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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Feb 01. 2022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스스로를 지키고 아끼는 방법

지금 여기서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는 단지 지금 여기서만 해결할 수 있다.


작년 말 한창 일에 찌들어 있었을 때 읽었던 책이다.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쏠리면서, 사무실에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집에 와서는 온몸의 힘이 다 빠져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녁이 반복되었다. 그때 우연히 희미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읽게 된 책인데, 그 이상의 에너지를 쓰기가 어려워서 미루다 해가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며칠간 이어지는 설 명절에 원기를 회복하며 리뷰를 쓰고 있다. 번아웃과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과 위로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지난 연말을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이 책의 일곱 가지 내용을 소개해본다.




계산된 비관주의

진짜 계산된 비관주의자는 재해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앞으로 생겨날지도 모를 위험성을 외면하지 않는 자신이 현실을 직시하는 거라 여긴다. 계산된 비관주의자는 미래에 올 나쁜 일을 예측해야 그 나쁜 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도 정신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미리 준비되어 있으므로 덜 실망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큰 '착각'일뿐이다. 뇌 과학과 신경 가소성으로 우리가 알게 된 게 있다면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일 테니 말이다.
- 부정적인 생각과 계산된 비관주의는 나쁜 사건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지도, 그 사건으로부터 느끼게 될 아픔을 줄여주지도 못한다.

 몸이 힘들면 자동반사적으로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가능한 한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 가정하고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제였다. 그래서 안 좋은 상황에 대한 플랜A, 플랜B, 플랜C들을 세우는 것이 거의 습관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상황은 늘 생각했던 것보다는 순탄히 흘러갔지만 나의 기분과 생각은 전혀 만족스럽다거나, 기쁘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과정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벗어났을 때에도 안도의 한숨만 내쉬고 곧 다음 일들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에 바빴다.

 겉으로 볼 때는 문제를 잘 해결하고 늘 좋은 결과가 나타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토닥여주지 못했다. 나는 철저히 '계산된 비관주의자'였던 것이다. 나의 계획성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약간의 사고 전환이 필요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일어날 수 있는 좋은 일들에 조금 더 머리를 쓰고 집중하는 것이 힘든 과정을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신경 회로

무언가를 먼저 철저하게 규명해야 그것에 이별을 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사고의 오류이기 때문이다...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이나 관련 신경 회로를 다시 연결했으므로 결과적으로 그 불편한 기억과 감정을 예전보다 더 강하게 느낄 것이다...여기서는 당신의 유년기가 아무리 나빴고 부당했다고 하더라도 좋은 점이 적어도 한 가지는 있음을 알고 넘어가자. 바로 유년기가 지나갔다는 점 말이다. 지금 여기서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는 단지 지금 여기서만 해결할 수 있다.

 이것도 내가 늘 습관적으로 했던 행동 중 하나였는데, 나는 좋았던 것을 계속 생각하기보다는 안 좋았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서 고통받는 걸 주로 택했다. 그럴수록 좋았던 기억들은 희미해지고, 안 좋았던 기억들은 늘 내 안에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아직도 학창 시절 힘들었던 수업시간이나 지금은 사이가 틀어진 친구관계에 대한 꿈을 꾼다. 억울하고 슬픈 감정들이 늘 마음 한켠에서 나를 적시며, 불안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현실이고, 현실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더 이상 과거 자체를 분석하거나 내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정당화시킬 필요도 없다. 나는 지금 과거보다 나은 사람이고, 더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과거의 감정들은 이제 그만 놓아주어야겠다.



먹는 음식

사용 방식에 따라 바뀌는 것은 뇌만이 아니다. 혀와 미각도 그렇다. 입속 점막에는 미관구라는 약 10,000개의 맛 봉우리가 있는데 이것들은 10~14일마다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결정적으로 그 시간에 우리가 먹는 음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따라 맛 봉우리 각각의 민감성이 바뀔 뿐만 아니라 맛에 대한 요구도 달라진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물론 맛 봉우리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입맛과 특정성분의 갈망에 관하여는 우리 뇌의 부분들도 우리가 먹는 음식에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특정 음식에 대한 '갈망'이 생기는 것은 우리 몸에 지금 당장 그 음식 성분이 필요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란 뜻이다. 오히려 특정 음식을 평균 이상으로 자주 먹는 것이 그 갈망을 부르기도 한다.

