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좀 가져가

by 일본기업영업맨

지금 살고 있는 지방도시의 백화점 지하에 한국의 반찬가게 같은 한국 반찬코너가 있다. 김치도 팔고, 1키로그램의 한국 된장(공산품)도 팔고, 파전도 판다. 백화점 지하 슈퍼 안에 있어서 슈퍼에 갈 때마다 늘 살펴보던 곳이다. 아, 백화점 지하 슈퍼라고 하니 고급스러운 장보기를 하는 것 같지만, 야채나 과일, 고기 등은 다른 평범한 슈퍼와 크게 다르지 않고, 할인할 땐 오히려 저렴하기 때문에 종종 이용하고 있다. 유통은 아무래도 백화점이니 더 좋은 상품이 들어오겠지 싶기도 해서다.

아무튼, 이 반찬코너 앞엔 키가 작으신 아주머니가 서계신다. 김치를 뒤적이기도 하고, 그냥 손님들을 보기도 한다. 한국 김치가 별로 인기가 없는지 뭘 사가는 일본 손님은 아직 보진 못했다. 저 김치는 맛있을까, 반찬코너는 꽤 한국식이지만 맛은 일본화化돼있을지도 모른다고 늘 의심하며 뭘 사볼 엄두는 못냈다. 그래도 필요할 땐 여기에 오면 되겠다 싶은 곳이었는데, 마침 설날 연휴가 돼서 떡국떡을 사러 갔다. 칼디(KALDI)나 다른 외국식료품 가게에서 파는 짝퉁 떡국떡(?)은 맛없을 게 뻔했고, 명절만큼은 제대로 해먹고 싶어 이곳으로 갔다. 1kg 짜리 한국 생산의 떡을 살짝 들어 믿어도 되는 떡인가(?) 보고 있자니, 반찬코너 아주머니가 맛있다면서 말을 거셨다.


떡국 오이시이데스요(맛있어요), 라고 하시는데 '떡국'의 발음이 너무 좋았다. 'ㄸ'도, 'ㅓ'도, 'ㄱ받침'도 어려워하는 일본인이 '떡국'을 자연스럽게 발음할 일은 좀처럼 없다. 역시 한국 아주머니 같더라니, 싶어 한국분이시냐고 물어봤다. 저도 한국인이에요, 라고 했더니 '한국 사람이야?'라며 미소는 없지만 얼떨떨한듯 반가워하는 늬앙스로 답하셨다. '처음 왔지?, '여기 살아?'라고 물어보시더니 본인은 어디에 사는지 말해주셨다. '으응, 거기 맨션'이라며 자랑스게 말씀하기도 했다. 다짜고짜 결혼은 했녜서 안 했다니 어딘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안 했어어...?'라고도 하셨다. 여기 오래 되셨냐고 물어보니 이 백화점에서만 30년 계셨단다. 원래 이 반찬코너는 지하2층에 있었는데 이젠 지하1층에 있다며 회사 사람들한테도 못들어본 이 지역 역사 얘기(?)를 들었다.


그러더니 김치 좀 가져가, 라고 하셨다. 어느집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주는 김치가 처치곤란이라고 하는데, 지금 나에게 김치는 얼마든지 받고 싶은 음식이다. 다른 거였으면 '어휴, 아니에요'라고 거절했을 텐데, 김치라 넙죽 받았다. 300그램 정도는 돼보이는 양에 김치국물도 가득 넣어주셨다. 떡국이랑 같이 먹으면 딱 되겠네요, 했더니 '김치나베 하면 돼'라며, 자꾸 나베 해먹으라고 하셨다.

내가 들고있던 비닐봉지에 쏙 넣어주셨다

그런데 이 백화점에만 30년 계신 세월을 일본에서 지내셔서 그런지, 남편도 일본인이라 그런지, 한국어가 곧잘 나오셨지만 말에 일본어가 많이 섞여있었다. 일제강점기 직후의 할머니들이 이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문득 마음이 안 좋아졌다. 내가 다 알아들으니 일본어로는 '하이'밖에 안했는데도 '일본어 잘하네'라고 칭찬도 해주셨다. 한국인을 만나 반가우신 건지, '또 올게요'라고 떠나려고 하니 다시 말을 거시고, 또 말을 거셨다. 한 발짝 떨어졌다가 다시 얘기하고, '예?'라고 되물어 또 대화를 했다. 항상 여기에 있는데, 오후부터만 있다고 하셔서 퇴근하고 오면 저녁이니까 딱 계시겠네요, 라고 했다. 겨우 인사를 하고 떡국떡을 계산해서 왔다.


지금껏 만난 한국인들과는 또 다른 느낌의 한국인이었다.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것도 아닌 것 같고, 불행하게 지내오신 것도 아닌 것 같다. 일본에 잘 순응하며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 같았다. 그래도 타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오시며 외로우셨던 건지, 그렇게 외향적인 성격은 아닌 것처럼 보였음에도 오지랖을 부리는 한국인 아주머니 모먼트가 가득 나왔다. 이 아주머니에 대해 반가움도 동정도 없지만 한번씩 들러 말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껴아껴 먹어 마지막 남은 김치와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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