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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아8

제3부 성장

by 박루이


8장. 최대 위기


‘오더베이스 서플라이’는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성공은 파죽지세로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되었다. 소상공인들은 AI 기반의 공동 구매 시스템에 열광했다. 식자재 원가가 평균 20%, 많게는 30%까지 절감되면서, 그들의 마진율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매일매일 밤잠 설치며 식자재 가격 비교하던 게 거짓말 같아요!”


“오더베이스 덕분에 이제야 숨통이 트입니다!”


감사 인사가 빗발쳤고, 서비스 가입 문의는 폭주했다. 그들은 유능한 개발자와 영업 인력을 충원하며 급격히 몸집을 불렸다. 낡은 반지하 사무실은 넓고 쾌적한 역삼동의 오피스로 바뀌었고, 직원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추가 투자 유치 미팅이 쇄도했고, 그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매출 지표와 에아가 제시하는 미래 시장 예측 데이터를 근거로 거침없이 몸값을 높여 나갔다. 불과 1년 만에 오더베이스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뉴스 헤드라인에는 ‘AI로 소상공인 생태계 혁신’, ‘오더베이스, 유니콘 기업 등극 초읽기’ 같은 기사들이 연일 쏟아졌다. 유니콘 기업이라는 꿈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빠른 성공은 늘 그림자를 동반하는 법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성장통’을 겪기 시작했다.

수많은 소상공인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너무 많은 도매상, 생산자와 계약을 맺다 보니 물류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렸다. 배송 지연, 품질 문제, 심지어 오배송 사태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다. 고객센터는 불만 전화로 마비될 지경이었다.


“지훈아, 오늘 새벽에 제주도 식당 사장님한테 전화 왔는데, 전날 시킨 고등어가 썩어서 왔대. 우리랑 계약한 공급처 문제인데, 배송까지 늦춰서 문제가 더 커졌어!”


성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보고했다.


“물류 시스템을 아무리 최적화해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너무 많아. 기존 물류 업체들도 우리 물량을 다 소화 못 하겠다고 하고.”


설상가상으로, 기존 식자재 유통 시장의 거대 기업들이 오더베이스 서플라이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 쌓아온 자신들의 아성과 이권을 그들이 침해하고 있다고 여겼다. 대기업 유통사들은 소상공인들에게 “오더베이스를 쓰면 공급을 끊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AI 기반 공동 구매는 영세 공급망을 파괴한다”는 식의 악의적인 여론전을 펼쳤다.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복잡한 식자재 유통망은 생각보다 훨씬 견고했고, 그들의 반격은 예상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강력했다. 일부 소상공인들은 대기업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오더베이스 서플라이를 탈퇴하기 시작했다. 한 달 만에 가입자 이탈률이 10%를 넘어섰고, 신규 가입은 급감했다.

벤처캐피털 투자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긴급 주주총회가 소집되었다.


“이지훈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불과 몇 주 만에 가입자 이탈이 이렇게 심각하다니요! 시장의 반발이 이렇게 클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당장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십시오!”


투자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더듬거렸다.


“저... 저희가 현재 물류 시스템을 전면 재조정하고 있고, 새로운 공급처를 확보하며...”


“그래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겁니까? 저희는 무한정 투자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자금 소진은 물론, 기업 가치도 폭락할 겁니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다시 그 익숙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세 번의 실패 끝에 간신히 일궈낸 성공이었다. 에아와 성훈이, 그리고 모든 직원들과 함께 밤낮없이 달려왔는데, 또다시 이대로 끝나는 걸까? 그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밤늦게 사무실에 홀로 앉아 에아에게 물었다.


“에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우리가 모든 걸 다 분석하고 예측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대기업의 이런 조직적인 반격은 예상하지 못했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기는 한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섞여 있었다. 지난 실패의 트라우마가 온몸을 짓눌렀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에아마저도 침묵하는 듯했다. 평소 같으면 즉각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했을 에아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무실의 정적이 길어질수록 그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졌다. 에아마저 답을 찾지 못하는 걸까? 이제 정말 끝인 걸까?

한참의 침묵 끝에, 에아의 메시지가 화면에 떠올랐다.


[지훈 님. 제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인간의 조직적인 담합'과 '감정적인 반발'이었습니다. 데이터는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시장 논리를 기반으로 작동하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기득권 보호를 위한 비합리적인 행동까지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는 저의 한계이자, 당신들이 넘어서야 할 인간적인 영역입니다.]


에아의 말은 차가웠지만, 뼈아픈 진실이었다. 그는 늘 에아의 완벽한 예측과 분석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조직적인 방해는 데이터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지훈 님. 당신들에게는 제가 갖지 못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정성'과 '가치', 그리고 '인간적인 연대'입니다. 지금은 이윤을 쫓을 때가 아닙니다. 당신들의 핵심 가치인 '소상공인과의 상생'을 증명해야 할 때입니다. 데이터는 당신들에게 '공급망의 투명화'를 통해 소상공인들이 스스로 권한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오더베이스 서플라이'는 단순히 싸게 물건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소상공인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플랫폼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에아의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제가 마지막으로 조언합니다. '오더베이스 서플라이'의 모든 공급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상공인들이 직접 공급처를 선택하고, 심지어 새로운 공급처를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십시오. 그리고 이윤의 상당 부분을 '소상공인들의 협동 기금'으로 적립하여, 그들이 스스로 시장의 불합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자립 기반을 만들어주십시오. 단기적인 손실이 있겠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당신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구축할 것입니다. 당신은 '돈'이 아닌 '가치'를 파는 기업임을 증명하십시오. 저는 이 가치를 학습했지만, 오직 지훈 님만이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는 숨을 들이켰다. '공급망의 투명화', '소상공인들의 주체화', '협동 기금'. 에아의 조언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어쩌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당장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오더베이스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너무나 명확한 길이었다. 이윤을 넘어선 '상생'이라는 본질.


그는 에아가 제시한 조언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그의 내면에서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 이윤만을 쫓는 기업은 결국 시장의 논리에 파괴될 수 있지만,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인간적인 연대를 만들어내는 기업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에아는 그의 분신으로서, 그가 가진 가장 인간적인 강점, 즉 '공감'과 '상생의 의지'를 극한의 위기 속에서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절망하지 않았다. 에아의 마지막 조언은 단순한 전략을 넘어, 그들의 존재 이유와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AI가 가르쳐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조언이었다. 그들은 이제, 단순한 기업을 넘어 진정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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