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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i Mar 01. 2021

누사두아 해변에서 발리문 웨딩을

발리니스( Baliness) 식 결혼식을 올리다.

아침이 밝았다.


따사로운 햇빛이 누사두아 해변의 모래에 반사되어 방안까지 드리워 잠에 깼다.


[이전 이야기]  두 번의 결혼식과 허니문을 일주일 만에 모두 치르다.


오늘은 나의 결혼식날이다.


언젠가 20대 초반에 나는 어떤 결혼식을 올릴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막상 결혼할 당사자는 없는데도 어떤 결혼식을 열지 상상해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만약 언젠가 내가 결혼식을 한다면 해변가에서 열리는 로맨틱한 비치웨딩일 거야. '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 그저 '꿈' 인채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런 꿈을 꾸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때도 언젠가 우리가 발리에서 비치웨딩을 올릴 것이라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 흘러가다 보니 그 끝이 내가 꿈꿔왔던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


결혼식은 오후 4시 30분부터 발리식(Baliness)으로 열릴 예정이다. 사진 촬영과 헤어 메이크업 팀이 웨딩플래너 Risma와 함께 오후 1시에 방문하기로 되어있어 그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남편은 잠깐 바닷가에 다녀온다고 하였다.

얼마 후 창문을 내다보니 멀리 패들보드를 젓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참, 한가로운 사람이네.'


수평선을 향해 점점 작아지는 그. 점점 더 멀어지는 그를 보자 불안하고 싫다고 느끼는 내가 있었다.


'빨리 돌아오라고!'


나의 마음속 외침을 들었는지 얼마 안돼 방향을 돌려 방으로 돌아왔다.



***


똑똑똑.

한시가 되자 노크 소리가 들리며 Risma가 자신의 팀을 데리고 방에 도착했다.


"잘 잤어요? "

어김없이 활짝 웃으며 Risma가 인사한다.


이어서 그녀가 자기의 팀을 한 명씩 소개했다.


"이쪽의 Susan과 그녀의 어시스턴트가 헤어랑 메이크업을 담당해줄 거예요. 그리고 이쪽 Freddy는 사진을 Tugunk가 영상을 찍어줄 거예요. "



모두들 활짝 웃으며 인사한다. 오늘 이 역사적 중요한 순간에 멀리 있는 가족들 보다도 의지해야할이들이다.


능숙한 Risma가 지시한 대로 남편의 치장이 먼저 시작되었다. 비치웨딩에 딱딱한 정장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흰색 리넨 셔츠와 밝은 아이보리 색 바지를 준비해왔다. 평소엔 스포티한 복장을 하는 남편은 처음에는 이 모든 드레스업 과정들을 어색해했지만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멋지게 완성되자 나름 마음에 들은 듯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거울을 비춰보았다.


남편의 치장이 끝나자 나의 순서가 되었다.

현지에서 웨딩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Susan은 숙련된 솜씨로 나를 발리의 신부로 변신시켜 주었다.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을 차례가 오자 남편은 먼저 밖으로 나갔다. 신부의 웨딩드레스 모습을 미리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방을 나간 남편과는 이제 '퍼스트룩' 장소에서 대면할 것이다.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으러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낑낑대며 들고 온 나의 드레스가 드레스룸 한편에 가지런히 걸려 있다.


스드메가 정형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해외 결혼식에 들고 갈 드레스 찾기란 너무나 어려웠기에 해외사이트에서 드레스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예산에 맞는 한에서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고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다행히 몇 달간 눈요기하던 드레스가 대폭 할인에 들어갔을 때 광속의 마우스 클릭으로 구매에 성공했는데 그때의 쟁취 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등이 깊숙이 파이고 허리와 엉덩이가 살짝 조여지다 끝자락에서 테일이 길게 빠지는 Sheath 스타일의 내가 고른 드레스는 조금은 과감한 한국의 일반 예식장 결혼식에서는 아마 조금 입기 어려운 디자인일 테다. 하지만 나의 발리 비치웨딩에는 딱이었다. 신부의 과감한 노출을 가지고 뭐라 할 부모님도, 시댁 식구들도, 하객들도 없었다.


직구를 통해 드레스를 내 품에 받아볼 때까지 약 한 달 정도 걸렸는데 그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었다. 심지어 기다림 끝에 도착한 드레스는 어깨 끈이 계속 줄줄 흘러내려와 리폼을 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손안에 받아본 나의 웨딩드레스. 발리로 출발하기 전까지 난 남편이 집에 없을 때를 노려 입었다 말았다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지난 몇 달간 나와 함께 행복한 비밀의 시간을 함께한 그런 나의 웨딩드레스가 지금 여기 발리의 방안 드레스룸에 걸려있다.


'걱정 마, 드레스야. 이제 리허설은 끝났어! 곧 쇼타임이야.  '


조심조심 susan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를 입었다.


'와....'


거울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의 모습이 비쳤다.

