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네오 정글 크루즈로 새로운 여행을 만나다.
해외여행은 다닐 만큼 많이 다녀봤다. 관광지에 가고, 유명한 음식을 먹어보고, 몇 가지 액티비티에 참여하고, 기념품을 사 온다. 나를 포함 많은 사람들의 여행은, 약간은 뻔한, 비행 중 비행기 창으로 보이는 비행기 날개를 찍고, 기내식 사진을 하나 찍는 것부터 인스타 스토리가 시작되겠지.
사실 여행보다 여행 전 준비의 시간이 더 설레기도 한다. 가고 싶은 곳을 스크랩해 두고, 구글 지도를 따라가 보기도 하며,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가서 입을 옷을 미리 입어보고, 옷과 신발, 모자, 액세서리, 가방 등 이게 정말 필요한지, 짐이 많아 초과되진 않을지를 수백 번도 고민하며 트렁크에 넣다 뺐다를 반복한다. 나의 소중한 휴가를 모처럼 낸 거라 여행 중 모든 걸 최고를 경험해야 하는데 뭔가 놓칠라 불안하다.
수많은 시간을 준비에 할애했는데, 너무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구글맵으로 벌써 몇번을 왔다갔다 한 터라 막상 그 장소에 갔을 때 감흥이 적을 때도 있었다. 이러한 행복하면서도 피곤한 여행의 준비에 대해 동생한테 이야기했더니, 나보다는 계획적인 내 동생은 그래도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 힘든 것은 하나 없다고 했다. 아, 부럽네.
누가 봐도 놀라워할 만 여행, 경이로운 인스타 한 샷을 위해 지금까지 많은 여행을 다녀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준비하고 여행지에서 돌아다니는데 옷이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었다. 사진재주가 없는 남편이 완벽해야 할 한 샷을 망쳐놓았을 때 짜증내거나 구박하기도 했다. 같은 공간에서 찍은 비슷한 사진이 수십 장일 때도 있었다. 여행의 목적은 사진 한 장이 아닌데, 어느샌가 사진 한 장에 목메어 있는 내가 있었다. 내가 즐기는 여행이 아닌 남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여행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작년 휴가를 어디로 갈지 고민할 때 조금 색다른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보르네오 정글 크루즈'란 영상에 끌렸기에 거기로 가자고 했다. 여행의 핵심은 오지여행이라 맛집이나 핫플레이스를 검색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오지여행 앞뒤로 자카르타에서 머무는 시간이 있어서, 자카르타에서의 일정은 못버리는 버릇처럼 반 스트레스 반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미국의 남편 동생네 부부도 조인하기로 했기에 다행히 내가 온전히 계획해야 하는 자카르타 일정은 이틀정도 였다.
개인 여행자가 혼자 보르네오 정글탐험은 불가능하다. 여행상품이나 가이드를 통해야 하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면 뻔하게 나오기 때문에 그중에서 적당히 골라서 가면 된다. 나는 리뷰가 높았던 호주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통했다. 이 날짜에 몇 박 며칠 동안 이러이러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whatsapp으로 문의를 하면, 탈 보트와, 루트, 방, 가격 등을 정보를 알려주고 디파짓을 보낼 은행을 알려준다. 그쪽으로 송금하면 예약이 완료하고, 차차 여행관련해 세부 내용들을 알려준다. 준비물, 주의사항 등등 영어로 친절히 알려주니 걱정할 것이 없고, 언제나 궁금한 것은 whatsapp으로 문의하면 그 즉시 친절히 알려준다. 근데, 여기서 좀 신기한 건, 계획 못하는 나로서도 좀 놀랄만한 여행 스케줄이다. 바로 딱 짜인 여행 스케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랑우탄도 보고, 정글 트레킹도 하고, 배도 탈것이 딱 이 정도만 알려주고는 정확히 첫째 날 뭐 할지 둘째 날 뭐 할지 짜인 스케줄이 없다. 흘러가는 대로 그냥 따라가면 된다. 신선했다.
여행의 준비물
큰 배낭을 짊어지고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유러피언이나 북미 백패커들을 동경해 왔다. 뭔가 정글크루즈를 하는데 슈트케이스는 불편할 것 같아 이번기회에 백팩을 사러 갔다. 고작 159센티의 작은 체구인 나는 넘치는 자신감으로 내 덩치만 한 65리터 백팩을 골라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매고 돌아다니던 시간 보다, 남들이 들어준 시간이 더 길었던 거 같아 부끄러웠다. 그냥 다음부터는 슈트케이스를 들고 다녀야겠다.
그 외, 정글 트레킹을 할 예정이라, 온몸을 가리지만 덥지 않은 긴팔, 긴바지, 트레킹슈즈, 챙이 큰 모자, 얼굴을 가리는 네트, 젖어도 금방 마르는 겉옷, 벌레기피제, 벌레 물리면 바르는 약 등을 단단히 챙겼다. 나중에 알았지만, 벌레 아주 많다. 벌레를 싫어한다면 보르네오는 아마 큰 도전이 따를 것이다.
예방주사
국가가 지정한 오지여행을 할 때는 몇 가지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수칙이 있다. 보르네오를 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사를 맞고 약을 챙겨야 했다. 그중에서도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주사를 맞는 게 아니라, 약을 매일같이 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심지어 메스꺼움 등 부작용이 심하다 하여 처방받을 때 굳이 먹지 않는 것도 추천한다고 했다. 말라리아는 치료가능한 질병이기에 혹시나 걸려도 치사율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도 나도, 장티푸스와 일본뇌염, 파상풍 등의 예방접종만 하고 말라리아약은 받아서 먹진 않았다.
보르네오섬-칼리만탄
보르네오섬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인도네시아령, 말레이시아령, 브루나이령 세계의 영토로 이루어져 있다. 한 섬에 세 개의 나라, 세 개의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북부 쪽에 말레이시아령과 브루나이령이 있고, 인도네시아령은 남쪽이다. 우린 보르네오 섬 중 인도네시아령으로 갔는데, 보르네오 섬 중 남쪽 인도네시아 지역을 칼리만탄 지역이라고 부른다. 칼리만탄 중에서도 우린 중앙칼리만탄주(Kalimantan Tengah)에서 여행을 시작하고 끝내는 일정이었다. 중부 칼리만탄의 주도는 팔랑카라야로서 인구 약 220만 명 정도에 종교는 무슬림이 주를 이룬다.
보르네오 가는 길
보르네오는 좀 귀찮은 여행지이긴 하다. 비행기가 직행이 물론 없어서, 자카르타까지 간 다음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국내선으로 갈아타고는 팔랑카라야라는 중부 칼리만탄주의 수도로 간 다음, 또 하루를 묵고, 그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린 후에나 정글 보트를 탈 수 있다.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