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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Feb 01. 2019

2. 만복이 이야기


동네에는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들이 많이 돌아다니는데, 한 녀석이 엄마에게 정을 붙였는지 조금씩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만복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길고양이라 가둬 놓을 순 없고, 비 피할 때 와서 자라고 만들어 놓은 조그만 집에 와 종종 잠을 자고 가곤 했다. 한 번은 뒷산 어디서 왔는지 너구리 한 마리가 만복이 집을 차지하고 있길래 놀란 아빠가 내쫓았는데, 그 이후로 만복이가 그 집에 들어가길 싫어해서 새로운 것으로 바꿔준 적도 있었다.

만복이는 매우 똑똑하고 의리 있는 고양이였다. 엄마가 밭일을 하러 나가면 종종종 좇아오고, 만복아, 하고 부르면 멀리서 냥냥 거리며 달려왔다. 동네 그 누구에게도 곁을 안 주고 오직 엄마에게만 정을 줬다. 늦은 저녁 엄마가 혼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부엌과 연결된 베란다 창문 앞에 서서 눈을 반짝이며 엄마를 지켰다.

만복이는 다른 길고양이 패거리들과 별로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사이에서 파워가 별로 없는지, 늘 싸움에서 져서 돌아오곤 했다.
우리야 생업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어서 상관 없었지만 농사 짓는 분들에게 고양이들은 아주 성가시고 미운 존재이다. 잡초를 막기 위해 덮어놓은 비닐들을 다 헤집어 놓고,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뒤져 여기저기 흩뿌려 놓는다. 한창 고양이들이 말썽일 때, 누군가가 놓은 쥐약을 먹고 동네 고양이들 몇 몇이 죽었다. 만복이가 며칠을 집에 안 온 적이 있는데 엄마는 울면서, 아무래도 만복이가 죽은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고양이랑 싸워서 크게 다쳤거나, 아님 뭘 잘못 먹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만복이는 3~4일만에 멀쩡히 집에 돌아왔다.

길고양이를 너무 예뻐하면 동네 사람들과 척을 질 수도 있기에 맘 편히 예뻐하지도 못 하고, 엄마는 몰래몰래 만복이를 지키느라 바빴다. 배가 고파 아무거나 집어먹지 않게 밥도 많이많이 먹이고, 만복이를 앉혀놓고 알아듣지도 못 할 내용으로 주입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마, 배고프면 여기로 와.

몇 달이 지났을까. 따뜻했던 4월, 뭔가를 잘못 먹은 만복이는 우리 집에 어떻게 기어와 헐떡이고 있었고,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하늘나라로 갔다. 엄마는 만복이가 가장 좋아했던 닭장 앞 공터에 만복이를 묻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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