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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Oct 29. 2020

스토너/ 존 윌리엄스

살아있음 그 자체에 대한 감사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이 소설은 윌리엄 스토너의 학자로서의 삶을 포함해 한 개인으로서의 삶 전체를 보여주고 있다. 스토너는 평생을 농부로서 살아가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인이 될 무렵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된다. 농업을 위한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 곳에서 영문학에 대한 흥미를 느껴 학자로 삶의 방향이 변하게 된다. 학과 교수에게 인정받아, 결국 교육자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 동안 주변의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스토너라는 한 인물이 느끼는 슬픔과 고독, 그리고 성실함과 애정이 드러난다. 특히 이디스와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쓸쓸한 교수생활에서 스토너가 그것에 대하는 자세는 일반인의 관점으로 볼 때는 참으로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아내 이디스와는 처음부터 쌍방의 애정관계로 시작된 것이 아니며, 아내는 점점 더 히스테릭한 성격으로 변하고 스토너를 경멸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스토너의 기질을 닮았던 딸아이는 엄마에 의해 아빠와 정신적으로 격리된 채, 결국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성장하게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청혼에서부터 결혼생활 내내 스토너와 이디스가 그려낸 갈등의 모습이다. 무관심 속에서 시작해 애증, 경멸, 연민에 이르기까지 둘 사이에 참 다양한 감정이 오고 간다. 들여다보면 스토너를 못살게 구는 이디스 또한 아버지라는 가부장제에 의한 피해자인 것이 드러난다. 누구나 잘못된 환경에 노출될 수 있고, 자신이 선택한 것에 의해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결정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따라서 어떻게 보면 짧은 인생 속에서 서로 보듬어주고 살아간다면 결국 본인의 생을 넘어 다음 세대로라도 분명히 좋은 영향이 갈 것이라고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스토너는 대학생활 때 가장 친한 친구를 전쟁으로 인해 잃고, 교육에 대한 올바른 것을 주장하다 옆 동료의 오해와 시기심을 자극해, 그와는 평생을 불편한 관계로 지내게 된다. 학구열이 남달랐지만 저술작업에 몰두할 때, 인기있는 강의를 만들어나갈 때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많은 문제들에 휘말려 몇 번씩 중간에 그만두게 된다. 그러나 스토너는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오로지 자기 앞에 놓인 현재에 순응하여 충실히 살아간다.

 스토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때문에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게 답답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가 스토너를 통해서 남들에게는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한 개인에게는 평범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것이든 무던히 노력해서 얻어내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스토너 정도면 충분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언제나 바보같은 선택을 해버리는 모습이 참 한심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부모, 아내, 전쟁의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토너가 무력함을 달래기 위해 파고들 수 있는 사람과 일이 한 개쯤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생에서 진정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한 명과 성취감을 느끼는 나만의 일을 한 가지 가지고 살았다면, 그것 자체로도 훌륭하게 살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토너에 대해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 이 말에 이 작품이 전하려는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힘든 시기에도 항상 살아있음을 느끼고 조용히 극복해 낼 수 있었던 스토너가 무능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대단하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살아있음 그 자체에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하면, 결국 죽음을 앞에 두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이지만 실천하기에는 가장 어렵고 힘든 선택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도 스토너의 생이 깊은 울림이 되어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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