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겨레출판, 2009~2018)
손바닥에 올리기 좋은 사이즈나 무게만큼 가벼운 소설집이라 생각했다. 책을 덮고 나서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힘껏 위아래로 쑥쑥 문지르다 깍지를 끼고 기도하는 자세로 의지하고 있는 나를 봤다.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다. 손바닥을 비비거나 맞잡을 때 전해지는 뜨거운 온도 같은 책이다.
10년간 쌓인 한겨레출판의 『손바닥 문학상 수상작품집』 (2009~2018)의 주인공들은 이렇다. 비정규직 노동자, 고시촌 공무원 준비생, 재개발 지역 슈퍼 사장,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사회복지사와 뇌병변 환자, 노래방 사장님, 생동성 실험 피험자 아르바이트 청년, 은퇴 후 노부모를 모시는 치킨 배달부, 요양원에 들어간 말기 암환자, 출판사에 재취업한 워킹맘, 사내커플 생산직 여직원과 사무직 남직원, 그리고 현장실습생 이민호 군을 소재로 한 이야기까지. 우리 주위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리 날다」 (신수원, 2009년 대상)는 해고된 하청업체 일용직 직원의 철탑 위 아찔한 농성현장을 전한다. 그녀는 철탑 위 난간에서 도시락을 먹고 물티슈로 몸을 닦고 잠을 잔다. 오리 변기에 앉아 똥을 싼다. 고공 농성을 자원했을 때 의식주의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똥을 누는 순간의 불안과 수치심까진 예상하진 못했다.
“난간 테두리를 따라 현수막을 둘러 가리개로 삼았지만 엉덩이를 까고 내 속에서 무언가가 쑥 빠지게 하기 위해 힘을 주고 기다리는 작업은 곤욕스러웠다. 변기에 앉아 있는 와중에 강한 바람이라도 불면 흔들리는 탑의 진동을 느끼며 이미 시작된 배변을 순조롭게 마무리하지 못해 쩔쩔맸다.”(p.20)
그렇게 모인 똥은 어찌 되었을까. 뉴스에서 간혹 본 깨진 달걀을 맞는 국회의원의 슈트를 보는 것만큼 통쾌하다. 똥의 거름 외의 쓰임새에 대해 알게 되지만 세상이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헛헛해진다. 10년 뒤의 파업은 어떨까.
「파지」 (최준영, 2017년 대상)은 사내 커플인 생산직원 예서와 사무직원 진철의 이야기다. 회사는 생산직 외주 파견을 위해 파주에서 오산 공장으로 발령을 냈고 이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사무직인 진철까지 불통이 튄다. 사내연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누구도 진철과 대화하지 않는다. 「오리 날다」에서 철탑 위에 올라가 스스로 고립을 자처해 싸우던 모습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이다. 회사는 그들의 파업을 막기 위해 더 교묘해진다. 생산직원들을 사무직으로 발령 내어 동지들을 분열시킨다. 외주 파견을 막기 위한 파업인지 외로움과의 싸움인지 모호해진다. 하지만 이 사내커플의 마지막 모습은 건조하고 각박한 사회에서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 책은 한겨레출판답다. 소설과 뉴스를 넘나 든다. 하지만 뉴스나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사연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제 손바닥만큼의 세상만 알면서 다 알고 있다고 믿는 이를 위한 책이다. 늘 지나치기 일쑤인 손바닥 밖의 세상을 들여다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손바닥 문학상’에 수록된 작품으로부터 얻은 질문에 답하다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이해받지 못할 사람의 마음은 없다고 말한다. 내 경험치를 넘어선 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으레 그러하다고 치부하거나 단면만으로 판단했던 자신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다. 따라서 손바닥 밖의 세상을 내 손바닥 위에 놓게 만든다.
문학을 통해 우린 사회의 구석진 곳을 경험한다. 2018년의 대상은 고등학생인 이민호 군의 이야기를 토대로 지어진 장임혜경의 「비니」다. 고등학생이 산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기계에 깔려 죽은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8년부터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은 폐지되었다.”(p.340) 이 책의 주석으로 달린 글을 통해 그런 제도가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 손바닥만큼의 세상만 아는 내가 가장 부끄러워진 구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