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선 전략으로, 퇴근 후엔 진심으로.
첫 출근 날 아침,
나는 넥타이 하나 고르는 데만 10분을 썼다.
회색 정장에 갓 다린 셔츠,
그리고 목을 조이는 그 천 하나가
이 회사가 어떤 분위기인지 단번에 알려줬다.
일본계 회사.
기술영업.
나는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월급 말고는, 경력으로 인정받는 건 없었다.
조직 안에선 그저 ‘중고 신입’이었고,
선배들의 눈빛도 그에 맞춰 있었다.
겉으론 친절했지만,
속으론 ‘얘가 얼마나 하나 보자’는 눈치가 느껴졌다.
말보다 공기가 먼저 말을 걸었다.
면접도 기억난다.
“왜 이직하셨나요?”
나는 준비한 대답을 꺼냈다.
“지금보다 더 넓은 업무를 경험하고 싶어서요.”
“10년 뒤,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이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대답은 솔직하다기보단 전략에 가까웠다.
그들이 듣고 싶어할 말.
나는 그걸 계산해서 던졌다.
그런데 들어오고 나니,
그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회사 안에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다.
나는 생존 방식을 나름대로 설계했다.
딱히 복잡하진 않았다.
내 업무는 빠르게, 정확하게 처리하고
시간이 남으면 선배들의 일을 살폈다.
정리가 안 된 문서가 있으면 내가 먼저 정리했고,
필요한 자료는 말 꺼내기 전에 준비해뒀다.
영업 문의가 들어오면 담당자별로 정리해서 전달하고,
전시회 업체 리스트도 정리해서 공유했다.
누가 시킨 것도,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일은 생각보다 금방 티가 났다.
“이거 누가 정리한 거야?”
그런 질문이 나올 때면
나는 그냥 웃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알아차린다.
지금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예전보다 수평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쓴다.
복장도 그렇고, 말투나 회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나도 변했다.
조금씩, 내 자리를 만들고 있다.
진급은 아직 멀다.
그렇다고 당장 바뀔 것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 이름을 먼저 부르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내가 하는 일을 먼저 물어오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이 회사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배운 건 영업이 아니었다.
살아남는 방법.
말보다 행동이 더 크다는 걸,
움직이면 누군가는 꼭 본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조금씩 배웠다.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내일도 출근이고,
일은 여전히 많고,
실수는 여전히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도,
퇴근 후에만 꺼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수트를 입고선 못 꺼냈던 말들.
그저 삼키고 지나쳤던 하루의 감정들.
이제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씩 꺼내보려 한다.
여기,
오프더수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