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흔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냥 Oct 24. 2021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조그마한 반짝임이라도 남길 수 있기를

          저는 금방 죽을 것처럼 사는데요.

 그리스인 조르바. 너무나 유명한 책이라서 제목은 수없이 들어봤지만, 어려운 내용일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마침내 읽기 시작해서 최근 완독을 했다. 이 책의 가장 특징적인 점을 꼽자면, 대화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서른다섯살의 주인공이 노인인 조르바를 우연히 만나 함께 크레타섬에 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갈탄광 사업의 시작부터 마무리하기까지의 기간동안 일어나는 내용을 담고있다. 주인공은 책에 빠져사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책이나 교육과는 거리가 멀지만 감정표현에 거침없고 자신에게 솔직한 조르바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동안 얻지 못했던 삶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조르바가 했던 말 중 인상깊었던 몇 가지를 옮겨보려 한다. 조르바가 하는 말은 툭툭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 같은데, 막상 그 안에는 독자도 한참을 곱씹게 만드는 힘이 담겨 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신기해도 예사로 신기한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 더러운 놈의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으면 살인을 저지르고 사기를 치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말이 났으니까 말이지, 내가 죽이고 사기 친 이야기를 다 한다면 두목, 아마 머리털 끝이 송두리째 곤두설 겁니다. 그런데도 그 결과가 뭐였다고? 자유라니! 우리 같은 것들에게 벼락을 내려 싹 쓸어버리지 않고 자유를 주신 하느님이라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조르바가 생각하는 '자유'에 대한 대목인데, 이 부분에서 약간 머리를 띵 맞은 느낌이었다. 인간은 어쨌든 사회적 동물로 오로지 혼자서는 살 수 없는데, 그럼에도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며 소속된 곳으로부터 분리되어 훌훌 벗어나기를 바라는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항상 고달픈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사회에서 아무리 부조리하고 또 받아들이기 힘든 점들이 있더라도, 결국엔 그것들과 대립하거나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진정한 자유란 생각보다 큰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얻어낼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법으로 얻어낼 수 있는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지만, 어쨌든 타인을 희생하거나 나자신을 희생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자유는 엄밀히 말하면 인간존재로서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욕구이며, 자유를 얻는 과정이 힘들수록 더욱 소중하다. 물론 자유를 선택하고 말고 또한 본인의 자유다.




"두목 말씀이 옳은지도 모르지.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현명한 솔로몬 대왕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봅시다, 어느 날 나는 조그만 마을로 갔습니다. 갔더니 아흔을 넘긴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바삐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군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아니,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시잖아요?> 그랬더니 허리가 꼬부라진 이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며,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단다.> 내가 대꾸했죠. <저는 금방 죽을 것처럼 사는데요.> 자, 누가 맞을까요, 두목?"


 두번째는 조르바가 생각하는 '삶에 대한 태도'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금방 죽을 것처럼 사는 삶', 즉 '하루하루 내가 원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조르바는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어떤 삶을 살 건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조르바처럼 산다면 분명 후회없는 삶이 될지 모른다.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조르바의 이러한 대담함과 결단력이 필요한 때가 분명히 있다.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 예쁜 것을 많이 보고, 느끼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여한없이 하고 죽는다면, 죽을 때 분명 잘 살았노라고 죽을 수도 있겠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해야하는 것과 하고싶은 것을 잘 배분해서 실행하는 것. 현명하게 사는 한가지 방법이다.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그가 조금 뜸을 들이고는 말을 계속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나는 뇌의 기능이 너무도 거침없고 대담한, 정신은 누군가가 건드릴 때마다 불이 되어 타오르는 이 사나이에게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번째는 '믿음'에 관한 내용이다. 어떻게 믿고 나아가는 지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조르바는 극단적인 예로 전쟁 속에서 믿음을 들었지만, 결국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나 불행하고 미숙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도전은 믿음에서 싹이 튼다. 내가 분명히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그렇지 않은 사람마저도 반드시 해낼 수 있게 만든다. 믿음이 맹신이 되어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건강한 믿음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성분이다.




'한 줌의 흙이로구나......' 조르바는 생각했다. '배가 고팠던, 웃기도 했던, 키스도 했던 한 줌의 흙. 인간의 눈물을 흘리던 진흙 한 덩어리 지금은...... 우리를 이 땅에 데려다 놓은 악마는 어느 놈이고, 이 땅에서 데려가는 악마는 또 어느 놈인고?'


 마지막은 '죽음'에 대해 조르바가 느끼는 감정인데, 짧고 굵은 문장으로 되어 있어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에 대하여 더욱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한 줌의 흙. 인간은 누구나 결국 이 세상을 떠나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정말 짧디 짧은 시간이다. 늘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우울할 수도 있지만, 내가 흙이 되기 전까지 더욱 가치있는 삶을 향해서 열심히 살아갈 용기를 줄 수도 있다. 죽음은 반드시 오며, 언제나 슬플 것이다. 슬픔이 남기고 간 자리에 조그마한 반짝임이라도 남길 수 있기를. 그러한 반짝임들이 모여, 커다란 빛으로 세상을 유지시켜 나간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작품도 그 일부라고 생각된다.


 물론 조르바가 완벽한 인간은 아니다. 여성에 대한 가치관 등 이 시대에 맞지 않은 결함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삶에 대한 그의 강렬한 의지는 분명 배워야 할 부분이다. 조르바와 비교하면 우리는 이 시대를 너무나 무력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언지 다시 한번 나 자신과 솔직하게 진실게임을 해봐야겠다. 답답한 요즘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아름다운 크레타 섬에 쉬다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만이 내 삶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나이에 한계는 없다'는 용기를 다시 일깨워 준 고마운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둠 속의 참새들/ 바버러 브룩스 월리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