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차 탐구: 지혜로운 삶의 기초 (마 7:1-29)
오늘 우리는 5주에 걸친 산상수훈의 마지막 장을 함께 나누게 됩니다.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인 마태복음 7장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공동체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관계 맺고, 궁극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예수님은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인 ‘비판’의 문제를 다루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7:1). 이는 모든 분별을 금지하는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를 빼려는 위선적인 판단을 금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건강한 분별의 전제 조건은, 먼저 나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비추어보고 회개하는 자기 성찰입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공급됩니다. 예수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모든 관계의 기초가 되며, 이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는 황금률로 요약됩니다. 이웃을 향한 나의 행동 기준이 나의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가장 선한 것을 행하는 것, 이것이 구약 전체의 핵심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산상수훈은 아름다운 이상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듣는 모든 이들을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세우는 단호한 초청이자 경고입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지, 어떤 고백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합니다.
첫째는 두 개의 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신앙의 길은 세상의 인기나 편안함을 따르는 넓은 길이 아니라, 진리를 따르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결단입니다.
둘째는 두 종류의 나무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는 기준은 그들의 화려한 말이 아니라 삶의 ‘열매’입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8, 20). 참된 신앙은 반드시 선한 삶의 열매로 증명됩니다.
셋째는 두 종류의 고백입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고 예수님은 충격적으로 선언하십니다. 놀라운 종교적 행위가 구원의 보증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대한 순종이 진짜 믿음의 증거입니다.
마지막 비유는 이 모든 선택의 결과를 ‘두 건축가’의 이야기로 보여줍니다. 두 사람 모두 똑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듣고 ‘행했고(순종했고)’, 다른 한 사람은 듣고 ‘행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두 집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부는 인생의 위기, 즉 심판의 날이 닥쳤을 때 그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졌고, 반석 위에 지은 집은 굳건히 서 있었습니다.
여기에 산상수훈 전체의 결론이 있습니다. 말씀을 아는 것, 감동받는 것, 심지어 가르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나의 삶의 유일한 기초로 삼고 매일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만, 우리는 어떤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삶을 세울 수 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는 “산상수훈 전체의 구조는 마지막의 순종에 대한 촉구로 귀결된다”고 말했습니다.¹ 신앙은 결국 순종입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무리들은 그의 가르치심에 놀랍니다. 이는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위 있는 자’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마 7:28-29). 그 권위는 단지 화려한 언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이신 그가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며, 그가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친히 살아내셨고, 또한 그 말씀을 살아낼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은 결국 우리를 그 왕의 권위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그분의 다스림에 내어드리도록 초대하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각주:
¹ 존 스토트, 『산상수훈 강해』 (IVP, 2006), 255. 스토트는 산상수훈의 마지막 비유들이 결국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의 중대한 차이를 강조하며 순종을 촉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와, 나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아야 한다는 말씀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오늘날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가 세상의 넓은 길 대신 주님의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할 영역은 어디입니까?
나의 신앙은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신앙입니까? 나의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무엇인지 정직하게 점검해 봅시다.
황금률 실천하기: 이번 주, 관계 속에서 갈등이나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떤 대접을 받고 싶을까?”라고 먼저 질문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겠습니다.
열매로 분별하기: 이번 주, 어떤 사람이나 가르침을 판단할 때 그 겉모습이나 말이 아닌, 그 삶의 ‘열매’가 무엇인지(성령의 열매와 일치하는지)를 기준으로 분별하는 훈련을 하겠습니다.
하나의 말씀에 순종하기: 지난 5주간의 산상수훈 말씀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지만 순종하기 어려웠던 말씀 하나를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그 말씀을 나의 삶의 ‘반석’으로 삼고, 구체적인 순종의 작은 실천 하나를 시작하겠습니다. (예: 원수를 위해 5분 기도하기, 염려 대신 감사하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