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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Nov 29. 2021

서른의 휴직/ 이지영

내면이 빛나는 사람

말 그대로 너는 너고 나는 나였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구입해놓고서, 1년이 지난 지금 읽어본 책이다. 스물아홉 살에는 뭔가 조급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었는데, 막상 서른이 되었을 때는 생각보다 덤덤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제목 때문에 고른 이유가 80퍼센트였다. '휴직'이라는 단어가 마침 내 눈에 띄었다. 당시 직장생활 3년 차였던 나는 마냥 퇴사를 꿈꾸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책 내용을 대충 훑어보면서, '단순히 해외여행하고 겪은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기록해 놓은 책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직장생활에 쫓겨 한없이 우울했던 나는 밝기만 할 것 같은 이 책이 별로 읽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 나는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고, 다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뭔가가 다르게 보였다. 브런치 작가의 책이며, 작가의 직업이 공무원이라는 것도 알게 되면서 많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 또한 대학교 때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떠났던 경험이 있었기에, 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지난 기억들을 다시 소환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되고 싶은 직업 중에 하나가 공무원인데, 무조건 욕을 먹는 직업도 공무원이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이 조직 바깥의 사람을 만날 때면 직업을 이야기하는 것이 꺼려졌다. 그저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움츠러들었다.

 이 내용은 100퍼센트 공감이 되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미묘한 직업이었다. 나에게 직업은 별생각 없이 가장 빨리 돈을 벌 가능성이 높아서 선택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 직업군은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다르게 취급되고, 개인과 조직이 동일시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고, 그래서 나 또한 밖에서 내 직업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거나, 그냥 회사 다닌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단 내 직업을 말하는 순간 달라지는 공기가 느껴졌고, 무거운 프레임이 내가 말하는 모든 것들에 책임감을 부여한다. 사회초년생에게는 매우 불편했던 경험이다. 사무실에서는 오죽했으면 상사들이 '밖에서 직업을 밝히면 너만 손해'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모든 공무원이라면 공감할 내용인 것 같다.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집단을 비유하는 단어처럼 한번 조직에 들어오게 되면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내 발로 나가지 않는 이상 평생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일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한 번 소문이 잘못 나면 매장되기 십상이었다. 조금이라도 단체 행동에서 어긋나는 직원은 금방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일단 조직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사회 구조가 가장 문제인 것 같다. 누구나 조직 안에서 일을 하는 개인들은 소속감과 자부심으로 버텨나가야 하는데, 공무원의 경우에는 조직 안팎에서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또한 20대에 들어오면 같은 건물 안에서 같은 사람들과 30년 이상을 같은 업무를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데, 자부심 없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런 점이 젊은 공무원들이 조직을 떠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코로나 시국에는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또한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가 더욱 어려운 곳이 공직이다. 다른 곳에서는 이만한 대우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낮아진 자존감과, 가정을 꾸리면 눈곱만큼씩 플러스되는 복지혜택들이 직원들을 조련한다. 내 생각에는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을 자주 접해보지 않는 환경도 원인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나 또한 변화와 도전에 무뎌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조직에서 패배자가 되는 것도 싫었지만, 나보다 훨씬 이곳에 오래 머물고 계신 상사들을 보면서 그렇게 조직이 삶의 전부인 것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조직에서는 높은 분들이지만 퇴직을 하고 나면 직함 없는 평범한 아줌마와 아저씨였고,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몇몇 분들의 조직 충성의 끝은 원하던 보직의 쟁취와 동시에 건강검진에서 암을 발견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최근 1년 동안 부고를 참 많이 봤다. 가족들을 위해 한 계급이라도 높게 퇴직하고자 병에 걸린 것을 감수하고 퇴직을 미루던 분도 계셨고, 현직에 계시던 분들이 암이 악화되어 하루아침에 돌아가신 것도 많이 보았고, 보직을 받은 지 한 달만에 건강검진으로 암 판정을 받아 휴직 들어가신 팀장님, 40살 이상이면 매달 병원에 통원 치료하는 분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이런 일들을 보고 있자니, 안정성이라는 게 과연 누구를 위해 포장된 단어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몸소 느낀다.



