지만 아닌 경우는 송장번호를 일일이 입력하고 주소도 다시 다 입력한 후에서야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대를 입력한다. 그리고 설정한 날, 설정한 시간대에 꼭 집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간혹 '오전중'으로 설정하면 12시 다 돼서 오기도 하고, 18~20시로 설정해도 17시 50분쯤 조금 이르게 도착할 때도 있어 물건을 받을 때까지 방심할 수 없다. 참으로 서로가 불편하고 귀찮은 재배송이다.
그럼 주문할 때부터 설정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주문할 땐 지정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몇날며칠에 도착한다고만 돼있으니, 일단 주문하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번에 물건을 받는다는 생각은 못하고 재배송 전제로 주문한다. 택배보관함이 있는 맨션이면 거기에 보관하고, 서류 봉투 같이 작은 거면 우편함에 넣어두고 가기도 한다. 그러나 택배보관함에 넣지 못할 정도로 큰 물건은 무조건 재배송이다(평일은 일로, 주말은 약속이나 외출로 낮에 집에 잘 없으니..). 배송기사는 물건을 차에서 내려 카트에 싣고 인터폰 호출까지 한 다음, 집에 아무도 없으니 그대로 들고갔다가 재배송 해준다.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인가. 내가 물건을 바로 못받는 불편함도 있지만, 이건 택배 노동자들이 시스템을 혁신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택배를 받아야 한다는 걸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도 있다. 재택근무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고, 회사가 보장해주는 만큼 재택근무는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는 꽤 일상화돼있는 것도 있으니. 그러나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 옆 사람이 택배를 받아야 해서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하는 게 참 그렇다(일 안 하는 직원일수록 더더욱). 한편, 재택을 하니 택배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다른 의미로 못마땅하다.
한국처럼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뚫어서 들어가는 건 일본 사람들 정서에 최악이기 때문에, 문앞에 그냥 두고 가라는 건 사실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한국은 혐오 사회지만, 사실은 엄청난 신뢰 사회다. 서로의 편리함을 위해 택배 기사를 믿고, 이웃을 믿는다. 일본인들은 타인을 잘 못믿어하는 경향이 크고, 안전을 중시하기 때문에 혹시모를 범죄를 생각해서 지레 겁먹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한국 택배 메시지에 어떻게 수령할지 물어보는 것처럼, 몇시 배송인데 시간 변경 필요한지를 미리 물어만 봐도 쓸데없이 두 번씩 가는 일은 없어지고 일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미리 메시지를 보내 수령 장소를 물어보는 게 가능한 것에도 한국만의 시스템이 있는 것 같다. 문자 메시지든 카톡이든 확인이 빠른 점(스마트폰 확인 빈도가 더 높음), 카톡의 기능이 일본이 쓰고 있는 라인보다 훨씬 고퀄리티라 개인 맞춤으로 정보를 보내고 응답을 수집하는 게 유연한 점이다.
혹시 일본 택배회사는 배송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판단해서 사전 확인 서비스(?)를 못하는 것일까? 사실 일본 택배의 재배송 의뢰는 생각보다 유연해서 설정한 시간대에서 2~3시간 전까지 수정하면 물건 받는 날이랑 시간을 다시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 세 시간 후쯤 물건을 받기로 했지만, 지금 외출이 길어질 것 같아서 다음날 몇 시, 로 다시 설정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택배회사 입장에서는 2~3시간 앞을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것. 이 또한 참 피곤할 듯하다.
오늘도 부재표가 들어있던 우편함. 아, 역시나 싶어 확실히 받을 수 있는 시간대로 재배송 의뢰하면서 문득 의문에서 오는 짜증이 몰려온 걸 계기로, 경험과 뇌피셜로 일본 택배 시스템을 생각해보았다. 부재표가 없어지는 일본 사회가 도래할 것인가. 한국의 온돌만큼 자랑스러운 한국의 택배 시스템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