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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i Jul 09. 2024

웰빙의 사기

지난 3년간 나는 진정한 웰빙 찾기에 몰두해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밖에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는데 팬데믹 이후로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연스럽게 자기성찰할 시간이 많아졌다. 그로 인해 성격이나 행동패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심한 불면증이 찾아왔다. 약 없이는 잘 수없는 밤들이 이어졌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러다 좋은 날도 있었다. 그렇지만 좀 나아지나 싶다가도, 곧 40을 목전 앞에 둔 나이가 되자, 최근에 또 불안의 요소들이 꿈틀대며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약 40년간 그럭저럭 잘 살아왔는가. 웬일이지 만족보다 후회가 가득하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또다시 불안의 늪에 빠지게 하고 잠이 오지 않는 밤들이 많아졌다.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없는가? 남은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유익하게 보내면 내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 후회 없이 갈 수 있을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그 꼬리는 불안이 이내 물어버렸다.


이 사회는 내가 놓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하며 내 귀에 대고 외쳐댄다.


아직 아이가 없는 것이 불안하지 않은지.

아직 경제적 자유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불안하지 않은지.

아직 사회적 지위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불안하지 않은지.

아직 인류적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안하지 않은지.


그런 나는 SNS를 보면서 남들과 비교하며 아직도 모자라다고 한참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자신을 세뇌한다. 지금보다 더 완벽한 삶이 있을 거라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만이 오늘의 할 일이라고 되새긴다. 오늘 만약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느긋하고 여유 있고 행복한 하루였어도 결과적으로는 불완전했고 죄책감이 들어야 하는 하루가 되는 것이다.


등산을 할 때도 나는 다음 오를 산을 생각한다. 온전히 산을 오르며 자연을 누리는 시간에 집중할 수가 없다. 사진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나의 소셜미디어에 게시될 사진이라 완벽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는 산을 올라온 기분마저 뒤틀어져 버린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일까? 나를 위한 것인가? 남을 위한 것인가?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인가, 웰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답을 찾고자 대학원에도 다녀왔다. 통합의학, 즉, 주로 개인적 건강증진과 웰빙을 다루는 학과였는데, 웬일인지 논문도 쓰고 학위도 받고 난 후에 그 분야에 흥미가 떨어져 버렸다. 거짓과 뒤엉킨 모순들, 본질보다는 겉치레에 집중하여야 하는 진정성의 누락(나는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나도 일조했다). 행복과 웰빙을 이론으로 정말 공부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감. 수많은 논문 속 통계들이 말하는 숫자들로 행복과 웰빙을 과연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심. 진정한 행복과 웰빙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학계에서 인정받을 연구업적을 남겼다고 쳤을 때 이는 진정한 업적인가 아니면 가식인가에 대한 혼란들.


행복과 웰빙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모순덩어리로 느껴지지만, 나는 다시 강하게 그 모순덩어리에 끌리기 시작했다. 한없이 행복과 웰빙을 예쁘게 포장하기보단 본질에 집중한다면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웰빙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진담반 놀림반, 나처럼 웰빙 하지 않은 사람이 웰빙 전문가가 될 수 있냐 물었다.


"아니, 웰빙 하지 않으니까 웰빙 전문가인 거야. 이미 웰빙 하면 웰빙이 필요 없거든"


웰빙전문가는 웰빙 해야 하는가. 그보다는 절실함이 중요할 것 같다. 웰빙이든 행복이든 이를 오히려 강하게 강구하는 자들은 보통 그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저 행복한 사람들 보다 절실하게 행복과 웰빙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웰빙과 행복의 본질을 먼저 더 이해하게 되리라 믿는다. 당신이 만약 이미 진정한 웰빙을 쫓고 있다면 벌써 웰빙 전문가일 것이다. 


웰빙은 지속되지 않는다. 삶의 목적도 될 수 없다. 삶의 목적이 된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순간순간의 플래시 같은 감정의 상태이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 인생의 길 위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기분 좋고 긍정적인 상태들. 중요한 것은 불멸의 지속성이 아닌, 빈도수. 얼마나 자주 찾아오느냐. 그리고 찾아오지 않았을 때, 밑바닥에서 꺼내 올려줄 회복탄력성(resilience) 얼마나 단련되어 있느냐 즉 극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생존을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전엔 몰랐다. 자본주의의 성장을 위해 사람들에게 심어놓은 긍정 심리학과 행복해지고 웰빙을 목적처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실은 우리를 옥죄고 삶을 고난하게 만든다는 것을.


1948년 세계보건기구헌장에서 건강의 정의를 하는데 웰빙이 처음으로 출현하였다  “질병이 없으면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양호한(well-being) 상태" 이것이 지금까지도 현대인의 건강을 정의하는데 척도가 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요소를 클리어하는 건강한 사람은 지금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완벽하게 신체적으로/정신적으로/사회적으로 건강해질 것을 강요하는 시대는 개인과 사회의 불안감만 조성하였다. 웰빙과 행복은 이런 것이다 그럴싸하게 보여주며, 모두가 한 곳을 보며 비정상적으로 쫓아가게끔 만들었다. 


타인이 말하는 웰빙에 더 이상 속지 말자. 나의 웰빙은 내가 젤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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