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해외입양인
존댓말은 어렵다.
한국어가 모국어라면 어렵다는 생각 없이 대부분 입에 베인대로 쓸 것이다. 남편이 존댓말을 쓰다 헤매는 걸 자주 보게 되고 그걸 바로 잡아줄 때마다 '아, 진짜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외워야 되라고 말해줄 때가 대부분이지만, 모든 걸 다 외우기엔 사실 양도 너무 많다.
일본에 가서 일본어를 배울 때도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존댓말이었다.
일본어는 존경어, 겸양어, 정중어로 존댓말을 크게 세 개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처음 배울 때 너무너무 헷갈리고 어려워서 아예 말하기를 포기하고 나 몰라라 외국인이니까 이해해주겠지 하며 은근슬쩍 지나갔던 적도 꽤 많다.
다른 동양의 언어는 잘 모르지만, 한국어와 일본어를 두고 보았을 때 재밌는 공통점은 나를 낮추는 '겸양어'의 존댓말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국어에서는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가 그 예를 정확히 보여주는데, '당신이 나보다 높은 사람이다'라는 암묵적인 소통을 포함하고 있다. 일본어에도 단순히 '주다'인 '上げる' 대신 '差し上げる’(드리다)라는 겸양어가 존재한다. 비즈니스에서 쓰는 '폐사(弊社)' 도 같은 예이다.
단순히 상대방을 높이는 '경칭어'는 서구권에서도 존재한다. 'Sir', 'Your Majesty', 'Madame' 같은 말들이다. 존댓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의나 에티켓을 차릴 때 쓰는 'Could you?' 나 'Please' 같은 말들도 있지만, 신기한 건 서구권엔 한국어와 일본어에는 존재하는 '겸양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존경을 표할 때 나를 낮춰 상대방을 높이기도 하는 섬세하고 간접적인 소통방법은 동양의 사고방식이나 철학을 참 잘 닮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쉬울 것 같은데 남편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님' 붙이기이다.
단순히 상대방에게 '님'을 붙여 상대방을 높이면 쉬울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왜냐면 여기에 '우리'의 개념이 더해져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님'을 붙여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일단 문제없지만, 상대방에게 제 3자인 와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혼란이 시작되는 듯하다.
그래서 늘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선생님, 제 와이프님이 지금 오시고 있습니다. "
와이프는 '가족' = '우리' = 즉 '나' 이기 때문에 내가 나를 높일 수 없기 때문에 '님'을 붙일 수 없는데 남편에겐 이런 개념이 없으니, 이곳저곳에 모두 '님'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와이프'는 내가 아니기에 '님'을 붙였고, '선생님'에게 존댓말을 쓰고자, '오고 있다' 대신 '오시고 있다'라는 존경어를 써서 최대한 정중하게, 매너있게 대화를 이끌어가고 했으나 실패해버린 것이다.
'우리'는 '나'의 일부기에 절대적으로 같이 낮아져야 상대방을 높여줄 수 있다는 개념.
이 개념이 머릿속에 완전 자리잡기 전까지 남편은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다름을 이해하는데는 정말이지 평생을 연구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남편의 존댓말은 웃기고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최대한의 예의와 존경을 나름 열심히 표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단어에 극존칭 붙이는 그의 모습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편의 진심을 알아챈다.
진심을 전하는 건, 매끄러운 구사력과 완벽한 단어의 선택만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