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어서, 가까워진 우리
불쑥불쑥 숨이 턱턱 막힌다. 내 눈앞에 내 새끼들이 없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미국으로 훌쩍 떠나보낸지,3년째 접어든다. 너무 보고 싶어 가슴이 아린다는 심정, 시시 때때 보이지 않아도 선명히 보이는 아이들, 맞아! 너희들은 이토록 중요한 존재였지, 엄마에게.
이리 서둘러 품에서 놓을 줄 알았더라면, 더 귀하게 더 애틋하게 사랑해야 할 것을, 그때는 오늘을 몰랐다.
이른 아침, 인교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더 자고 싶다는 간절함이 몰려온다. 그냥 지금 받지 말고, 이따가 다시 할까? 잠시 짧은순간 깊은 선택의 고민에 빠지지만, 나는 엄마다!
분명, 하루를 마치고, 해가 지는 늦은 저녁쯤, 아이에게 엄마가 그립겠다 싶다. 어쩌면 오늘 속상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엄마의 호들갑 칭찬이 필요하다거나, 엄마의 “ 그래그래, 그랬구나!” 끄덕끄덕 맞장구가 필요할 터이다. 항상 아이 곁에서, 지난 17년간 엄마가 엄마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엄마가 지금은 저 멀리 한국에 있으니, 우리인교, 좀 허전하겠다 싶으니, 얼른 영상통화 응답을 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그리고 한국에사는 엄마가 필요한 미국에 사는 아들에게, 엄마가필요한 타이밍은 더 절실하다.나는 더 열심을 내야하는 한국에 사는 엄마다.
“아들! 내 새끼! 우리인교! 보고 싶은 엄마아들”,
첫 부르는 호칭이 구구절절 사랑사랑이다. 너에겐 엄마있다 도장이라도 찍어주듯 말이다.
“마미!”
인교의 목소리, 아이의 얼굴이 내 눈앞에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미국에 있는 아이의 세세한 표정과 목소리를 이리도 선명히 마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의 수다가 이어진다. 엄마의 맞장구와, 호들갑스러운 칭찬과 인정과 사랑표현이 다양할수록, 구구절절 세세한 일상을 들려준다.
아마도, 한국에서 한집에 살았더라면 이토록 다정하고, 이토록 세세한 수다는 확신컨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영상으로 아이에게 첫 번째 샌드위치를 홀로 싸는 법을 가르쳤다.
“ 인교야! 빵을 토스트를 해. 그리고 마요를 바르고, 햄을 얹어, 인교는 아삭한 식감을 좋아하니까, 로메인 한 장 정도 올리면 좋은데, 냉장고에 로메인 있니?
“ 엄마! 없는데, 마요도 없어? 어떡하지?
“ 그럼 머스터드를 바르자, 카메라 들고 냉장고 열어봐! 엄마가 찾아줄게!
샌드위치 하나 만드는데, 참 번거롭고 설명이 길다. 가슴이 또 아려온다.영상 속에 뛰어들어가 후다닥 해주고 싶다. 내 새끼, 아직은 혼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야 하는 모습과 상황이, 안쓰럽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는 신이 났다.
“ 엄마! 이렇게 해? 맞아? 먹어볼까?
영상 속 샌드위치는 참 볼품없다. 햄도 서너 장 더 올리고, 치즈도 넣는 각도가 좀 틀린데, 그냥 인정해 주기로 했다.
“ 어머머! 잘하다! 잘했다. 우리인교! 먹어봐! 어서, 주스라도 가져와서 먹어. 목멘다. 아이고 이쁜 내 새끼, 다 컸네, 샌드위치도 혼자 만들어 먹고! 장하다!
“엄마! 대박 맛있어! 와우! 으흠흠~. 하나 더 해 먹을까?
순식간에 샌드위치 두 개를 먹어치우고, 기분이 신나, 영상 앞에 아이스크림 디저트까지 드신다.
이쁘다. 고맙다. 그렇게 오늘 미국에 사는 아들은, 한국에 사는 엄마에게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배워서, 맛있게 드셨다. 우리 참 친하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스스로 잘 해내는 모습이 본인도 기특하고, 더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은가 보다! “
“ 엄마! 나 설거지도 할 수 있다!”
엉덩이를 흔들고, 춤을 추며, 접시 한 개 설거지를 아주 대단히 훌륭하게 해낸다.
한국에 사는 엄마가, 미국에 사는 아들에게 고백한다. “정말 멋지다! 내 아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