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대신 캐나다행을 선택한 이유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나기

by 북아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평범한 버스 안에서였다.



약속이 있어 서울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좌석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이 많아 제법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때 버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잊히지 않는다. 하나같이 지쳐 보이고 웃음기가 없었다. 유니폼처럼 맞춰 입은 무채색 옷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때 나의 감정 상태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순간 나는 확실하게 무언가 느꼈다. 아,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는 나도 생기를 잃고 나만의 색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겠구나.



뭔지는 모르지만 '우물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사실 4학년 때 나의 초점은 '취업'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였다. 남들은 보통 대학 시절 어학연수를 가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떠났다.



졸업 후 취업 준비만 하다가는 그 답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불안했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다음 스텝 열차에 탑승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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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는 사실상 어학연수라는 명목 하에 떠난 취업 전 마지막 모험이었다. 스물한 살에 마주했던 나이아가라를 시작으로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던 나라. 선진국은 왜 선진국일까. 단순한 여행이 아닌, 살아봤을 때는 또 어떨까.



캐나다에서 머물렀던 6개월은 참 많은 걸 느끼게 해줬다.



그곳에서는 당연한 일들이 나에게는 늘 틀을 깨는 과정이었다. 뮤지션처럼 헤드폰을 끼고 공사장을 지휘하는 젊은 여자, 페스티벌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할아버지, 유모차를 끌고 거침없이 버스를 타는 아이 엄마. 한국에서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이 그곳에서는 매번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나누는 대화도 달랐다.



나이가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 학벌이 어떤지. 그런 건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의 가능성을 계속 확인시켜 주는 대화들이 오갔다.



확실히 느낀 건 삶에 정해진 모양과 틀이 없다는 것. 기준이랄 게 없다 보니 오히려 자유로웠다.



그렇게 나는 자신감을 한층 얻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나는 그때도 지금도 졸업 후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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