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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좌절

by 박루이

1장. 끝없이 추락하는 삶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그는 고시원의 낡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옆방에서 새어 나오는 코골이 소리가 고요를 갈랐다. 서른셋. 번듯한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자부했던 그는, 이제 겨우 한 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고, 밀린 월세는 몇 달 치가 쌓여 있었다. 어제저녁엔 냉장고를 열어보니 물밖에 없어, 결국 김치와 찬밥을 물에 말아먹었다. 그렇게라도 먹지 않으면, 내일 아침까지 버틸 기운조차 없을 것 같았다.


내리 세 번의 사업 실패. 첫 번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뛰어들었던 교육 플랫폼 스타트업이었다. '개인의 잠재력을 최적화하는 맞춤형 학습 시스템'이라는 거창한 비전을 내걸었지만, 막대한 개발비와 인재 유치 경쟁 속에서 쥐꼬리만 한 시드머니는 순식간에 증발했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서비스는 제대로 된 테스트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때는 순전히 경험 부족 때문이라고 자위했다.


두 번째는 공유경제 기반의 주차 플랫폼이었다. 도시의 만성적인 주차난을 해결하겠다며, 유휴 주차 공간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혁신적인 아이템이라고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하지만 규제 장벽은 예상보다 높았고, 대기업들이 유사한 서비스를 출시하며 시장에 뛰어들자, 작은 스타트업들은 아무것도 해볼 새 없이 밀려났다. '자본의 힘 앞에서는 아이디어도 무용지물'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그때는 마치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며칠 밤낮을 술에 절어 보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마지막, '오더베이스'. 소상공인을 위한 통합 주문 및 재고 관리 시스템. 이건 정말 자신이 있었다. 직접 발로 뛰며 소상공인들의 고충을 들었고, 그들의 니즈를 반영해 시스템을 설계했다. 김성훈과 밤새 코드를 짜고, 박선우에게 투자를 설득하며 온 힘을 쏟았다. 초기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꼬였다. 비대면 주문이 폭증할 거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폐업하는 가게들이 속출하면서 그들의 서비스가 설 기반 자체가 무너져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결국 팀원들에게 퇴직금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회사를 정리해야 했다.


"이지훈, 너는 그냥 사업은 아니야. 제발 정신 차려."


김성훈은 마지막까지 그의 옆을 지켰던 친구였다. 그 녀석마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궜을 때, 그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그의 야망이, 그의 꿈이, 결국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상처만 준 꼴이 되었다.


세 번의 실패는 그를 파산 지경으로 몰고 갔다. 신용불량자 낙인은 시간문제였다.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오는 독촉 전화는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모르는 번호는 아예 받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의 연락일까 봐 두려웠고, 혹시라도 빚 독촉일까 봐 더 두려웠다. 그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는 스마트폰이었지만, 이제 그 스마트폰은 그를 옥죄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고향인 영주로 도망치듯 내려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틈에 섞여 조용히 숨어 살고 싶었다. 부모님께는 서울에서 잘 지낸다고 거짓말을 했다. 차마 이 꼴을 보여드릴 수 없었다. 그분들의 희망이 그 때문에 산산조각 났다는 죄책감이 그를 갉아먹었다.


아침이 되어도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눈을 뜨면, 어제와 다름없는 암울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밥을 먹는 것조차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온몸의 세포들이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을 폐인처럼 지냈다.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 방은 마치 그를 위한 거대한 무덤 같았다.


가끔 과거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이 플래시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밤샘 개발 후, 팀원들과 마시는 캔맥주의 짜릿함.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벅찬 희망. 투자 유치에 성공했을 때, 박선우의 냉소적인 표정이 환하게 변하던 순간. 이 모든 기억이 지금의 비참함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그는 한때 타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삶조차 통제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숨만 쉬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직장인이 되지 못했을까. 왜 그 빌어먹을 '창업의 꿈'에 사로잡혀 이 지경까지 왔을까. 후회와 자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텅 비어버린 것 같았고, 가슴속은 재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그의 존재는, 그가 만들었던 실패한 서비스들의 잔해처럼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는 그저, 끝없이 추락하는 삶의 한가운데서,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서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고시원 창밖 풍경은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의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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