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에세이를 시작하며
김중혁의 영화 에세이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에서 소개하는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학교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온 김중혁의 영화 에세이를 빌려왔다. 내 일상의 유일한 루틴인 반신욕을 하면서 서너개의 챕터를 가볍게 읽어낼수 있다. 자유롭게 툭툭 떠오르는 영화 두세개를 특별하지 않은 주제로 엮어내는 구성이라 편안하다. 나의 세대는 들뢰즈와 라캉을 들먹이지 않고는 영화 비평을 말할수 없었던 시간을 지나오지 않았던가. 흠....가독성이 아주 좋아.
가끔 오랜 시간 동안 만남을 지속해온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정치적 정체성에 대해 모를때가 있다. 직장 얘기, 집안 얘기, 텔레비젼 프로그램 얘기. 소소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무는 사람들. 생각해보면 이런 아폴리티컬한 모습은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세련된 태도일수도 있다. 사람들은 지식이 됐든, 부동산이 됐든, 정치적 이슈가 됐든 뭐든간에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넌 너무 투명해서 좋아'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종종 듣는 얘기다. 사실 난 투명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인간이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절대적으로 투명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투명하다는 건 일종의 내가 선택한 소통의 방식일뿐 진실의 여부하고는 하등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긴 하다. 시시각각의 사안과 감정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투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투명 라벨지정도는 된다고나 할까....여하튼 나는 나의 투명함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하곤 한다.
'그래. 난 너무 투명해서 아마 혁명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끌려가 단두대에서 처형될지도 몰라'
그런 내가 아이의 입시를 맞닥뜨렸다.
잔인하도록 불안하거나 두렵거나 화가나거나 무기력하거나..온갖 안좋은 감정의 총집합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초, 중등 학부모들이 제일 많이 하는 거짓말중에 하나가
'나는 아이 교육에 큰 관심이 없어요. 그저 아이의 능력대로 아이가 원하는대로 시킬려고 해요'일 것이다.
저마다가 처한 물적, 문화적 토대가 다를지언정, 그 다름안에서 다들 자녀 교육에 진심을 다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이 거짓말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일견 사실로 판명되기도 한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 일부의 혹은 많은 학부모들은 본인과 아이와 세상과 타협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리곤 한다. '아~공부는 지가하는거지~'
그렇다. 교육에는 관심이 많지만 매우 많이 리버럴한. 그러니까 본인 스스로 성실하거나 엄격한 인간도 아니면서, 귀찮은것도 싫어해서 아이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일조차 고난도의 스트레스로 여기는 인간이면서.아이러니하게도 아이는 좋은 대학에 진학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엄마가 고3 아이의 입시를 함께하면서 미친년 널뛰듯이, 어선 그물에 걸린 멸치떼처럼 날띠는 이 감정들을 도저히 추스를 수 없는 것이다.
이 감정을 추스리지 못해 가족과 직장과 사회의 안녕에 해를 끼칠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