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파리 여행하는 내내 흐리고 우중충한 날이 이어졌다.
구름들이 몽실몽실 떠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 하나 찍을 수 없었고,
필터를 이리저리 써봐도 내가 원했던 쨍하고 건조한 사진은 만들 수가 없다.
이날 따라 너무 으스스 추운 탓에
축 처진 바버를 입고 검은색 벙거지에 머플러를 동여맨 내 옷차림..
다행히도 그 날 생미셀거리는 왠지 모르게 그 우중충한 분위기가 어울렸다.
시테섬을 가기 위해 건넜던 퐁네프다리.
예술인들로 북적되길 기대했지만.. 너무 이른 시간에 온 탓이겠지.
이름값처럼 화려한 다리는 아니었지만,
다리 아래 조각된 다른 얼굴들을 하나하나..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출근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매일 이 다리를 지나면서 시작하는 그들의 아침은 얼마나 좋을까?
터덜터덜 영화 속 주인공이 올라올 것만 같은 지하철 입구를 보고는
정신없이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는데 가는 역마다 있더라고..
파리 여행하는 내내 시간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뭔가 몽롱하고 묘하고 그랬다.
특히 저 입구로 들어가면서 조용하게 입으로 쓩..하고 소리까지 내가며 시간여행..풉
바보 같지만 혼자 그 기분에 빠졌던 것 같다. 좋다 좋아 이 동네..
멀리서 찍어보니 나름 괜찮은 컷이!
목적지 없이 시테섬, 생미셀거리를 돌아다녀보려 뒤돌아섰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비포선셋의 그 곳.
무심코 돌아다니다가 보게 되니 너무나 반가웠다.
이런 게 계획 없이 다니는 여행의 짜릿함이라며.
제시와 셀린이 다시 만나게 되는 그 장소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두근.. 돌아와서 그 장면 만큼은 다시 봐야겠다고!!
블로그에 널린 정보를 안 보고 온탓에, 온덕에?!
느긋하게 하루를 보냈던 거 같다. 파리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하루.
지도도 보지 않고 시간 되는 대로 마냥 걸어 다닌...
어딜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어야 할지. 커피는 어디서 마셔봐야 할지.
한참을 여기저기 돌아보며 3바퀴째 이 집 앞을 지나는데
흰 백발의 사장님이 '맛있는 거 많으니 들어와라 자리 있다' 뭐 이런 말을 대강..했던거 같다.
그래서 들어간 낡고 작은 레스토랑
평일이라 그런지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았다.
그 틈에 껴서 우리도 여유롭게 점심을!
에스카르고가 나온 순간, 여행친구는
키우던 쿠루리가 생각났는지 너무하다며 앙탈을..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잊어 맛있게 먹자!
하는 내가 너무 잔인해진 순간.
시간이 멈추길 바랬던 그 소중한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돌아가는 길마저 너무 로맨틱했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