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안녕.
안데르센의 원작인 미운 오리 새끼는 너무 잔인하다. 그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형제들도 어미도 미운 오리를 못살게 굴고 외면한다. 그리고는 미운 오리는 그들에게 복수라도 하듯 백조가 되어 오리들과는 차원이 높은 클래스가 되어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 오리가 백조보다 덜 아름답고 천한 것처럼 암묵적으로 그려지는 게 거슬린다. 다르게 생겨 놀림을 받았지만, 알고 보니 원 혈통이 고귀하여, 바로 신분상승을 해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해피 엔딩으로 포장한 마무리가 영 마음에 안 든다.
남편은 생김새가 다르게 생긴 미운 오리 새끼였기도 했지만 부모도, 형제들도, 대부분의 친구들도 동네 사람들도 남편을 미운 오리로 대하지 않았다. 남편의 양부모님은 미운 오리인 남편을 날개깃에 품어 사랑으로 보듬고 살폈다.
남편의 양어머니인 메리의 여동생이자 남편의 이모님인 루스앤은 가끔 남편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내게 이야기해준다. 남편이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루스앤 이모가 데이브 이모부와 포틀랜드에 메리와 가족들을 만나러 왔을 때였다. 기차역에서 메리는 자신의 동양인 양아들을 안은채 가족들과 서 있었다. 메리의 뒤에 서있던 미국인 중년 여성이 다가와 남편과 메리를 훑어보며 말을 걸었다.
"아이가 아빠를 닮았나 보네요."
"아니요."
메리는 차분했고 화도 내지 않았다. 다만 중년 여성이 자신의 질문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스스로 알아채기엔 충분할 정도의 어조로 답했다. 메리는 자신의 양아들에게 자신의 여동생과 자신을 번갈아 가며 가리키며 "S-I-S-T-E-R-S"(자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는 눈을 맞춘 뒤 이야기했다. "자매도 항상 닮진 않는단다." 메리는 자신과 다르게 생긴 양아들에게 '너는 미운 오리가 아니란다'라고 끊임없이 일러주었다. 아들을 입양한 후 몇 년 뒤 메리와 조는 양아들을 데려온 그곳에서 아들의 머리색과 눈동자를 똑 닮은 여자 아이를 한 명 더 입양했다. 남편에겐 비슷한 모습을 한 여동생이 생긴 것이다. 남편은 가족들 사이에서 더 이상 미운 오리라 느끼지 않게 되었다.
남편이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 메리는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아들이 자신의 품을 이제는 영영 떠나가버릴 것 같아 한동안 슬퍼했다. 하지만 메리는 곧 기운을 차리고 떠나간 아들 오리를 응원해주기로 했다. 아들 오리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썼다. 아들 오리의 생일 때마다 빠짐없이 카드와 선물 꾸러미를 보냈다. 아들 오리가 좋아했던 사탕과 간식, 아들 오리가 다녔던 학교의 팀 유니폼, 아들 오리가 좋아했던 브랜드의 티셔츠와 양말가지...엄마 오리는 아들 오리를 한동안 보지 못해서 변해버린 아들 오리의 취향과 사이즈를 잘 알지 못했다. 엄마 오리의 시간은 마지막으로 아들 오리를 보았던 그의 대학생 시절에 멈춰있는 듯했다.
새롭게 둥지를 튼 곳에서 아들 오리는 더 이상 미운 오리가 아니었다. 모두가 자신이랑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무리 속에 섞여 있음 평범한 오리로 지낼 수 있었다. 아들 오리는 이곳이 편해졌다. 고향을 별로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다. 점점 더 고향에 돌아가는 주기가 길어졌다. 아들 오리는 새로운 터전에서 나름 성공도 했다.
아들 오리는 어느 해, 엄마 오리를 자신이 있는 곳에 초대했다. 엄마 오리는 아들 오리의 초대를 받고는 너무너무 신이 났다. 출발 전부터 친구들에게 자신의 여행 계획에 대해 자랑을 하고 아들 오리에게 무엇을 챙겨다 줄까 고민했다. 촉박한 스케줄이었지만 아들 오리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매 순간 만끽했다. 사랑하는 아들 오리의 모습을 되도록 많이 기억하기 위해 함께 있는 동안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러댔다. 엄마 오리와 아들 오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혼자서 멀리 날아와 둥지를 틀고 잘 살고 있는 아들 오리가 너무 기특하고 대견했다.
엄마 오리는 집에 돌아와서 사진들을 모아 스크랩 북으로 만들어 온 동네 친구들과 교회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 "나의 아들 오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요. " 엄마 오리는 그리운 아들 오리에게 매일매일 편지를 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 오리가 편지를 열어보는 횟수가 적어졌다. 아들 오리는 엄마 오리의 편지를 열어보기엔 너무 바빴다. 그리고 그렇게 스크랩북 사진들 속의 시간은 그들이 함께한 마지막 시간이 되어버렸다. 아들 오리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오리의 비보를 들었다. 엄마 오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아들 오리는 목청껏 소리 내어 울었다.
조나단에게,
가게에서 '버츠비'를 보곤 너 생각을 했어. 그리고 아빠가 남아있던 현금을 좀 찾아냈어.
(지폐 한장은 사진앨범이나 스크랩북에 넣으려고 내가 챙겼어) 나머지로 네 점심 한 끼는 충분하겠지?
모두들 나한테 여행이 어땠냐고 계속 끊임없이 묻고 있어. 돌아가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며 자랑할 사진이 많네!^^
-사랑하는 엄마가
미국으로 귀국하시는 날, 남편에게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기신 짧은 노트. 이 날이 남편이 어머니를 본 마지막 날이 되었다. 어머니는 한국지폐와 동전들, 버츠비 립밤을 남기고 가셨다.
엄마,
내가 좀 더 좋은 아들이었으면 엄마랑 같이 찍은 사진이 더 많이 있었을 텐데...
나는 엄마들이 원하는 그런 좋은 아들상과는 거리가 멀었죠.
수많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이상 다시 건너올 수도 없을 정도로
우리 사이가 멀어지도록 내버려 두었어요.
엄마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비극이었고, 경고도 없었으며, 마지막 인사도 없었어요.
가끔 그 일이 엄마 대신 내게 일어난 일이었으면 이란 생각도 해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내야 할 때 '사랑해요.'라고 말 못 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난, 마지막으로 엄마를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미안해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 나를 다시 안아줄 때까지 날 기다려줘요, 엄마.
2017년 7월 20일
남편이 어머니를 보내며 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