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도 나, 저런 나도 나
오랜만에 하얀 바탕을 켜고 글을 적어본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느낄 때는 행복함과 기쁨으로 충만할 때보다는 오히려 힘들고 지친 마음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태가 더 많다. 글은 좋을 땐 쳐다도 안 보다가 슬플 때 꼭 껴안는 인형 같다. 오늘도 그런 기분이 들어서 뭔가 답이 나올까 어김없이 키보드를 붙잡았다. 최후의 보루.
나는 내 글이 눈에 익숙하니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읽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려면 내가 거의 기억을 상실하고 내가 썼다는 걸 잊어버리고 내 글을 읽어야 객관적인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훗날 내 글을 읽었을 때 초등학교 때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마냥 유치할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쓰련다.
나는 INTJ다. 이걸 인지하는 순간 나도 나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교에서 적성검사를 하면서 성격검사를 같이 했었는데, 그때 처음 INTJ라는 성격 진단을 받았다. 그때는 mbti가 지금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나도 내 성격이 정확히 어떤지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작년, 상담을 받으면서 또다시 성격검사를 했는데 또 INTJ가 나왔다. 그래서 10년 전의 성격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나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면밀히 살펴본 결과, 나는 뼛속까지 계획형 완벽주의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직업을 갖게 되면서 이러한 성향이 좀 더 짙어진 것 같은데, 일을 할 때 지나치게 꼼꼼한 탓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렇지만 대충 하는 것에 더욱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감수하고 지낼 뿐이다.
그리고 계획한 것들이 틀어지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고, 하나의 계획이 바뀌게 되었을 때의 차선책을 두세 가지 정도 미리 또 준비해놔야 마음이 편하다. 이렇듯 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는 편인데 오늘은 틀어진 계획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는 너무 당연하게 결과를 예측했던 나에게 준비된 차선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것도 성격장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나의 특성을 즐긴다. 계획했던 것들이 적절한 시기에 딱딱 마무리되면 성취감에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머릿속은 늘 단기적, 장기적인 계획들로 포화상태다. 심지어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서 선택과 집중이 어렵다. 한 가지만 파서 달인이 되면 참 좋을 텐데, 나는 결과가 눈에 보이는 걸 좋아해서 무작정 끝이 보이지 않는 한 가지를 해나갈 배짱이 없다.
그리고 나는 참으로 감성적이라고 늘 생각을 해왔는데, 엄청 이성적인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의식을 할수록 나의 글도 점점 딱딱해져 가는 것 같은 기분..
평소에 남에게 큰 관심이 없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서는 더욱 그런 편이다. 무엇보다 비효율적인 관습과 꼰대 마인드, 비양심에 대해 어찌 보면 지나친 잣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는데, 혼자 살아야 할 팔자인가 보다. 아무리 감정에 호소하고, 사람마다 다른 특성들을 감안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게 잘 안되고 원칙을 지켜서 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 심각한 개인주의인데, 또 큰 그림을 좋아한다. 항상 저울질하고 있는 기분.
이러한 성향이 나한테 굳이 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가끔 하는데, 아직 자식이 없지만 내 자식은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하는 걸 보면 내가 나만의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오늘은 번아웃 상태다. 내가 과연 한 개인으로서 두 발로 설 수 있는 날이 올까? 때를 기다리면서 아직 버텨야 하는 건지, 과감하게 끊어내고 시작해야 하는 건지 아직도 나의 플랜비의 윤곽이 흐릿하기만 하다. 아아,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여전히 미궁 속에 있는 나의 인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