 내가 오늘 무엇을 먹는지가 내일의 나의 음식 선호도 자체를 결정할 수 있다.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 배달음식, 인스턴트 음식,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즐겨 먹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런 음식들을 선택하는 자유로움이 좋았고, 신기한 맛이 너무 좋아서 자꾸만 그런 음식들에 손이 갔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 느꼈던 그 맛을 상상하며 음식을 먹어도 오히려 실망만 늘고 갈망이 충족이 되지 않는다. 내 몸은 그런 음식들을 소화하기에는 한계치가 임박했는지 모른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원할 뿐 충족시킬 수 없다. 몸과 뇌가 일치할 수 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면제 우울증

면제 우울증은 오랫동안 끌던 힘든 일이 마침내 사라질 때 주로 나타난다. 정신 역학적으로 볼 때 이것은 우리 정신의 똑똑하기 그지없는 보호 기능이 발동한 것이다. 목표 달성으로 기분이 좋은 사람은 그런 행복감 속에서 몸과 마음을 충전하기보다 그 즉시 새로운 목표를 찾고 또 전속력으로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쉬운데, 목표 달성 후 우울증이 찾아오면 억지로라도 어느 정도는 쉬어가게는 된다.

 우울증은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증상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함으로써 몸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해주는 것. 약간의 우울증을 잘 돌봐준다면 나의 몸도 함께 치유될 수 있다니 인체는 참 신비롭다.



잘못된 '믿음 문장'

믿음 문장이 우울증으로 가고 있는 사람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 이로울 것 없는 머릿속 독백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도 자신의 잠재성을 마음껏 펼칠 수 없게 방해한다.
- 나는 내 직장을 포기할 수 없다.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이고 내 아이들도 먹여 살려야 하니까.
- 나는 그다지 능력 있는 사람이 못 된다.
- 다른 직업은 상상하기 힘들다.
-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수가 없다.
- 사진을 찍으면서는 밥 먹고 살 수 없다.
- 프리랜서 일은 나한테는 너무 불안하다.
- 그냥 참아야 한다. 어디든 다 똑같다.

 이 내용은 믿음문장에 갇혀있던 어느 한 유치원 교사가 결국에는 사진작가로 전업하면서 인생을 바꾸게 되는 내용인데,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믿음문장'들이 나온다. 주변에서 들은 말들을 내가 나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을 때도 있다. 이런 믿음문장은 나 자신을 상자에 가두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겁을 준다. 하지만 이런 믿음문장을 만든 사람도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걸 깨부수는 것도 나의 몫이다.



건강한 중간

중간이 좋다고 해서 뭐든 중간만 하는 당신 아이에게 "네가 최고고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제일 똑똑하다"라고 칭찬만 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칭찬과 도전이 똑같이 필요하다. 그림을 그려 보여줄 때마다 엉망인 그림이라도 폭풍 찬사를 듣는 아이라면 나중에 대학이나 직장에서 제 몫을 해낼 만큼의 야망을 계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 부모님의 칭찬을 자주 듣고 자랐는데, 성인이 되어보니 내가 그렇게 대단하거나 특별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을 때 얼마나 초라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오히려 평균 이상은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들어서 힘들었다. 비난보다는 칭찬이 낫겠지만, 과한 칭찬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자식에게 밑도 끝도 없이 잘했다고 칭찬하기보다는, 어떤 것을 했을 때 그것을 한 이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거나,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용기를 주는 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찬을 받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스스로 이유와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섬세함이 필요한 것 같다.



외국어 요법

내 환자들 대부분이 영어 문장으로는 부정적인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독일어 문장으로는 기분이 나빠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계속 일어나는 생각을 그때그때 번역하는 것이 사실은 자꾸 억압하는 것보다 훨씬 좋고 간단하다는 것도 덧붙여 잘 알기 바란다. 외국어 요법이 당신을 위해서도 자동적 부정적 생각을 멈추게 하는 데 상당히 좋을 수도 있음을, 당신은 벌써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때 외국어를 한창 열심히 했을 때, 한국어를 외국어로 옮겨 말하는 게 훨씬 정리가 잘 되어 들리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외국어의 매력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국어인 한국어에는 절대 떼어낼 수 없는 끈적함이 배어있기 때문에 감정이 분리가 잘 되지 않지만, 외국어는 한결 명쾌하고 간결하게 들리기도 한다. 종종 시도해봐야겠다.




  속에 정말 많은 내용과 정보가 있었는데, 그중 나의 일상 속에서 가장 도움이  법한 내용만  가지 골라서 적어보았다. 실천하는 것도 아닌 것도 있지만, 이렇게  가지씩  안에 쌓아 놓으면 언젠가는 써먹을  있는 나의 내공이 되지 않을까? 직장생활이 버겁고 하루하루가 지치기만 하는 직장인일 경우  번쯤 읽어보면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가벼워질  있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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