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달리는 사람 앞에서,
나는 왜 작아지는가

우직한 바보를 부러워하는 조급한 나의 기록

by 살비

빠르게 판단하고 일을 마무리하는 나.

그런 나에게 늘 열패감을 안기는 ‘우직한 사람들’.

오늘은 그들의 리듬으로 나를 밀어붙여 본 아침이었다.




나는 늘 빠르게 판단하고, 재빨리 일을 끝낸다.
감정은 밀쳐두고, 관계도 곁눈질로 넘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 앞에선 자꾸 작아진다.
그건 부끄러움일까, 부러움일까.

오늘은 마음을 다잡고, 힘껏 달려야 한다.


만석공원에서 시작해 수변로를 따라 서호저수지를 돌아, 다시 만석공원으로 돌아오는 이 코스. 나는 오늘, 이 한 바퀴를 온전히 내 숨으로 완성해보고 싶다.


전력을 다해 100미터를 뛰거나, 마냥 1~2시간 조깅을 하는 건 오히려 쉬웠다. 하지만 숨이 벽처럼 몰아치는 고강도 유산소는, 늘 내 회피의 이름이었다.

신발장에서 핫핑크색 카본화가 눈에 들어온다. 평소엔 쿠션 좋은 러닝화를 신지만, 오늘은 반발력이 좋은 써코니 프로3를 신고 집을 나선다.


"하~~." 차가운 심장에 찬바람이 들어간다. 해는 이미 떠 있지만, 공기는 아직 서늘한 여름이다. 또박또박 공원까지 걸어간다. 조금씩 심장이 두근거린다.

공원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다. 러닝 열풍 때문인지 몇 년 전보다 훨씬 많다. 가끔은 함께 달리는 느낌이 좋아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길이 복잡해져 성가실 때도 있다.


"후~ 후~ 후~." 내쉬는 숨에 집중하며, 공원을 한 발자국씩 담아낸다.

이곳은 작은 호수가 있는 만석공원이다. 봄이면 벚꽃 잎이 눈앞을 어지럽히고, 여름이면 연꽃이 호수에 번져 생명력을 뽐낸다. 가을엔 알록달록한 잎사귀들이 나와 함께 뛰고, 겨울엔 내 발을 걸어 넘기며 장난을 치는 곳이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수변 산책로와 만난다. 이 길은 서호저수지까지 약 2킬로미터 남짓 이어진다. 아침 햇살이 반사되는 수면과 풀 냄새 사이로, 나는 숨을 정리하며 그 길에 진입한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운동하는,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모두가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다. 나도 수변로에 들어서며 100미터 전력 질주를 두 번 해 본다. 아직 잠들어 있는 몸을 깨우는 예열이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뛰어볼까. 숨을 크게 들이쉬며—"쓰읍~~~~"—수변로를 따라 달린다.

이곳의 사람들은 공원 산책자들보다 발걸음이 빠르다. 여기엔 목적이 분명한 움직임이 있다. 열이 오르고, 등에 땀이 슬슬 차오르기 시작한다. 빨리 땀이 흘러서 내 몸을 식혀 주었으면 좋겠다.


이마에 땀이 고이기도 전 서호 저수지에 도착한다. 이곳은 겨울 철새 도래지로 이미 돌아가버린 새들 대신 푸른 나뭇잎이 계절의 정점을 보여준다. 지금까지는 몸을 깨우는 구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나를 밀어붙이는 시간이다.


"학, 학, 학." 짧게 뱉는 숨과, 더 빨라진 발걸음이 박자를 맞춘다. 머릿속에는 오직 몇 가지 지시만 남는다. 무릎을 든다. 내려놓는다. 숨을 들이마신다. 내쉰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눈앞의 사람들은 내가 피해 가야 할 장애물일 뿐이다. 잠깐 시선을 끄는 러너가 있더라도, 그들은 나의 경쟁자도, 조력자도 아니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숨이 이만큼 차오르기 전에 늘 돌아섰다. 그 벽을 넘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장이 내 귀에 크게 소리치더니, 이내 귀가 멍멍해졌다. 그 순간 오히려 조용해졌다.


"후~ 후~ 후~." 반환점을 돌았다. 다시 수변로에 들어선다. 같은 길이지만, 숨이 거칠고, 근육은 무겁다. 이제는 버티는 길, 돌아가는 길이다.

이제부터 내가 놓는 발걸음은 신경 쓰지 않는다. 숙달된 리듬게임 장인처럼 기계적인 움직임이다. 이쯤 되면 다른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앞서 달리는 누군가와 점점 간격이 좁혀지면, ‘이 사람이 얼마나 잘 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자세를 유심히 관찰한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내 눈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뒷사람이 따라붙을까 봐 신경이 쓰인다.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도 불안하게 흔들린다. 혹시 지금, 우직한 바보 하나가 나를 따라잡으려는 걸까. 끝까지 멈추지 않고 밀어붙이는 그 성실함이, 내 등을 밀고 있는 건 아닐까. 잠깐, 주춤하고 싶어진다.


나는 우직하게 밀도 있는 삶을 원한다. 하지만 내 안의 기준이 높아, 밀도 있는 삶이란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라 자주 착각한다. 그래서 조금만 나태해져도 그런 삶을 ‘바보’라 부르며 부정하고 회피한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아이러니 속에 산다.

심장이 뛰는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자리를 거친 숨소리가 완전히 차지해 버렸다.


"학, 학, 학..." 마지막 수변로를 지나친다. 시계를 보니 오늘 5킬로를 달렸다고 뜬다. 마지막 2킬로는 나만의 무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배경일뿐, 나는 내 몸이 기울지 않도록 오직 균형에 집중한다.

"헉... 헉... 헉..." 다시 만석공원으로 돌아왔다. 내가 떠났던 그 자리다. 하지만 몸은 다르고, 숨도 다르다. 이곳에서 마지막 전력질주를 몇 차례 더 해야 오늘이 끝난다.


숨을 고르며 100미터 정도 걸어간다. “쓰읍~~~~~.”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무릎을 더 높이 들고, 발을 힘차게 구르며 달려 나간다.

20초쯤 달린다. 잠시 걷는다. 그리고 다시 달리고, 걷고. 이걸 네 차례 반복한다.

갑자기, 심장 소리가 뚜렷하게 들린다. 더 빨리 뛰라고 내 몸이 나를 응원하는 것 같다.


“허억, 허억, 허어억...” 오늘의 운동이, 이제 정말 끝났다.

아침에 나온 사람들은 여전히 산책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누군가는 출근을 위해, 또박또박 걸어가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일을 완성하고 있다.

나도 오늘 아침을 완성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잠시의 연기였을지도 모른다. ‘우직한 바보’를 흉내 내며, 그들의 삶을 빌려 입은 오늘 아침.

나는 그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질투한다. 존경하지만, 또 외면하고 싶다. 그래서일까. 그들을 따라 하려는 순간마다, 오히려 더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한다.

바보가 되지 않으려다, 진짜 바보가 되어가는 나.
오늘 아침의 숨결만이, 그걸 조용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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