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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Feb 18. 2019

외로움과 아빠

'살아있는 이런 대화, 그동안 원했던 거예요.'

아빠는 70대 노인이다. 요즘 그걸 확인하는 일이 잦다.


오랜만에 운동 가려고 옷을 챙겨 입는 중에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나에게 전화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컴퓨터에 문제가 있을 때. 평생 컴퓨터를 만져 볼 기회가 없었던 아버지는 60대가 되어서야 한글, 인터넷 검색, 이메일과 같은 간단한 작업을 배우셨다. 몇 년 전에야 스마트 폰을 구입한 아빠는 좋아하는 음악을 다운로드하고 유튜브를 통해 강의 같은 것을 즐겨 보곤 한다. 가족뿐만 아니라 수다 목적의 전화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 큰 딸이나 일이 가장 우선인 엄마를 대신한 아빠의 베프(베스트 프렌드)인 셈이다.


그중 아빠가 즐겨하는 게임은 고스톱과 같은 고차원(?)의 것이 아니다. '한글타자연습'이다. 오늘은 그게 말썽이었나 보다. 창이 여러 개 열려있고 마우스를 아무리 갖다 대고 클릭해도 창이 닫히지 않는단다. 마우스 선이 제대로 꼽혀있는지 보라고 했더니 무선이란다. 럼 전원을 껐다 다시 켜보자 했더니 잘 못 알아들으셨는지 바탕화면에 모든 아이콘의 이름을 댄다. 아빠 특유의 웅얼대는 발음과 안으로 기어 들어가는 소리에 무슨 말을 하는지 한참 듣고서야 겨우 건진 단어 한 개로 유추해가며 대답을 했다. "아빠, 내 말은 그 말이 아니고......"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전원 버튼을 찾으셨다. 윈도 10으로 바꾼 지 얼마 안 되어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다시 시작'을 누르니 어김없이 컴퓨터는 잘 돌아간다.


설명하느라 운동 시작 시간이 10분 이상 지났다. 가는 시간까지 고려, 중간에 들어가자니 애매한 시간이라 포기했다. 그럼에도 차라리 이런 대화가 좋다. 아빠와의 대화다운 대화가 오랜만이라 포기한 운동이 아깝지 않다.


아빠는 일상을 얘기하는 법이 없다. 이번 설에도 "현주야, 빚지지 마라"부터 시작해 경제가 어떻고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우린 다 끝장이라는 등, 중앙일보와 일부 케이블이 말하는 그들의 의견을 앵무새처럼 전한다. "아이고, 내가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데 빚이 없네"(실은 빚 투성이다.) 아빠와의 대화를 끊고 싶어 농담조로 얘기해도 "아이들 공부 잘 시켜야 한다"라든가 "멸치엔 칼슘이 많으니 아이들에게 꼭 먹여야 한다"라는 등 누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뻔한 말을 반복하신다. 평생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고 친밀함을 전혀 느끼고 살아 본 적 없는 이의 대화법이다. 연민과 짜증을 동시에 느끼며 아빠와의 보이지 않는 담을 기분에 따라 쌓았다, 부쉈다 했다.


컴퓨터가 매개가 되어 통화를 몇 번 해보니, 이제야 살아있는 아빠를 만난 기분이다. 오늘은 칭찬도 받았다. 컴퓨터 대리점을 하시는 이모부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이모부는 이런 질문을 하면 대충 말씀하신단다. 사향 사업으로 돌아선 지 오래인 대리점에서 실행창이 닫히지 않아 쩔쩔매며 발음도 잘 안 되는 소리로 두서없이 말하는 아빠를 달가워하지 않는 건 세상 호인인 이모부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빠도 그걸 알아서 딸이 바쁜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했는데 쉽게 해결해주니 너무 고맙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껐다 다시 켜면 된다는 걸 알려줬을 뿐인데 '컴퓨터 박사'란다. 말이 안 되는 줄 알지만 이 뿌듯함은 뭐지?


나이가 드시니 모든 게 무뎌지고 판단도 흐릿해진다. 그만큼 외로움도 더 크시겠지. 그래서인지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큼은 세심해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고맙다 말은 생략하셨고, 난 생략하는지도 몰랐고, 고맙다는 말을 받을 만한 행동도 안 했다.


아빠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뜬 구름이 아닌 손에 잡히는 무엇에 대해 얘기하고, 도움이 오가는 상황을 만들어 준 컴퓨터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하나. 컴퓨터가 생명체가 아닌 게 좀 아쉽다. 별 일 아니지만 아빠가 표현한 마음 소중해서 이런 흐뭇함을 어딘가엔 남겨야 할 것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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