확실한 건 나이가 들고, 직장에 정착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감당해야 할 짐은 점점 늘어나지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 되었든, 직장에서의 위치이건, 나의 미래이건. 분명 그 짐은 나 혼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서 쉽게 내던져버릴 수 없는 책임일 테니까.

 가정을 갖게 되면, 오로지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금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나를 위해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가정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 된다면, 과연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아직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시행착오와 경험도 모두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들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적어도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해 많이 후회하지는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거절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음에 다시 초대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너는 너고 나는 나였다. 실제로 이 문화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있는 그대로 나의 기분을 말할 수 었다는 것이 엄청난 권리를 획득한 것만 같았다.

 유럽권에서는 저녁에 홈파티 문화가 있는데, 대학의 모든 학생들을 초대하는 경우도 많다. 식당이나 카페보다는 주로 집에서 어울려 노는데, 음악을 틀어놓고 서서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다양한 언어로 대화도 하면서 나름 건전하게 논다. 그래서 나도 교환학생 시절 누군지도 모르는 애의 생일파티에 친구들과 함께 다녀온 적도 있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만나고 친구가 되는 시간들을 많이 만든다. 모르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며 유대감을 쌓는 것이다.



딸들은 여전히 엄마 앞에서는 철부지였고, 그런 딸 앞에서 엄마는 그래도 내 딸이니, 당신이 젊은 날 당신의 어머니와 하지 못했던 딸과의 여행을 하는 중이니까. 엄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니까 오냐오냐 하시며 참으셨다.

 책을 읽으며 찔리는 부분이었는데, 엄마와 여행을 다니면서 핸드폰 카메라에 서툰 엄마한테 짜증을 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엄마와의 추억이다. 모습이 어떻게 찍혔든 그 순간만큼은 내 머릿속에 아름답게 기억되어 있다. 모녀는 참 애증의 관계다. 10년 전 엄마와 처음으로 다녔던 유럽의 거리들과 엄마의 환한 미소는 내 안에 아름답게 남아서 지금 내 앞의 길들을 비춘다.



내가 매일 같은 옷을 입든, 색이 요란한 옷을 입든, 노출이 많은 옷을 입든, 머리를 감지 않든, 다 떨어진 신발을 신든, 내가 무엇을 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봐 주는 곳이기에 좋은 점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혼자서 척척 해내야 하는 이곳에서의 정이라든지, 지인 찬스라든지, 어중간한 애교와 칭얼거림으로 해결되는 것을 거의 없었다.

 내가 외국에 있을 때도 느꼈던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인종차별 제외) 이상하거나 다른 부분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우습게 여기기보다는 대신 다른 부분에 대한 좋은 점을 많이 말해주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옷차림 같은 경우 남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어서 굉장히 편했는데,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하나같이 꾸미고 다니는 옷차림에 다시 익숙해져야 했다. 물론 외적으로 가꾸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스타일리시하게 옷을 입고 세련된 머리 모양을 해도, 내면의 내공의 빛이 나는 사람을 따라갈 수는 없는 것 같다.



누군가가 가진 재능을 알아봐 주고, 그들의 재능에 성의를 표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은 꼭 그에 대한 값을 당연하게 지불하는 곳. 한국에서는 수제품, 식당 서비스, 하물며 길 위 버스커의 공연까지. 사람의 손을 거친 것에 흥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보니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수제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진다. 기계가 뚝딱 만들어내는 게 아닌, 누군가의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조금이라도 성의가 들어간 것, 정성스러운 것, 느리지만 견고한 것들에 더 눈길이 간다. 우리 사회도 점점 좋은 가치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공감도 많이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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