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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i Sep 14. 2021

대단한 사람

문방구 주인이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 시절 난 '샌디라이온'이라는 미국 수입 스티커에 미치도록 빠져있었다.


피자, 팝콘, 테디베어 같은 미국을 상징하는 매우 이국적인 쨍하고 화려한 샌디라이온 스티커를 볼 때마다 미국에 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두근거렸다. 샌디라이온 스티커는 아무데서나 살 수 없었다. 강남의 수입상가 같은 데서 어렵게 구할 수 있는 희귀템 같은 거였다.


날마다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중요한 날이 오면 엄마를 졸라야 했다. 뭔가 스스로가 칭찬받을만한 일을 했을 때는 어김없이 엄마를 졸라 신상 스티커를 손에 넣었다. 형형색색의 샌디라이온 스티커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만 해도 나에겐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방구 주인이 되면 원하는 만큼 샌디라이온 스티커를 가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부터 어른들이 꿈이 뭐냐고 물을 때마다


‘문방구 주인이 되는 거예요.’


라고 난 답하기 시작했다.  


나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하는 것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인생보다 세상엔 더 가치 있는 일이 많다고 세상은 나에게 이야기했다. 병을 고치는 의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거나, 큰 회사에 들어가 세상을 바꾸는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들어왔도, 난 그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문방구 주인의 꿈은 자연스럽게 잊혀갔다.


나의 청소년기부터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군가에게 다그침을 받고 자기 자신에게도 스스로 다그치며 살았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냥 가야 하는 길. 무작정 그 길로 향했다.


우리는 대학에 가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거나, 승진을 한다.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하거나 기준치에 가까워질 때면 나 자신이 '대단한 사람'에 가까워진 것 같아 으쓱하기도 한다. ‘대단한 사람’과는 전혀 먼 초라한 자신을 마주할 때면 이내 풀이 죽지만 말이다.


운 좋게 좋은 직장에서 멋진 타이틀을 갖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영원하지 않다. 어느 날 퇴사를 하면 더 이상 그 타이틀도 쓸데없는 게 되어버린다. 어제의 나는 더 이상 오늘의 내가 아니다.


의사나, 변호사나 선생님처럼 전문직을 가진 세상이 말하는 ‘대단한 사람들’은 과연 불안 없이 절대 불멸의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우리 외할아버지는 나름 성공한 의사였다. 돌아가시던 마지막 해에 파킨슨병이 생기는 바람에 일을 그만두어야 했지만 87세에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존경받는 의사로 한평생을 살았다. 재산도 넉넉히 축척하였지만 사치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 자신에게 돈 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냥 원하는 소고기를 매일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부를 사치이자 자신의 행복이라 여기고 마음껏 누리고 갔다. 할아버지는 집에 오면 늘 흰색 난닝구로 갈아입었기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흰색 난닝구 모습뿐이다. 나는 그런 괴짜스러운 할아버지가 한없이 자랑 스러웠다. 인생의 중요한것이 뭔지 알았고 그대로 따랐다. 남의 눈은 일도 신경쓰지 않았다.  


몇년 전 할아버지는 파킨슨병에 걸려 어느 날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쓸쓸한 집에서 홀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왕년에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았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 갈 뿐이다. 인간의 인생은 그래서 참으로 허무하기도 하다. 물론, 피카소나 비틀스처럼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몇 세기를 전설로 길이길이 기억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일반적인 '대단한 사람'들의 삶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대단한 사람’의 인생은 그래서 크게 다를 게 없다. 우린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 똑같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사랑을 한다. 좀 더 좋은 걸 먹고, 좀 더 좋은걸 갖기 위해, 좀 더 편안한 삶을 위해 우리는 대단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지만 스스로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느새 부족함을 곧 느끼고,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샌디라이온 스티커에 둘러싸여 사는 게 행복해 문방구 주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을까. 그것보단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말하는 세상에게 36년간 속은 느낌이다.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회적 성공이나 멋진 직장의 타이틀로써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단한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대단한 사람’은 꿈이 아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건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 목적이 되어버리면 결국 공허해질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더라도 스스로가 행복하지 못하고 불안과 초조속에서 늘 살아야 한다면 난 대단한 사람이 되길 포기하겠다.


2021년 9월의 오늘의 나에게 멋진 타이틀은 없다. 오늘의 나는 온전히 이 사회에서 말하는 ‘대단한 사람' 과는 분명 거리가 멀지만, 누군가의 아내로서, 누군가의 딸로서, 누군가의 언니로서, 이미 '대단한 사람'이기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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