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주 차: 회칠한 무덤과 예루살렘을 향한 눈물 (마 23:27-39)
일곱 가지 ‘화’ 선포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예수님의 경고는 더욱 날카롭고 본질적인 곳을 향합니다. 여섯 번째 화는 위선의 극치를 보여주는 ‘회칠한 무덤’의 비유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7). 당시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무덤에 흰 회를 칠하여, 사람들이 실수로 무덤에 접촉하여 부정해지는 것을 막았습니다.¹ 그래서 겉모습은 깨끗하고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는 죽음과 부패가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경건이 바로 이와 같다고 지적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8).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경건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내면은 생명력을 잃은 죽은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섬뜩한 경고를 줍니다. 나의 신앙은 생명력 있는 향기를 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죽음의 냄새를 감추고 있는 아름다운 무덤에 불과합니까?
마지막 일곱 번째 화는 그들의 위선이 얼마나 자기기만적인지를 폭로합니다. 그들은 죽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꾸미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마 23:30). 그들은 자신들이 과거의 조상들보다 더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말이 오히려 그들이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 (마 23:31)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은 선지자는 존경하는 척하면서, 지금 자기들 눈앞에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선지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죄를 똑같이, 아니 그보다 더 악하게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임할 무서운 심판을 예언하시며, 아벨의 피로부터 모든 선지자의 피 흘린 죄가 그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토록 무섭고 준엄한 ‘화’의 선포가 끝난 직후, 우리는 예수님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진노가 아닌, 슬픔과 눈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 하는 그 도시, 예루살렘을 향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마 23:37).
이것은 복음서 전체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일곱 가지 ‘화’ 선포의 동기가 미움이나 저주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 모든 진노의 말씀 이면에는, 어미 닭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어 보호하려는 것과 같은 애끓는 사랑과 긍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품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원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집(성전)은 버려져 황폐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마 23:39)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때까지 주님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회칠한 무덤과 같은 죽은 신앙의 실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품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죽은 선지자는 존경하지만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은 거역하는 위선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보다, 나를 날개 아래 모으기 원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초청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번 한 주, 우리의 모든 위선과 거짓을 회개하고,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왕의 눈물과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각주:
¹ 민수기 19장 16절에 따르면, 시체나 무덤에 닿는 자는 칠일 동안 부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의 부주의한 접촉을 막기 위해 무덤을 회로 칠해 눈에 잘 띄게 만드는 것은 당시의 종교적인 관습이었다.
‘회칠한 무덤’의 비유는 나에게 어떤 찔림을 줍니까? 나의 신앙생활에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의 상태가 가장 다른 부분은 어디입니까?
나는 과거의 위대한 신앙 인물들은 존경하면서, 현재 내 곁에서 진리를 말해주는 사람(목회자, 리더, 지체)의 권면은 쉽게 무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라는 표현을 묵상해 봅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애틋하고 보호하는 사랑임을 얼마나 느끼고 있습니까?
내면과 외면 일치시키기: 이번 주, 사람들이 나를 좋게 평가하는 모습(친절, 경건 등)과 내가 혼자 있을 때의 모습(생각, 언어, 인터넷 사용 등)이 일치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즉시 회개하는 훈련을 하겠습니다.
살아있는 말씀에 순종하기: 이번 주 주일 강단 말씀을 포함하여, 최근 나에게 주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중 순종하지 않고 있던 것 하나를 정해 구체적으로 순종하겠습니다.
주님의 품 안에 거하기: 매일 분주한 일과를 시작하기 전, 단 3분이라도 눈을 감고 어미 닭의 날개 아래 안전하게 거하는 병아리처럼, 나를 품으시는 주님의 사랑과 보호하심 안에 거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