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 차 탐구: 죄를 사하고 새 시대를 여시는 왕 (마 9장)
지난주 우리는 마태복음 8장을 통해 질병과 자연까지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확인했습니다. 산 위에서 권위 있게 가르치셨던 왕은, 산 아래에서 능력 있는 행동으로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9장은 우리를 더 깊은 차원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의 권능은 이제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보이지 않는 영적 실체인 ‘죄’와 ‘죽음’을 다스리시며, 낡은 종교의 틀을 깨고 ‘새 시대’를 여시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한 중풍병자가 사람들에게 들려 예수님께로 왔을 때, 예수님은 그의 아픈 몸이 아니라 그의 영혼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2). 이 선언은 현장에 있던 서기관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죄 사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의 권한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속으로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라 정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물으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마 9:5).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죄 사함을 선언하는 것이 말하기는 더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 죄를 사할 권세가 있음을 보이는 기적을 통해 증명하십니다.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령하시자,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 9:6-7). 이 기적의 핵심은 육체의 치유가 아니라, 인자(人子)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증거’였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뿐 아니라, 모든 문제의 근원인 죄를 해결할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왕의 나라는 어떤 사람들로 채워질까요?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다른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십니다. 세리는 당시 동족의 피를 빨아 로마에 바치는 ‘민족의 반역자’요 ‘공인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시는 예수님을 보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이 비난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가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선언을 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 9:12-13). 예수님은 영적인 의사이십니다. 교회는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병들었음(죄인임)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의사이신 예수님의 치유와 용서를 경험하는 병원과도 같습니다.¹
예수님의 권능은 죄의 문제를 넘어, 죄의 결과인 죽음의 문제까지 다스립니다. 한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러 가시는 길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오랜 질병으로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졌던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 담긴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 9:22)고 선포하시며 그녀를 치유하십니다.
마침내 회당장의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이미 죽어 사람들이 곡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마 9:24)는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이신 왕에게 죽음은 잠시 잠든 것과 같을 뿐입니다. 예수께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왕의 권능은 죄를 사하고 질병을 고칠 뿐 아니라, 최종적인 원수인 죽음마저도 이기시는 생명의 권능입니다. 이 모든 새로운 일들은, 예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라는 ‘새 포도주’는 더 이상 낡은 종교의 ‘낡은 가죽 부대’에 담길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마 9:17).
마태복음 9장은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새 시대를 여시는 왕의 권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적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본문 마지막은 그 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긍휼히 여기셨다)고 기록합니다 (마 9:36). 왕의 모든 권능은 바로 이 긍휼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왕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긍휼을 구하며, 동시에 세상의 목자 없는 양들을 향한 왕의 긍휼한 마음을 품고 추수할 일꾼으로 살아가는 한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각주:
¹ 요아킴 예레미야스, 『예수의 비유』 (분도출판사, 1982). 예레미야스는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사건이, 당시 유대 사회의 엄격한 정결 규범을 깨뜨리는 매우 급진적인 행동이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환대를 몸소 보여주는 ‘실물 비유’와도 같았다고 설명한다.
1.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육체의 치유보다 먼저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현재 내가 겪는 문제들 속에서, 해결되기를 바라는 표면적인 문제와 그 이면에 있는 근본적인 영적 문제(죄, 불신, 두려움 등)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는 말씀 앞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서 있습니까? 스스로의 의를 내세우는 바리새인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긍휼이 필요한 죄인임을 고백하는 세리입니까?
열두 해 앓던 여인처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온 문제나 질병, 상처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 문제에 대해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나을 것’이라는 절박한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2. 적용할 내용
근본적인 문제 아뢰기: 이번 주, 나의 문제들을 놓고 기도할 때, 현상의 해결만을 구하기보다 “주님, 이 문제를 통해 제 안의 어떤 죄나 연약함을 보기 원하십니까?”라고 질문하며 근본적인 영적 필요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죄인’의 자리로 나아가기: 내가 ‘죄인’이라고 판단하고 멀리했던 사람이나 그룹이 있다면, 이번 주 그들을 향한 나의 편견을 회개하고 그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작은 친절을 베풀어 예수님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긍휼의 마음 구하기: 매일 아침 뉴스를 보거나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들을 때, 비판하거나 무관심하기보다 “주님, 저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제게도 저들을 향한 주님의 긍휼한 마음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