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2막을 계획하기 위한 여러 가지 생각들
서른 하나. 현재 나의 나이다. 서른 하나에 이르기까지, 지난 세월에 대한 회고를 잠깐 해보고자 한다. 지난 20대의 나는 나의 이름 앞에 여러 가지 수식어를 붙이기를 참 좋아했다. n년차 직장인, 프로젝트 매니저, 기획자, 브랜드 컨설턴트... 대부분이 사회에서 나를 말하는, 집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나를 설명하는 것들이었다.
이제 내가 몇 년 차의 경력을 가진 직장인인지, 나의 직급과 직책이 무엇인지, 내가 다니는 회사가 어떤 곳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졌다. 그 명함들은 남들에게 나를 설명하는 이름들이긴 하지만, 사실 껍데기에 불과한 것들이기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서른 살이 되어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20대의 끝자락에 나를 찾아온 우울과 맞서 싸우면서 몇 년간 이어진 무기력, 죄책감, 자괴감을 겪으면서 마침내 내리게 된 결론이다. 몇 년간 우울증과 함께 살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좋아하는 것, 재밌는 것, 도전하고 싶은 것같이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말이다. 내게는 그저 하루하루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잘 자는 게 가장 중요했다. 왜냐하면 우울은 그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조차 집어삼켜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꽤나 나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와중에 '돌발성 난청'이라는 병이 급작스럽게 나를 찾아왔다. 30년 살면서 청각에 어떠한 문제도 없었는데, 아침에도 잘 들리던 귀가 갑자기 낮부터 먹먹해지더니 오른쪽 귀의 청력을 앗아가 버렸다. 나는 또 엉엉 울어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 무지막지한 불안감이 나를 모두 뒤덮어버릴 것만 같았다.
'돌발성'이라는 병명에 맞게 돌발성 난청은 응급상황이라 곧바로 입원이 가능한 병이었다. 재빠르게 대학병원의 진료를 받고 벌써 입원 3일 차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오른쪽 귀는 24시간 이명으로 괴롭고, 이명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그동안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이 너무나 힘들다고 소리치고 있었던 걸까?
많은 생각들이 든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전히 과거를 회상하고, 지난 일을 후회하고, 있지도 않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평범하게 누리던 일상부터 브레이크가 걸리니, 이제는 정말 나를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후회할 시간도, 뒤돌아볼 시간도 없는 것이다.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늘 생각에만 그쳤던 것들을 하나씩, 서툴지라도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실행해보려 한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 볼까?
커피, 조용한 카페, 빌딩 숲, 도심 속 신록, 빵, 러닝, 바다, 새벽녘, 여행, 뉴욕, 공항, 비행기, 재즈...
비슷한 것들의 카테고리를 묶어서 나만의 생각을 써봐도 좋을 것 같다. 거창하고, 완벽한 무언가를 계획하기 이전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부터 탐색해보려 한다.
오른쪽 귀가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한다. 다만, 빨리 발견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취해본다고. 그러면 나중에 후회는 없을 거라고.
그래, 지금까지의 삶이 후회로 점철된 미련 덩어리였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쓸고 닦아서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어봐야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일상으로 꾸려진 삶을 결코 포기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