타지까지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낯선 이들과 본인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니! 15살 때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 유학생활을 전전하며 독립적인 자아를 개척하는데 일생을 바친 내가 결국 참으로 나다운 결혼식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거울에 마주한 자신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


나의 독사진 촬영도 무사히 마치고  '퍼스트룩'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처음 대면하는 순간)을 위해 남편이 미리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나머지 스텝들과 향했다.


긴 드레스를 입고 걷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몇 달 전 발목을 크게 삐었는데 아직 높은 굽의 구두를 다시 신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는지 찌릿찌릿 통증이 왔다. 쩔뚝거리며 힘겹게 걸어가는 도중 어제 비치에서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미국인 중년 여성을 만났다.


"오~~~~ 뷰티풀! 오늘 당신의 결혼식이었군요.

안 그래도 지금 비치에서 너무 예쁜 웨딩 장식을 보고

누가 결혼식을 하는지 궁금했었어요! 이따 보러 갈게요."  


발리에서는 모두가 친절하고 사랑이 넘친다.

신들의 섬 발리에서는 서로 행복의 기운을 주고받는데 익숙하다.


땀이 송송 나기 시작할 즈음, 멀리서 반가운 남편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 더운 쨍쨍한 태양볕 밑에서 땀범벅이 되어 리넨 셔츠가 흠뻑 젖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넓은 어깨를 보니 울컥했다. 잠시 못 본 게 고작 한 시간 정도인데 그 시간 동안 나는 그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아름답지만 낯설기도 한 이곳 발리에서 익숙한 남편의 뒷모습을 보자 너무나 반가웠다.


Risma가 리허설에서 알려준 대로, 남편의 뒤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오른쪽 어깨를 톡톡하고 가볍게 쳤다. 남편이 뒤로 돌아보고 언제나와 같지만 오늘은 어딘가 더 특별한 함박웃음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자 웃음을 터져 나와 버렸다.


'우리가 진짜 여기까지 왔네!'


말은 안 했지만 우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다.

늘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남편은 끊임없이"예뻐~예뻐~"를 남발해 주었다.


남편을 꼭 껴안자 촉촉이 땀에 젖은 셔츠가 손끝에 느껴졌다. 더운 것이라면 질색하는 남편이라 보통 때 같으면 짜증을 슬슬 내기 시작했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든 잘 참고 있을 그를 보니 애틋하고 대견했다.




퍼스트룩 장소에서 아름다운 사진들을 몇 컷 남긴 후 결혼식이 있을 해변으로 함께 향했다.

우린 손을 꼭 잡고 해변을 향해 걸어갔다.

6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겪었던 지난 일들을 하나 둘 생각났다.


'낯선 곳에 둘러 쌓여있어도

둘만은 영원하면 돼.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그렇게 우린 곧 해변가에 도착하였다.



Gambelan (*감블란 - 발리 전통악기) 의 동동거리는 아름다운 소리가 해변가로 밀려드는 파도소리에 어우러져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고 있었다. 속사포 같이 얇은 재질의 캐노피의 핑크색 천이 하늘거리는데 반투명 재질이라 반대편의 바다와 하늘을 품은 듯했다.


Risma와 한국에서 웨딩 테마를 정할 때, 흰색과 핑크색의 꽃, 그리고 녹색 잎에 빈티지 골드가 어우러진 ‘로맨틱 보헤미안’ 스타일로 완성해달라고 전했었는데 그 느낌이 한치의 오차 없이 내가 원하는 데로 만들어져 있었다.


사진에는 우리 밖에 없어 보이지만 사실 해변에는 리조트의 숙박객, 직원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몇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도 몇 보였다. 우리의 버틀러인 착한 Putu, 미국인 중년 여성이 우릴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우리의 발리니스식 예식이 시작되었다.

발리전통 의복을 입은 주례사의 주도로 식이 이어져 나갔다. 서로에게 서약을 읽어주고 서로의 네 번째 약지에 반지를 끼워준다. 두 손을 꼭 잡고 서로의 눈을 끊임없이 쳐다보며 말을 한다. 파도의 바닷소리도, 주례사의 주례도, 주변의 환호도 들리지 않는다.

온전히 우리만의 세상 속에 우린 단둘이었다.


예식의 클라이맥스인 키스타임이 오고

그 어느 때보다 우린 특별한 감흥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입을 맞추었다.

주변의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그제야 들려오기 시작했다. 몇 개월간의 길고 긴 여정이 드디어 끝나고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이 도래했음에 벅찼다.


Risma가 뿌려준 꽃잎이 흩날려 떨어지기 시작한다.

꼭 잡은 손을 올려 함께 해준 모두에게 인사하며 퇴장하였다.


***

타지에서 열리는 하객 없는 단 둘만의 결혼식은 낯설기는 하겠지만 외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청첩장을 받고 온 하객들은 없었지만, 발리의 아름다운 바다와 풍경이, 이름도 모르지만 축하를 전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텔의 버틀러와 웨딩 스테프들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해 주고 있었다.


둘에게만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었다. 온전한 나의 행복한 시간을 처음으로 욕심내어 본 이기적인 사치였다. 결혼식날만큼은 그래 보고 싶었다.



~ 발리 결혼식 보너스 영상

https://youtu.be/sPABRrUNo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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